노환규 전 의협회장이 말하는 메르스: 사이토카인 폭풍, 젊으면 더 위험한가
현재 메르스 상황
2015년 6월 16일 오전 발표된 어제 확진환자는 4명으로 이제 총 감염자 수는 154명입니다. 4명의 신규 확진자 중 3분이 14번 환자(2차 감염자)에 의해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분들이었고 1분(153번 환자)은 118번 환자(3차 감염자)에 의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감염된 분입니다.
그리고 2015년 6월 15일 3명이 유명을 달리해 총 사망자는 19명입니다. 사망률은 현재 약 12%이며 현재까지 총 17명이 퇴원했습니다. 현재 치료 중인 환자는 118명이고 이 중 102명이 안정적이고 16명이 불안정한 상태라고 합니다.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 추이
잠복기, 늘어난 것인가?
14번 환자에 의해 삼성서울병원에서 집중적인 감염이 일어난 것은 2015년 5월 27일부터 30일인데 그로부터 약 20여 일이 지난 6월 중순에 삼성서울병원에서 14번 환자에게 감염된 환자들이 속출하자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의 잠복기 최대 14일 공식이 깨졌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 146번 환자의 경우 바이러스 노출 후 17일 만에 증세가 생겼다고 합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2~14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CDC의 지침도 최장 잠복기를 14일로 기준하여 작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권위 있는 의학잡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en](2013 Aug 1;369(5):407-16. doi: 10.1056/NEJMoa1306742)에 발표된 ‘Hospital outbreak of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2013년 8월)에 기초한 것으로 보입니다.
Hospital Outbreak of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
23명의 비교적 적은 숫자의 환자를 연구한 후 발표된 논문에는 잠복기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The median incubation period was 5.2 days (95% confidence interval [CI], 1.9 to 14.7) 95% 신뢰구간에서 1.9일~14.7일이라고 본 것입니다. 즉, 메르스 감염환자의 잠복기가 1.9일에서 14.7일 사이에 놓일 확률이 95%라는 뜻이며 전체 환자의 95%가 이 구간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예외적인 상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숫자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찾지 못했습니다.
사실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이 중동에서 진단된 초기에는 잠복기가 1~9일로 알려졌다가 9~12일의 잠복기를 보이는 감염사례가 늘어나면서 2013년 5월, 메르스의 잠복기를 늘려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후 세계보건기구(이하 ‘WHO’)와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이하 ‘CDC’) 공히 최장 잠복기를 14일로 산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일부 언론에서는 14번 환자로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집중적인 감염이 일어난 이후 그때 감염되었다가 인제야 확진을 받는 환자가 나타나는 것을 보며 잠복기가 2주 이상 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나, 잠복기는 바이러스 감염 시부터 증세가 나타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현재 장비 및 인력의 부족으로 증세가 발현된 후 즉시 검사하여 확진이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감염의 확진 시까지 며칠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고려하여 앞으로 정책에 변화를 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CDC와 WHO의 기준을 따른 것은 원칙을 준수한 것이라고 봅니다.
메르스 바이러스, 정말 60m 날아가나?
6월 16일 자 동아일보에는 “기침 속 미세 침방울 60m 이상 퍼져”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내용인즉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리디아 부루이바 교수팀이 초고속 카메라로 재채기를 통해 뿜어져 나온 비말과 연무질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수학적’ 모델 분석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연무질이 60m 이상 전파가 가능하다고 밝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4월 유체역학(Journal of Fluid Mechanics)에 실렸다고 했습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적지 않은 분들이 “공기 전파 없다더니 어떻게 된 거냐”라고 물었습니다.
1.병원 내에서는 공기 전파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것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국내 들어오기 전부터 제기되었던 것이고 새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기전파가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방역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2.실외 공기 전파, 가능하지 않고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공기 전파는 침이 튀는 2m보다 좀 더 전달된다는 뜻이지, 위 실험처럼 수십 미터 떨어진 환자에게 전염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동아일보에서 인용한 연구결과는 임상에 적용할 수 없는 논문입니다.
향수를 뿌리면 그 입자는 수십 미터를 이동할 수 있지만, 먼 곳에서는 냄새를 맡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바이러스가 병원 내 환경에서 멀리 이동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방역복 입은 간호사, 왜 감염됐나?
건양대병원에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방역복을 입고 심폐소생술을 한 간호사가 메르스에 감염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왜 감염이 되었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사진상으로 보면 level C의 방역복을 입은 것으로 보이며 수칙을 지키는 경우 감염 위험은 지극히 낮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호흡마비에 기관삽관(intubation)을 했다고 나옵니다.
기관삽관은 다량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에어로졸 형태로 분출될 수 있는 시술 절차(procedure)여서 이 때문에 많은 양의 바이러스가 방안에 퍼졌고 방역복에도 묻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동료 간호사가 심폐소생술 후 흐르는 땀을 순간적으로 손으로 닦으면서 감염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쾌유를 빕니다.
감염자 연령이 낮아지는가? 기저질환 없는 사람이 사망?
WHO와 CDC는 메르스 감염자의 평균연령이 각각 53세와 50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메르스 감염에 대한 역학 보고는 대략 평균 연령을 49~53세로 보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확진자의 평균 연령은 55.28세로 오히려 높습니다. 그리고 최근 감염자 연령이 낮아진 것은 나이가 젊은 의료진들이 다수 감염된 것에 따른 현상입니다.
또 최근 사망 환자 중에 기저 질환이 없는 분들이 계셔서 이 역시 공식이 깨졌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기저 질환이 없는 분들은 감염의 위험과 사망률이 적다는 것이지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따라서 특이한 상황은 아닙니다.
사이토카인 폭풍에 대해
요 며칠 사이 언론에 부쩍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사이토카인(cytokine)이란 세포 간에 정보를 주고받는 물질을 말합니다. 백혈구 이 외의 세포도 사이토카인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대부분은 백혈구가 분비하고 있습니다. 사이토카인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사용하던 인터루킨(interleukin: 백혈구 간 물질이라는 뜻)이라는 용어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What Is the Cytokine Storm?” (출처: wisegeek.org)
몸에 외부 침입자가 들어오면 침입자를 물리치기 위해 면역세포들은 다른 면역세포들에 와서 도와줄 것과 면역세포의 숫자를 불리도록 신호를 보냅니다. 이 신호가 바로 사이토카인입니다. 사이토카인은 염증반응을 유도하기도 하고 억제하기도 합니다. 사이토카인 스톰, 즉 사이토카인 폭풍은 면역반응이 지나치게 격하게 일어남으로써 지나치게 많은 사이토카인이 악순환으로 분비되어 결과적으로 정상세포에게 해를 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사이토카인 스톰은 주로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돌 때 대규모 사망이 일어나는 원인을 설명하는 병리기전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서 스페인독감, 사스, 에볼라 등에서 사망한 분들 중 사이토카인 스톰으로 사망한 분들이 많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이토카인 스톰은 면역이 활성화된 사람에게서 더 쉽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1918년 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스페인 독감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사실 사이토카인 스톰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적고 연구가 부족해서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메르스를 겪으면서 35번 환자와 119번 환자가 기저질환이 없는 상태의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도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자 사이토카인 스톰을 그 원인으로 추정하면서 이 병리기전이 유명해졌습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