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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가제)
게시물ID : humorstory_4416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홈런왕안찌롱
추천 : 0
조회수 : 106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25 12: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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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제가 아는 형님이 쓰신 글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출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가제)



  제니퍼라는 여자아이는 일곱 살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매일 밤마다 어느 남자에게 살해당하는 꿈을 꾼다. 그녀의 악몽을 제거하기 위해 온갖 수가 동원됐으나 그녀의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꿈에 나타난 남자는 심장의 주인인 랄프를 살해한 자라는 걸 알게 된다.

  

  만일 누군가가 내 심장을 이식받는다면 공사장을 지날 때 섬찟함, 도로꾸와 시멘트의 미묘한 하중 차이, 22살짜리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김현의 재림, 황지우 뒤집기, 이 작가의 시도는 여태까지 느슨했던 한국문학을 책망하는 것 같다)의 책 표지와 감수성 넘치는 작가소개 글과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인간인 양 찍어놓은 사진을 볼 때 음경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온몸이 쑤신다.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건 어제였다. 아시바와 모래, 도로꾸를 얼마나 날랐던가.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구슬프게 본 이 몸이시다. 하루 일당으론 해왕성만큼이나 아득한 가격의 아파트를 지었다. 작업반장새끼의 으스댐. 나는 저렇게 안 살아서 다행이야. 개새끼. 하여간 눈꼴 시리다.

  아마…. 지금은 새벽 다섯 시일 것이다. 해왕성이 된 기분이다. 멀리서 절대영도가 다가온다, 0켈빈으로도 불리는 섭씨 –273.15도씨. 이 2평짜리 고시원은 그런 우주다. 천왕성처럼 삐뚤어지지도 명왕성처럼 잊혀 지지도 않는 공간이다. 언젠가 치밀하게 팔을 뻗어 크기를 재본 결과 공중전화박스 세 개 정도의 크기였다. 가난만큼 소유를 탐구하게 하는 것도 없다. 한때…한때는 초코파이만 먹으면서 미국의 경제를 공부했다.

  화요일. 오늘은 슈퍼 튜즈데이다. 우리는 인력소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표처럼 열심히 자기를 어필해야한다. 소장님의 소중한 한 표 부탁드립니다.

  여긴 햇볕이 안 든다. 첫째론 눈을 뜨면 바로 책상이 보이기 때문이고(책상에 대가리를 밀어 넣지 않으면 다리를 뻗을 수 없다. 만일 다리를 책상 밑에 놓는다면 가끔 ‘형 이번에 꼭 돈주셔야 해요’라며 퉁명 대는 고시원 사감이 문을 열 때 대가리를 찍힐 수 있다) 둘째론 여기가 창문 없는 반지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선거를 준비하기엔 적합한 환경이다.

  책상 옆 컴퓨터 전원을 켠다. 눈을 부비며 윈도우 로고가 로딩되는 것을 본다. 지미, 여기에도 창문이 있는데. 중고나라에서 10만원을 주고 살 때만해도 나름 순결했다. 글을 쓰거나, 글을 쓰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데에만 쓰려고 했다. 10만원은 거금이었다. 그래서 거대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금액을 지불한 날 이태원은 축복 같은 햇살로 포화상태였다.

  ‘소설가 한경훈, 3평짜리 고시원에서 10만원짜리 컴퓨터로 소설쓰다.’

  ‘소설은 헝그리 아니겠습니까. 사실은 임춘애가 최고의 소설가죠.’

  ‘솔직히 말하면….’

  별거 아니었습니다.

  담배를 비벼 껐다. 생각해보면 밥은 안 먹어도 담배는 피운다. 선거에 당선되기 위한 필수적 단계다. 글을 쓰거나, 가 아니라 시답잖은 뉴스나 포르노를 보는 것처럼. 물론 그때마다 뷔이이이잉. 하드웨어가 절대영도로 어는 소리를 내면서 버벅이기 일쑤다. 그때마다 본체를 발로 쾅쾅 찬다. 글을 쓰거나, 가 비늘처럼 컴퓨터 냉각팬에서 쏟아진다. 늘 그런 식이다.

  오늘따라 컴퓨터가 순종적이다. 바로 크롬을 켜서 대출갤에 접속한다. 디시인사이드 대출갤러리. 그곳에는 나보다 못한 군상이 널렸다. 모자란 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나보다 모자라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늘 추측에 몰두한다. 비교하면 못 사는 겨. 엄마는 말했다. 그리고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그 말을 지킨다. 그런 거다. 소주병에 담뱃재가 아름답게 쌓여 있다. 마치 글을 쓰거나, 처럼. 두 시는 넘어서 잤을 텐데…. 신기하다. 잘도 일어나 지네. 굶는 게 두려워서 일어났다는 건 이미 안다. 나는 마우스 휠을 부지런히 내린다. 딴청이 없으면 우리는 죽는다.

  최근엔 좀 열심히 해서 괜찮다. 매일 노가대에 나갔다. 구라다. 일주일에 몇 번은 빼먹었다. 매일 나갔다면 2평이 4평이 됐을 것이다. 조금 더 비싼 라면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천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다.

 

  ‘여자친구가 바람 피는 것 같다. 흥신소 짓 할 새끼 줄 서라.’


  대출갤에서는 조회수와 추천이 높은 포스트는 [HIT]표시와 함께 맨 위에 노출된다. 맥주를 마시면서 [HIT]를 클릭한다. 참고로 이 포스트를 작성한 녀석은 그간 온갖 조롱과 패륜드립으로 명성이 자자한 놈이었다.


  최근 들어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는 것 같다. 출장을 핑계로 뒤를 밟을 건데 같이 갈 놈 구한다. 두 놈 찾는다. 한 놈은 사진 찍을 거고 한 놈은 운전할거다. 카메라는 내꺼 있으니까 그냥 빈손으로 와라. 나는 최대한 숨어서 추이를 살필 것이다.(살면서 인터넷에서 본 가장 고급스러운 단어다) 생각 있는 새끼들은 댓글에 이메일 주소와 신상, 그리고 사진 첨부해서 쪽지 보내라.

  

  그가 쓴 글에는 신사임당 다발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사진이 첨부 되어 있었다.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붙인 뒤 돈을 셌다. 대략 삼백. 삼백! 삼백만원이다.

  삼백만원이면 덜 부지런했던 과거를 덮을 수 있을 것이다. 2평이 4평이 될 것이다. 비싼 라면으로 도미노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 초코파이로 된 미국경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흠, 흠. 헛기침을 했다. 볼 사람도 없는데 치레는 는다. 그게 가난이다. 아무튼, 이메일 주소와 사진(한 때 선거가 너무 지겨워서 편법을 노릴 때 썼던 사진)과 신상을 적었다. 소설가. 라고 써서 보냈다. 담배는 이미 껐는데 입에서 담배연기를 뿜는 것 같다. 사진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눈꺼풀을 비볐다.


   답장이 왔다.

   ‘아홉시. 교대역으로. 최대한 눈에 안 띄는 차림. 핸드폰 번호’

   -핸드폰 없는데

   ‘씨발. 어느 시댄데 핸드폰이 없어’

   -죄송합니다. 대출갤이라서요.

   ‘와.’

  

  경건하게 샤워를 한다. 평소라면 차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방방 뛰었을 텐데. ‘기름 좆나 아끼네’라고 투덜거렸을 텐데. 눈에 안 띄는 사람은 이런 걸 잘 참는 것처럼.

  깨끗하게 작업복을 다린다. 평범한 사람은 작업복도 다려입는 것처럼. 작업화를 신는다. 평범한 사람은 발등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두터운 신발을 신는 것처럼.


  당산에서 교대는 얼마 안 멀지. 심장 속 혈관처럼 지하철이 빠르다. 나는 혈관 위에 올라탄다. 그리고 랄프의 기억처럼 조용히 교대를 향한다. 다행히 돌아올 돈은 있다.

  

  교대에서 본 그는 송구스러울 정도로 평범했다. 안녕하세요. 서로 깍듯이 인사했다. 파스텔 톤 셔츠에 몸에 딱 맞는 검은색 거위 털 점퍼, 청바지에 매끄러운 겨울 부츠. 그의 손목 사이에 보이는 금시계가 ‘깔볼라고?’ 라고 하는 듯 반짝인다.


  -다른 분은 조금 걸립니다.

  -예, 그렇네요.(분? 분은? 분?)

  -그렇다고 놀랐습니다. 요즘 세상에 핸드폰을 안 쓰다니요.

  -뭐, 면목 없습니다. 패드립 칠 것처럼 안 생기셨는데요.

  -대출갤이잖습니까.

  그는 서글서글한 낯으로 웃었다. 이제부터 매끄러운 상황설명을 위해 그를 물주라고 하겠다.


  잠시 뒤에 다른 녀석이 왔다. 검은색 후드점퍼에 누릿한 풀색 건빵바지. 그리고 하얀 색 스니커즈를 신었고 검은색 묵주를 목에 둘렀다. 이 날씨에 옷을 너무 얇다고 생각했다. 딱 버릇만큼의 두께였다.

  

  -안 추운가요?

  물주가 물었다. 그 녀석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비듬처럼 대꾸했다.

  -안 추워.

  검은색으로 몸을 둘둘 두른 그를 매끄러운 상황설명을 위해 몽크라고 하겠다.


  우리는 그의 차에 올랐다. ‘몽크씨는 촬영, 작가님은 운전인가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아무거나 입니까. 그럼 안 돼요.’

  우리를 실은 아우디A6가 매끄럽게 고속도로로 향한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갑니까.

  -춘천이요.

  몽크는 눈꺼풀을 비빈다.

  -사진 좀 찍어보셨다면서요.

  -아. 약간.

  -오늘… 우리는 얼마나 받습니까?

  임기 후 소장에게 묻던 버릇이 나온다. 물주는 라디오 볼륨을 줄인다.

  -200만원 드리겠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땀이 흘렀다. 물주는 다시 라디오 볼륨을 올렸다.


  영서지방에는 강한 돌풍과 폭설이 예상되오니 운전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네. 아무렴요.


  춘천호 옆. 송강무인텔 주차장에 차를 댔다.

  -이 안에 있나요?

  -네.   

  -이렇게 대면 걸리지 않을까요?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죠. 몽크씨. 카메라 준비 됐습니까?

  -어. 알아서 하니까 일일이 물어보지 마.

  -네. 아무렴요.

  물주는 생긋 웃으면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담뱃갑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손을 저었다. 담배연기 같은 눈빛으로 물주가 밖을 본다. 눈이 세균처럼 쏟아진다. 우리는 감염자처럼 우두커니 있었다.

  -저기 아세요? 제니퍼라는 여자 아이가…. 심장을 수술했는데….

  -아, 그 개새끼 차는 아반떼 HD. 검은색. 번호는 26바XXXX에요. 한 30분 뒤쯤에 들어올 겁니다.

  몽크가 카메라렌즈를 조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헛기침이 목젖에 매달렸다. 그때 내가 떠올린 건 로널드 레이건의 연설이었다. 베를린 장벽 앞에 서서 연설을 하는 그를 떠올리면 나는 조디포스터의 관심을 끌고 싶다. 나를 죽이고 싶다.

  

  검은 아반떼가 들어왔다. 우리는 아우디 트렁크에 바짝 붙었다. 수그린 중에 몽크는 날렵하게 카메라를 놀렸다. 아반떼는 찍히는지도 모르고 우아하게 주차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이 파리의 날개처럼 펄럭이자 남녀가 내렸다. 그들은. 무표정이었다. 무슨 사랑을 하고 무슨 변명을 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남녀가 들어간 뒤 물주가 중얼거렸다.

  -기다립시다.

  -얼마나 나올까요?

  -한 한 시간이면 돼요.

  -어떻게 그리 잘 아세요?

  -몇 번 와봤어요.

  -그럼 그때 찍지.

  -그냥. 내 손으로 하고 싶지 않았어.

  -지랄하네.

  몽크는 물주 앞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찍은 사진을 차근차근 보여줬다. 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지.

  -뭐?

  -안에서 TV보고 나왔다고 할 수도 있잖아. 사진을 들이밀어도 헛소리할 수도 있고.

  -그럼요?

  -저 년놈들이 나온 다음에 방에 들어가서 콘돔을 가져오는 거지. 아니면 티슈, 정액 묻은 거. 그 정도는 챙겨줘야지. 경찰들이 그랬어. 최고의 증거는 체액이라고.

  몽크가 이죽댔다. 슬픈 사람을 조롱하고 싶다. 약자 앞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대출갤에서 기본소양인 표정이다.


  남녀는 생각보다 늦었다. 우리는 눈이 우릴 힐끔거리는 가운데 각자의 손에 입김을 불었다.

  -떡을 다채롭게 치나 보네.

  -두 시간쯤 됐나?

  어느새 물주와 몽크는 서로 반말을 했다. 아반떼와 아우디는 눈을 피하는 파리처럼 얌전히 주차장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파리똥처럼 추웠다. 몽크와 물주는 열기 같은 수다를 반복했지만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어렸을 때 설익을 파리똥을 먹은 적이 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친구들은 새빨갛게 익은 맛난 파리똥을 먹었다. 보리수나무 열매를 파리똥이라고 부른다는 건 절대영도로 얼어붙는 2평짜리 속에서였다. 친구들은 아마 파리똥의 실체를 알았을 것이다. 단맛에 둘러싸인 떫은 맛. 우리는 딱 그런 맛으로 주차장에 앉아 있었다.

  

  남자가 급하게 계단 아래로 달음질친 뒤 검은 파리에 들어간다. 에에에에엥! 같은 엔진소리가 들리고 파리는 급하게 송강무인텔을 떴다. 그리고 우리는 눈 내린 춘천을 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

  물주는 또 입에 담배를 물었다. 두 갑은 진즉에 넘었다.

  -그러다 죽어요.

  -그러게요.

  -올라갔다 올게.

  -올라가서 뭐하게. 문 열 수 있어?

  -그러게.

  물주는 트렁크 속에서 큰 쇠지레를 꺼냈다.

  -이걸로 따버려.

  ‘그 새끼도 강제로 내걸 따버렸다고. 뭔지 알지?’라고 말하는 눈이었다. 몽크의 표정이 비장하다. 약자 앞에서 비로소 열중한다. 대출갤에서 기본 소양인 표정이다.

  -그런데 몇 호지?

  이윽고 물주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308호죠. 문 그냥 따도 돼요? 근데 거의 두 달째 거기네. 뭔 지정석이야? 네. 알겠습니다.

  물주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우리는 1분가량. 폭설을 보았다. 그는 하얀 것에 무던히 뒤덮이는. 그런 눈을 했다.   

  

  몽크는 가열하게 308호 문에 지레질을 했다. 꽝! 쇠가 찢어지는 소리가 창밖의 눈에 묻었다. 

  여자는 죽어있었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흥건하게 피가 흘렸다. 여자는 무슨 사랑을 남겼고 무슨 변명을 삼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누워있었다.

  -젖탱이 좆나 크네.

  몽크가 콧물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때 나는

  글을 쓰거나, 를 생각했다.

  

  아무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그런 걸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특별했고 진취적이었다. 간혹 만화를 그리나 힙합을 한다는 건방진 놈을 만나면 술을 좆나 먹고 ‘야. 너 음악 할라면 꼭 레마르크랑 까뮈는 꼭 읽어야 한다. 마릴린 먼로랑 까미유 끌로델을 둘 다 따먹겠다는 그 정도의 태도는 있어야 뭘 하지 않겄냐’ 등의 헛소리를 지껄였다. 책만 읽었고 글만 썼다. 솔직히, ‘내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매일 했다. 그리고 글 이외에 다른 건 다 무의미한 척 했다.

  편모 가정 외아들. 날 키우겠다고 시장바닥 전전한 어머니. 오후 여섯시 쯤, 매대 위 깻잎 같은 표정. 그 표정보다 글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엄마는 내가 굶어죽을까 싶어 부지런히 날 말렸다.

  나는 뭐 이케 살고 싶어 그렸냐. 따르케 살어보고 싶었어야. 근디 어찌냐. 고작 이 정돈디. 니는 머 다를 줄 아냐.

  그 말을 들은 날 딸랑 100만원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기차 안에서 ‘비록 개인의 사소한 발걸음이지만 인류 문학에는 큰 도약이다’라는 개소리를 잠깐 했다. 초저녁달이 유리가가린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자만과 죄의식이 초저녁달에 깃발을 꽂았다. 아사(餓死)같은 표면에 글을 쓰거나, 라는 치졸한 문양이 펄럭였다.

 

  -씨발. 그 새끼가 시킨 거 아냐.

  -누구요?

  -누구긴 누구야 밑에 있는 도련님이지.

  몽크는 주머니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낀 뒤 모텔을 뒤졌다.

  -손 시려서 가져왔는데 잘 됐네.

  그리고 그는 냉장고, 화장대, 드라이기, 욕실, 화장실 변기, 침대 밑, 여자 시체 주위, TV밑 금고를.

  -모텔에 금고도 있어? 이야 좆나 신기하네.

  뒤졌다. 그때 나는 좆나, 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이윽고 몽크는 쇠지레를 금고 문에 비벼 끼운 뒤 지레질을 했다. 금고는 여자의 죽음처럼 견고했다. 

  -이야 안 되네. 이거 분명히 뭔가 들어있는데.

 

  -그만 갑시다.

  -왜?

  -열지도 못할 걸 그리 매달려서 어쩝니까. 물주에게 돈이나 받읍시다.

  -지금 그 돈 찾게 생겼냐. 여기 훨씬 더 큰돈이 있는데.

  -그게 돈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넌 모텔에 금고 있는 거 봤어. 하긴 좆나 아다처럼 생겨서 너 모텔 처음오지?

  -불확실한 거에 매달리느니 확실하게 200만원을 받는 게 낫지 않겠어요?

  -너 같음 애인이 죽었는데 200만원 같은 거 신경이나 쓰겠냐.

  2평에서 4평정도면 된다. 소망의 평수가 행동을 지배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추해질 권리가 있다. 라고 쇠지레가 지껄인다. 나는 그때 엄마의 ‘별 수 없음’과 해왕성이 아득함을 생각했다. 그런 쓸데없는 잔소리가 행성을 공전시킨다고 믿었다. 거짓믿음이지만 여자의 시체 앞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우린 물주에게 가기로 했다. 금고의 단단함 앞에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다. 정체를 모르는 것의 단단함만큼 우릴 열정적으로 만드는 건 없다.

  물주에겐 뭐라고 말할 건데. 그리고 여긴 CCTV지천이라고.

  아까 물주가 전화한 거 못 봤냐. 100% 여관 주인이지. 주인에게 CCTV기록 지워달라고 하면 돼지.

  물주가 당신을 돕겠어?

  아, 쫌!


  우리가 주차장에서 본 건 피 묻은 칼을 들고 있는 남자와 아우디 앞바퀴에 주저앉아 피를 흘리는 물주였다. 200만원처럼 피는 선명했고 칼은 CCTV보다 더 실재감이 있었다.

  난 그때 유리가가린과 조디포스터를 떠올렸다. 몽크는 쇠지레를 움켜쥐었다. 남자는 칼을 꼬나 쥐고 천천히 걸어왔다. 몽크의 다리는 파리 날개처럼 파르르르르르르르 떨었다. 그의 생명력을 증명해주는 것은 가운데 흐르는 노란 물이었다.

  

  아. 우리는 하루라는 먹이를 먹고사는 짐승이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무용담이다.

  

  몽크가 날 남자에게 밀었다. 남자는 달려오는 날 밀친 뒤 몽크에게 들이쳤다. 몽크는 힘껏 쇠지레를 휘둘렀으나 사내는 기민하게 피한 뒤 몽크의 옆구리를 칼로 찔렀다. 몽크는 쇠지레를 가로로 들고 남자의 몸을 졸랐다. 남자는 단단한 자세를 유지하며 칼을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몽크와 남자 사이에 커튼처럼 피가 흘러내렸다. 그들은 비상구 간판아래 왈츠를 추듯 빙글빙글 돌았다. 몽크는 쇠지레를 꽉 움켜쥐었다. 때론 악력이 유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몽크는 남자의 귀를 물었다. 으아아아아! 금고를 따면 저런 비명이 들어있지 않을까. 그리고 난.

  남자의 목을 졸랐다. 이미 쇠지레가 남자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서 별 무리 없는 일이었다. 여자에게 무슨 변명을 남기려나.

  난 남자가 죽은 뒤에도 한참동안 사내의 목을 놓지 않았다. 불확실한 금고의 주인은 확실하게 죽었다.

  커튼콜!


 나는 모텔 밖을 뛰었다. 눈이 ‘사람을 죽여! 어!’라는 비난처럼 하늘을 가득 매웠다. 난.

 울고 있었다. 그래도 나 사람이었다. 넌 알지?

  -씨발새끼가….(난 언제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SUV가 날 쳤다. 내 두뇌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날 죽인 물체의 크기와 색깔을 인식한 것이었다.

  

  “예. 아. 네. 그럼요. 방금 왔어요. 일단 방 번호 알려줬지. 에잉? 뭐요? 거기에? 이런. 쯧쯧쯧. 어쩌려고 그랬소. 말이라고 해주지. 금고요? 그럼요. 아주 튼튼한 놈이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중 최고급이라고 생각하시오. 흠. 그럼. 내가 CCTV를 꺼놓을 테니 가서 다 처리해요. 사람들? 걱정 마. 천장에 달린 에어컨 있지? 거기에 수면가스 풀 테니까. 그기 CIA가 쓰는 거래. 거 알죠? CIA? 거기 두 명? 대출갤에서 구해온 거 같소. 몰라? 인간드론이라고. 돈만주면 어디든 가는 애들. 하하하하하하. 웃기지 않소? 정말 존재 자체가 해학적인 놈들이라니까. 아마 죽여도 되지 않을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HIT]여기 춘천인데 XX은행 횡령한 새끼가 우리 동네 무인텔에서 죽은 것 같다.

  조회수 4353821 추천 :3055

  -저번에 고정닉(고정닉네임) XX가 자기 애인이 바람피운다고 같이 잡으러 갈 새끼 없냐고 모집공고 했었잖냐. 양화대교 물맛 보는 게 얼마 안 남은 새끼들이 줄줄이 섰는데, 그 중에 눈팅족 두 새끼를 데려간 모양이야. XX는 여자친구가 종종 밀회를 하는 춘천호 쪽 모텔까지 알아놓은 상태였나 봐. 그래서 인간 드론 새끼 둘이서 같이 쳐들어간 거지.

  근데 그 여자친구의 내연남이 XX은행 횡령사건의 범인인가 봐. 한때 언론에서 천문학적인 숫자를 훔쳤다고 난리를 쳤었는데, 경찰에선 은행원이랑 일당이 천문학에 조예가 밝아 우주로 가버린 건지 오리무중이라고 또 지랄병을 해대고 아주 가관이더라고.

  이번에 춘천에서 유명한 마약사범이 검거됐잖아. 대한민국 음지네트워크의 중심이라며 신문 1면을 차지한 그 사람. 그 새끼가 XX가 찾아간 그 모텔 사장인 거 같더라고. 이미 춘천바닥에서는 소문이 자자해. 동네 편의점 알바도 주절거릴 정도라니까.

  누가 죽었는지 사건의 전말이 뭔지 다들 궁금해 하는데 어째선지 행정기관들은 쉬쉬하고 있어. 지금 길바닥에 붙은 그 용의자수배전단지 자체가 허위라는 소문이야. 솔직히 내가 이런 말하고 일주일 뒤 남산에서 물고문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사람들 추측은 중간에서 누군가가 돈을 해먹으려고 모두와 짜고 은폐를 한다는 거야. 저번에 인터넷 신문 OO일보가 방통위에서 경고 먹고 대표가 기소된 게 이 사건을 추적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어.

  모두 소문이긴 해. 솔직히 소문 아닌 게 없어. 그 XX의 아버지가 XX은행장이라는 소문도 있고.

  그 XX 자체가 소문인지도 모르지.

  아무튼 춘천바닥에 이런 썰이 자자하게 돌고 있음.


  『1등.』

  『2등.』

  『등수놀이 좀 하지마라 쓰레기 새끼들아. 사람이 죽었다는데』

  『대략 몇 백억이라는 돈은 대체 다 어디로 간 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게 다 박원순 때문이다』

  『이게 다 김무성 때문이다』

  『솔직히 조작 아님? 춘천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뉴스조차 없잖아. 그리고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고. 그냥 떠도는 헛소문 같은데.』

  최승자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루머라고 했다.

  아 거참 이런 사실적인 이야기에 그런 시구 들이밀지 맙시다.

  『일단 조회수와 추천이 DC창립 이래 이 정도까지 치솟은 게 놀랍다. 이만하면 역대 최고의 병신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겠어』 

  씨발. 이렇게 된 거 우리가 살아있다는 거 자체도 소문이면 좋겠다.

  『내일이 안 왔음 좋겠음. 내일이 오면 내 장기가 다 팔려갈 지도』

  『꼭 한강온도 수시로 체크합시다』

  『그냥 모두 다 마포대교 위에 둥둥 떠 있을 수도 있음. 부표처럼. 사건은 가라앉아도 인간은 붕 뜨는 법이거든. 솔직히 마포대교에 써져 있는 격언들보면 그냥 뛰어들고 싶다니까. 이루마가 피아노를 잘 치는 게 내 빚과 목숨이랑 상관없는 것처럼.』

  

  ‘대출갤 흥신소 썰’은 DC의 전설이자 대출갤의 상징이 되어 오랜 시간 인터넷에서 회자가 됐다. 수많은 무리가 같은 이야기를 공감하고 조롱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개인이었다. 

  개인들은 ‘대출갤 흥신소 썰’을 다 본 뒤 스포츠뉴스에서 오늘 강정호가 홈런을 쳤는지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잘하고 있는지를 확인했고 네이버와 다음에서 웹툰을 보고 다른 사이트에서 시답잖은 사연을 읽고 역시 마찬가지로 시답잖은 해결책을 리플로 남겼고 큰 가슴을 가진 여자의 인스타그램과 폐식용유와 식초를 이용해 주방세제를 만든다는 아줌마를 보았다.

  개인들은 각각 움베르트 에코의 ‘TV는 최소한의 정보라도 전해주지만 인터넷은 시민들 각각의 지식격차를 더 심화 시킨다’와 퍼거슨의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으세요’의 혼혈아 인 것처럼 조용히 지냈다. 딱 고정된 소음만 일으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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