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 하면, 웬만한 지식층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조국의 경제를 살린 위대한 영웅’, ‘민주국가를 쿠데타로 전복한 반란군 수괴’, ‘ 권력을 악용해 수많은 정적을 없애고 유부녀를 포함한 수백 명 부녀자들을 농락한 희대의 바람둥이 독재자’, ‘최고 악질 친일파’, ‘골수 공산주의자’, 등 완전히 색다른 모습의 얼굴로 혼란스러울 정도다.
김현철 전 언론인 MBC 서울본사 기자 한국일보 시카고주재기자 중앙일보 마이아미지국장 한겨레 마이아미지국장 미주한겨레저널 창간 발행인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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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압력과 자사 이익에 눈이 멀어 시녀 노릇을 자임해 왔던 조선 중앙 동아 및 KBS MBC 그리고 일부 인사들의 저서 등의 어용언론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릴 언론 본연의 자세’는 팽개치고 군사독재정권의 요구대로 대부분의 국민들을 ‘바보’로 세뇌시킨 결과, 이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위 사실 중 맨 첫 부분, 즉 ‘조국의 경제를 살린 영웅’ 이외의 사실은 믿으려 하지 않는 서글픈 세태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재작년에 어느 여론 조사 기관이 국내의 엘리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공무원 대상 여론 조사에서 ‘어느 신문을 가장 신뢰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겨레’, 그 다음이 ‘경향’, ‘한국’의 순서였음은 독자가 가장 많다는 ‘조’ ‘중’ ‘동’이 신뢰 면에서는 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국가기록원’, ‘민족문제연구소’, ‘미군정 정보보고서’, ‘전 미국여기자협회장이오, 한국인으로서는 맨 처음 백악관을 출입한 문명자(1930~2008) 원로 기자의 저서 ’내가본 박정희와 김대중‘ 등을 참고, 위의 어용 언론만 접하고 있는 대다수 인사들의 올바른 정세 판단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 박 전 대통령의 ’진짜 얼굴‘을 서툰 솜씨로나마 있는 그대로 그려 보려 한다.
1939년 3월 경북 문경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박정희(당시 23세, 일본 명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교사는 나이가 많아서(20세까지만 가능) 일본군 만주 신경군관학교(2년제)에 입학이 어렵게 되자 손가락을 잘라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保國 滅私奉公), 즉 "충성을 다해 일본에 보답하고, 나를 죽여 국가를 받들겠다."며 일왕에게 바치는 충성혈서(忠誠血書)를 써서 만주신경군관학교로 보내 입학 허가를 받아냈고 졸업식 때 수석 졸업자 연설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성공시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사쿠라처럼 죽겠다”고 강조했는데 일제 하 36년 간 조선인 출신 일본군 장교 지망생 중 혈서로 일왕에 맹세한 경우는 ‘다카키 마사오’ 교사가 유일무이한 경우다.
만주신경군관학교에서 3등 안으로 졸업한 생도들에게 일본 정규 육사 편입 특전을 줌에 따라 일본육사 3년생으로 편입한 ‘다카키 마사오’ 소위는 졸업 후 관동군 23사단 72연대 소대장이 된다. 그 때까지도 자신의 이름에 불만이 많던 ‘다카키 마사오’ 소위는 당시 일본 연대장 오카모토(대좌=대령)의 성을 본 따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또 다시 개명한다.
조선인(조센징)이 창씨 개명한 냄새가 나는 '다카키 마사오'(다카키(高木)란 성은 고령 박씨에서 따왔고 마사오(正雄)란 이름은 정희(正熙)를 변용 한 것) 보다는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가 창씨개명을 의심받지 않은 진짜 일본 이름이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한국인의 흔적을 지워보려는 몸부림이었으니 진짜 친일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주에 주둔 중 ‘오카모토 미노루‘ 소위는 소대장으로 독립군(당시 중공 팔로군 소속) 소탕 작전에 무려 110회나 출전, 혁혁한 공로로 중위로 진급한다. 그 후 악질 친일파 조선인들로만 구성된 ‘간도토벌대’에 소속돼 중대장으로 더욱 큰 공을 세웠으니 그로 인한 애국지사들의 희생은 상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 때 조센징 중대장이 이끄는 일본군에 사살당한 독립군 전사들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이 민족반역자!’하고 절규하지 않았을까?
일본육군사관학교 교장 '나구모 쥬이치(南雲忠一) 장군은 “다카키 마사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일지 몰라도 천황페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점에서는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다운 데가 있다”고 그의 의심할 수 없는 친일 자세를 극찬한바 있다.
조선,동아,경향,MBC의 워싱턴 특파원을 역임했던 문명자 기자가 1972년 도쿄에서 어렵게 ‘다카키 마사오’와 함께 만주신경군관학교에서 생도로 있던 일본인 장교 출신 두 명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조센징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우뢰같이 고함을 치곤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냐?’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 고 회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