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북한매체들은 다시 차분해진 모습이다. 우리는 평양 남북정상회담 이후 자연스럽게 연휴에 들어가면서 정상회담 이야기가 가족 식탁에 올라간 반면, 북한은 우리와 달리 추석 당일 하루만 쉰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북한은 1988년에 가서야 추석을 민족명절로 지정, 하루 만을 국경일로 삼고 있다.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다음날인 9월22일자 노동신문에는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소개하는 기사가 단 한 개도 실리지 않았다. 북한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월22일자 1면에 9‧9절(북한 정권수립 기념일)에 대한 세계 각국 관계기관들의 축하메시지만 실었다.
2면에는 1949년 9월22일 사망한 고(故) 김일성 주석의 부인 김정숙의 생전 활동을 기리는 특집기사가 실렸다. 김정숙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할머니다. 북한 역시 1948년에 가서야 독립된 정부가 탄생한 만큼 상당수 기관이 올해 70주년을 맞는다. 대표적인 곳이 북한 기술교육의 산실 김책공대다. 노동신문은 이날 김책공대의 70년의 역사를 간략하게 다룬 기사를 기획했다.
남북 정상회담 뉴스는 이튿날인 9월23일자 신문부터 소개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6면으로 발행되는 노동신문의 맨 마지막 면은 남한을 비롯,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의 뉴스를 다루는데 이날 6면의 맨 상단 기사는 9월 평양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중국, 러시아의 성명이 게재됐다. 그러면서 노동신문은 반대편에 6‧15남측위원회 대전본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무역협회 등 재계,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노동단체들의 환영 논평을 실었다.
남한 보수층에 대한 비판도 여전했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20년을 구형한 것을 자유한국당 등 보수층이 비난하는 것에 대해 북한은 “공범자들의 뻔뻔스러운 난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바로 옆에 국민주권연대, 대학생진보연합, 청년당 등 일부 진보단체들이 주한미군철수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소식도 짤막하게 실었다.
9월 평양선언 이후 노동신문 논조 차분
23일자 노동신문에서 주목받는 기사는 조희승 북한 일본연구소 상급연구원이 쓴 ‘일본은 성노예 범죄의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는 제목의 정세논설이다. 글은 “아베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당국자들과 여당인 자민당의 고위인물들은 일본군 성노예 범죄를 어떻게 해서나 역사의 흑막 속에 묻어버리고 그에 대한 국가적 책임에서 벗어나 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20만명에 달하는 조선 여성들과 그 밖의 수많은 아시아 여성들을 조직적으로 강간, 윤간한 다음, 대량 학살하고도 아무런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법적 처벌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이라고 지적했다.
이 정세논설은 북일 관계를 염두하고 기획한 것 같지는 않다. 이 글은 9월14일부터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만행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4회에 걸쳐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북일 관계 정상화를 적극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칼럼을 꾸준하게 싣고 있는 것은 “확실한 과거사 청산 없이 관계 정상화는 어렵다”는 입장을 의미한다. 조 연구원은 “일본은 과거의 성노예 범죄를 비롯한 모든 반인륜 죄악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의 한 성원으로 떳떳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에 대하여 철저히 사죄하고 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 일본은 대규모 취재진을 서울 프레스센터로 보내 깊은 관심을 보였지만, 남북한 모두 일본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도 최근 아베 신조 총리가 자민당 총재에 또다시 당선돼 세 번 째 연임에 성공한 만큼 조만간 북일 관계 정상화에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북핵이 일본의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비핵화가 먼저 선행돼야 한다’며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연일 일본을 겨냥해 강도 높은 비난에 나서고 있어 양국 관계 정상화가 쉽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