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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 이야기 (스압)
게시물ID : gomin_153730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Lucida
추천 : 13
조회수 : 922회
댓글수 : 58개
등록시간 : 2015/10/20 23:30:11



 내가 기억하는 동생은 독기 어린 짐승이었다. 상처받아도 자기 상처를 핥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자기를 다치게 한 상대방을 물어뜯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상대방은 나였다. 나와 동생은 맨날 싸웠다. 싸울 거리는 차고 넘쳤다. 사소한 말다툼부터 시험 성적, 부모님에게 받는 애정까지. 동생은 그게 뭐든지간에 자기가 지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 동생의 저울추에서 자존심의 무게는 그 어느 것보다 무거웠다.


 동생은 싸우다 상처를 입더라도 물러나는 일이 없었다. 외려 악에 받쳐 더 발버둥치면 쳤지 절대 체념하지 않았다. 결국 체념한 건 내쪽이었다. 정말로 저 애랑 전생에 무슨 원수라도 졌던가 의심스러웠던 중학교 시절. 미운 정이라는 말도 과분할 정도로 서로에게 악의밖에 없던 날들. 내가 전교 5등 성적표를 어머니께 보여드렸을 때 동생이 지었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 때 동생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는 모른다. 중위권 성적이었던 동생은 반년 뒤 전교 2등 성적표를 어머니께 내밀었다. 나를 바라보는 동생의 표정에서 비틀린 우월감이 느껴졌다. 그 비뚤어진 경쟁 심리에, 그래 너 잘났다. 아예 질려버린 나는 동생과의 싸움에서 백기를 들었다.


 그 뒤로 나는 동생이 달려들면 한 발짝 물러났다. 어쩔 때는 내가 그냥 지고 말지 생각하면서 사과해버리고 어쩔 때는 어물쩍 웃어넘기며, 나는 동생에게서 꾸준히 거리감을 뒀다. 그러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다른 지역 고등학교였다. 나와 동생 사이엔 심리적 거리감에 이어 물리적 거리감까지 더해졌다.


 집에서 멀어진 나는 가족의 소식을 전화로만 간간히 들었다. 차라리 아들 다섯을 키우고 말지. 너랑 왜 그렇게 다른 건지 모르겠다. 동생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의 한숨 섞인 목소리는 껄끄러웠다. 그 목소리에서 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끔 있는 외출로 집에 갈 때마다 동생은 항상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내려오는 집. 보여줄 게 싸우는 것밖에 없었을까. 기숙사 생활에 지쳐서 내려간 집은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둘의 싸움을 중재했던 나는 갈수록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싸움은 나까지 끼어든 삼파전이 됐다.


 그러다 큰 사건이 터졌다. 그 뒤로 동생과 어머니는 적어도 내가 집에 내려왔을 땐 싸우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를 바라보는 동생의 눈빛은 바뀌지 않았다. 예전 나와 동생 모두 중학생이었을 때 나를 바라보던 눈빛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동생의 독기는 그 대상이 바뀔지언정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동생과 나는 점점 더 소원해졌다. 그런 동생과의 어색한 거리감이 익숙해졌을 때 동생 또한 고등학생이 됐다. 동생은 굳이 나와 같은 학교에 따라 입학했다. 다시 싸우기 싫었다. 나는 동생의 독기를 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동생에게 구태여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제시한 거리감에 동생은 의외로 순응했다. 고등학교 시절동안 나와 동생은 평범한 남매들처럼 정말로 무난하게 지냈다.


 그리고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이 바뀌었을 뿐 가족 사정은 비슷비슷했다. 가끔 집에 내려가는 동생. 그것보다 더 가끔 집에 내려가는 나. 요새도 너 없으면 맨날 싸운다. 어머니의 짜증어린 투정에 나는 걔 답네, 대답하면서 예의바른 미소를 지었다.


 변한 건 없었다. 가족 사정도, 독기 어린 짐승 같던 동생의 성격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할 것 같지 않았다. 그 녀석은 너무 단단해서 부러질지언정 절대 무너지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꽤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동생을 떠올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있는지도 불명확한 '남매간의 신뢰' 같은 게 아니었다. 십 년 넘게 싸워왔기 때문에, 그 질리도록 질긴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결론이었다. 우애나 애정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는 동생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 뒤 동생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




 동생이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 일이 일어나고 보름이 지나서였다. 이번 주말에 집에 내려와 달라고. 평소와 똑같은 동생의 말투에 난 별 대수롭잖은 심정으로 집에 내려갔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나는 동생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본인에게서 직접 들었다. 그 때까지 어머니는 내게 아무런 언질이 없으셨다.


 내가 예전에 오빠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알아? 동생은 담담하게 말하면 자기 손목을 보여줬다. 시계로 가렸던 동생의 손목에는 가느다란 붉은 선이 겹쳐서 그어져 있었다. 애들 낙서처럼 어설프게 새겨진 상처는 엉성한 만큼이나 현실감이 없었다.


 나 옛날부터 엄마랑 많이 싸웠어. 자해 흔적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게 동생이 그렇게 말했다. 알고 있었다. 동생과 어머니가 싸우면서 지낸 것. 하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동생에게 듣기 전까지 우리 어머니는 자식에게 손찌검 한 번 하지 않는 어머니인 줄 알았다. 심한 욕 하나 하지 못하는 어머니인 줄 알았다. 내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그런 짓, 자식에게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만 하지 않았던 거였다.


 나 원래 엄마 좋아했어. 그것도 엄청. 동생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많은 거 안바랬어. 그냥 엄마가 오빠 좋아하는 만큼만 나도 관심받고 싶었거든. 내가 엄마한테서 애정 독차지 해야겠다 그런 게 아니라. 근데 엄만 완전 오빠 바라기더라고. 머리 좋고 잘난 아들. 아주 그냥 일편단심으로 바라보시더라. 동생의 목소리에선 아무런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비꼬는 말투보다 담담한 목소리가 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그 때 느꼈다.


 그래서 난 내가 오빠보다 잘나게 되면 엄마가 나한테도 관심 가질 줄 알았지. 동생은 계속해 말했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오빠 하는 거 다 따라하고, 무조건 이기려고 했고. 중학교 때 나 전교 2등 했던 거 기억나? 나 그 때 진짜 죽어라 노력했어. 그건 엄마도 좋아하시더라고, 한 일주일은. 그리고 다시 똑같아지더라. 결국 엄마는 오빠만 좋아하더라고. 오빠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오빠만.


 사실 동생의 말에 그렇게까지 공감이 가진 않았다. 나는 여지껏 어머니가 보여주는 행동이 자식을 위하고 아끼는 거라 생각했었다. 솔직히 그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게 나만을 향한 편애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동생이 자해 흔적을 보여주면서 말하지 않았다면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했냐며 대답했을 것이다. 그거 피해의식 아니냐고 비꼬면서 넘어갔겠지.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곧이은 동생의 말에 완전히 사라졌다.


 동생은 보름 전 이야기를 했다. 동생이 집에 내려가는 날이면 어머니와 동생은 으레 싸웠다. 하지만 습관처럼 싸우던 평소보다 그 날은 더 심각했다. 할 말 못할 말 서로에게 내뱉은 마지막에 어머니가 동생에게 말하셨단다. 너 같은 거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고. 너 낳으면서 배 아팠던 게 억울하다고. 상대방이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자각이라도 있다면 절대 꺼내선 안될 독설을, 어머니는 동생 면전에다가 쏘아붙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동생 입에서 듣는 순간 몇 년 전 일이 겹쳐 떠올랐다.


 삼파전이 벌어졌던 예전. 나는 항상 싸우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몇 번이나 중재해 보려고 했었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내가 한 건 싸움 말리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간신히 말려둔 싸움은 다음 달 집에 내려가면 다시 똑같이 벌어져 있었다.


 결국 어느 날 쌓아둔 감정이 터졌다. 나까지 끼어든 싸움은 끝을 모르고 커졌다. 그 난장판에서 어머니가 소리쳤다. 내가 무슨 돈 벌어오는 가정부인 줄 아냐고. 너희들 필요없다고. 그냥 차라리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고.


 어머니께서 욱해서 하신 감정적인 말에 나까지 덩달아 욱했다. 그래. 그게 소원이시라면. 머리 끝까지 열이 올랐던 나는 뒷일은 생각도 하지 않고 베란다로 향했다. 난간에 올라 까마득하게 떨어져있는 아스팔트 바닥을 보면서 거 더럽게 높네,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뛰쳐오셨다.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악을 지르시며 어머니는 나를 막무가내로 끌어내셨다. 난간에서 끌려 내려온 내게 기댄 체 어머니는 그대로 주저앉으셨다. 제발 이러지 말라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너가 이러면 정말 엄마 죽을 것 같으니까, 다시는, 다시는 이러지 말라고. 아까 전까지 그렇게 화내던 것도 전부 잊어버리시고 어머니는 흐느끼고 계셨다. 완전히 무너져 내린 어머니는 너무나 무력해 보였다. 당신도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구나, 그 때 처음 느꼈다. 그 일로 나는 아버지께 죽을만큼 맞았고 동생과 어머니는 적어도 내 앞에서는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보름 전 동생의 자살 소동도 그 때와 비슷하게 흘러갔을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동생의 이어진 이야기는 그런 내 생각을 비웃는 듯 했다. 어머니의 독설을 들은 여동생은 식칼을 들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옥상으로 올라오신 건 동생이 이미 서투르게 손목을 몇 번 그은 뒤였다. 벽에 기대 주저앉은 동생을 발견한 어머니는 잠깐 말이 없더니 싸늘하게 말하셨더란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진짜 냉정하게 말하더라, 엄마. 칼 들 힘도 빠지대. 그러더니 그 다음날에 나 그대로 학교 올려 보냈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지금까진 엄마랑 싸우면서 그래도 가족이다, 가족이다 생각했었는데. 그 때 다 놓아지더라. 담담하게 그 당시 일을 말하는 동생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향한 동생의 감정은 애증이었지만 동생을 향한 어머니의 감정은 그저 짜증스러움이었다. 딸을 향한 어머니의 태도라기엔 그곳에는 자식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원래 엄마를 엄청 좋아했다는 조금 전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당연하게 받아온 애정을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했던, 그러다 결국은 포기해버린 동생을 보면서, 동생과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까지 서로를 싫어했음에도 나는 더 이상 동생을 미워할 수 없었다.


 할 말을 다 했는지 동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꺼낼 말이 없었다. 그 침묵에 무안해져 두리번거리던 나는 문에 걸린 십자가에서 시선을 멈췄다. 아버지가 걸어놓은 십자가였다. 교회 목사이신 아버지는 항상 가족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험난했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은 나는, 가족보다도 신앙을 더 중요시하는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할 순 있었지만 공감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 입장인듯 했다. 동생에게도 아버지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데 있어서 논외의 존재였다. 독실하신 목사인 아버지는 가족 사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으셨고, 어쨌든 동생에게 필요한 건 기도가 아니었다.


 결국 동생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그때까지 죽도록 싸워 왔던 나밖에 없었다. 지금껏 싫어했던 대상인 나를 제외하고는 말할 사람이 없다는 동생의 처지에서 나는 문득 연민을 느꼈다. 그렇다고 동생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진 않았다.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쌓아둔 감정을 한 번에 위로해 줄 수 있는 마법의 말을 나는 몰랐다. 그 대신 나는 부모님 몰래 맥주를 사 와서 동생에게 건넸다. 그때까지 한 번도 술을 마셔본 적 없던 동생은 잠깐 놀란 눈치더니 맥주캔을 받아들었다.


 앞으로 힘들고 못 버틸 것 같은 일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해. 나는 맥주캔을 만지작거리는 동생에게 말했다. 여느 소설처럼 갑자기 동생이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거나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일 같은 건 없었다. 동생은 처음 맛보는 쓴 술맛에 살짝 찡그리면서, 그럴게, 라고 한 마디만 했다.


 그 뒤로 나와 동생은 꽤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소소한 이야기부터 심각한 고민거리까지. 그리고 동생이 그토록 사랑했던 감정까지 놓아버리게 만든 어머니 대신, 너무나 독실하셔서 동생의 사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으신 것 같은 아버지 대신 나는 가족이 해 줘야 할 일들을 동생에게 해 줬다. 관심은 가지되 간섭하지 않기. 힘든 일이 있었다면 들어주기.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기.


 애초에 지금껏 동생에 무한 자유방임주의였던 나는 여태까지 지내온 것처럼 동생에게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동생을 챙겨줬다. 가족 내부에서 트러블이 생긴다면 항상 동생의 편을 들었다. 그런 내 태도에 고맙다고 직접적으로 동생이 고맙다고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동생의 자살 기도 소식을 들었던 그 날을 기점으로, 동생과 나와의 관계는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요즘들어 나와 동생은 심심하면 서로에게 장난을 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수위높은 대화도 하며, 술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진지한 주제를 꺼내 이야기 하거나 서로의 고민거리를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내가 입대한 이후에는 오히려 동생에게 도움을 받은 적도 많다. 무너질 뻔한 상황에서 동생 덕분에 재기한 적도 있다.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산다.


"엄청 가끔씩은 말인데. 니가 내 동생이어서 고맙다."

"응. 알아."

"……."

"그래도 오라방. 내가 고마워하는 거 알지?"

"헛소리 하고 있네."

"어떻게 알았징."

"ㅋ"

"ㅋ"


 생각해보면 그런 허울 없는 관계를 우리 남매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이유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았다. 그건 질리도록 질겼던 싸움이, 어색한 거리감만으로 유지됐던 몇 년간의 시간이, 그 날 위로 대신에 건넸던 맥주가, 부모님 대신 동생을 챙겨줬던 시간이 층층히 퇴적되어 만들어진 우리 남매간의 무늬였다.


 그래서 결국엔 길었던 이야기의 마무리로,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고맙다.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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