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공수처 설치 법안 합의에 난항을 겪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사실이 폭로되면서 사회적 파장은 커졌지만 제대로 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두고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와 같은 태도로 영장 발부를 늦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때문에 고위공직사비리수사처 설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7월26일 국회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의결했다. 이번 구성되는 사개특위는 올해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며 법원 및 법조 개혁, 검찰·경찰의 독립성 및 수사 중립성 강화 등 사법 전반에 걸친 개혁 방안을 마련하고 관련 법률안을 심사할 의무와 책무가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야당의 반대로 합의에 진통을 겪게 되면서 여당과 시민단체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 공수처는 적페청산과 사법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로 공수처 설치가 늦어지고 있어 민주당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촉구 기자회견을 이어가고 있다. (C)사진공동취재단 |
이해찬, 공수처 설치의지 확실 “정경유착 반복해선 안 돼”
시민단체들 “사개특위 소극적인 한국당 전향적 자세 촉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를 조속히 설치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거래 사건 등 적폐청산을 위한 조사를 위해선 검찰과 사법부 등과 독립된 수사처 설치는 필수적이다. 현 정부 들어 공수처 설치를 위한 움직임은 계속돼왔으나 야당의 반대로 가로막혀 있는 상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9월4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수처 설치 의지를 밝혔다. 그는 “적폐청산과 불공정 해소는 촛불과 국민의 명령”이라면서 “경제를 위해 적폐청산을 적당히 하자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오래 지속된 분단과 독재로 인해 사회 곳곳에 적폐가 쌓여있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며 “촛불혁명의 뒤편에서 기무사 적폐의 쿠데타 모의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퇴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라며 “정경유착·부정부패·권력비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반드시 설치하고, 국민권익위원회를 반부패, 청렴업무의 중심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고 나섰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민줏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참여연대 등 6개 시민단체는 9월5일 “더 이상 늦추 수 없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양승태 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법관들의 불법행위와 강원랜드 수사 외압, 검찰 내 성폭력사건의 미진한 진상조사 등 공수처의 조속한 설치를 필요로 하는 사건들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지난 사개특위를 비롯해 20대 국회는 아직도 공수처 설치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12월 여야 합의로 출범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정성호 의원, 이하 사개특위)는 자유한국당의 반대와 여야 갈등으로 공수처 설치를 비롯한 사법개혁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들 시민단체들은 “검찰개혁의 필요성, 그리고 고위공직자들에 대한 부정부패 근절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으로 사개특위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시 열릴 예정”이라며 하루빨리 공수처를 설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도 나서 “권력기관의 개혁은 그 특성상 시기가 늦어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공수처는 이미 사회적 요구가 크고 필요성과 구체적인 운영방안에 대해 숙고와 토론이 충분히 이루어져 있으므로 사개특위를 조속히 구성해 공수처 법안 논의를 시작으로 정기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면서 “아울러 그동안 공수처 설치법 통과에 소극적이며 사개특위에서 활동하기에 부적절한 재판 중인 의원 및 검찰개혁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인 의원 등을 포함시킨 바 있는 자유한국당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5년 대법원이 일선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수억 원을 소액 현금으로 분할해 전액 인출한 후 인편으로 법원행정처에 전달해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 과정에서 허위 증빙서류까지 만들었다는 내용의 보도가 있었다.
박주민 의원은 9월5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재차 언급했다. 그는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을 업으로 해야 하는 사법부가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과정에서 예산을 횡령했다고 하니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라며 법원 개혁이 제대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를 위해 하루빨리 사개특위를 구성해 법원개혁에 나서야한다”며 “사개특위 구성에 협조해 국회가 더 이상 직무를 유기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자유한국당에 당부했다.
민주당 사개특위 위원들도 조속한 사개특위의 구성을 요구했다. 9월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연 박영선·백혜련·금태섭·박주민·윤일규·송기헌·진선미·표창원 의원은 “지난 전반기 사개특위가 지난해 12월29일 본회의에서 구성결의안이 가결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은 1월12일에 첫 회의를 가졌던 것에 비하면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으로 몰고 갔던 국정농단 사태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던 검찰에 이어 법관사찰,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의혹으로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마저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사개특위 구성의 중요성과 시급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사법개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의무이며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라고 강조했다.
6월21일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사개특위 위원들은 “검경이 상호 협력과 조화를 통해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국회가 답할 때다. 시간이 별로 없다. 이미 정기국회가 시작됐고 다음 달에는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전반기 사개특위가 소위 구성에 난항을 겪으면서 단 한 차례의 소위도 열리지 못한 채 종료된 우를 다시는 범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사법개혁의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실질적인 개혁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사개특위 위원들은 “방기와 태업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도 지켜야 한다”며 “자유한국당 역시 검찰 및 사법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법농단 사건의 검찰수사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로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법원은 검찰이 사법농단 관련자를 상대로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208건 중 23건만 발부했다. 일반 사건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9%인 것을 고려하면 검찰의 수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박주민 의원은 이와 관련해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관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은 ‘특별재판부’ 설치와 ‘특별 영장정담법관’ 임명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를 통해 영장 발부를 담당할 전담 법관을 선정하고 심리를 담당할 재판부를 구성함으로써 사법농단 사건을 공정하고 국민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박 의원이 “이 법안이 통과돼야 진상도 규명될 수 있고 사법부를 향한 신뢰가 회복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아직까지 국회 법사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개특위를 비롯한 공수처 설치, 특별법 통과를 위한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