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한 아이 노래 부르며 가네 풀잎 같은 노래는 바람에 흩날리는데 반쯤 감은 두 눈에 불러도 대답없이 모르는 노래 하나 부르며 혼자 가네
새벽 어둠 풀잎 끝에 가만히 맺혔다가 아침 바람 불어오면 가벼이 돌아가는 한 방울 이슬처럼, 한 방울 눈물처럼 온다는 소식 없이, 간다는 기별도 없이 그렇게 가만히 찾아오는 그 노래 그렇게 가뭇없이 돌아가는 그 노래 슬픔도 없는 노래, 아픔도 없는 노래 미움도, 원망도, 그리움도 없는 노래 이 세상 어디에나 가득한 설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 노래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 눈에 들어와 듣고 싶지 않아도 그예 귀에 울려와 가만히 눈을 감고 없는 노래 불러요 없는 줄 알면서도 없는 노래 불러요
저 길에 한 아이 노래 부르며 가네 별빛 같은 그 노래 멀리서 가물거리네 동그만 어깨 위에 어스름 내리는데 세상에 없는 노래 부르며 멀리 가네.
누더기를 걸친 왜소하고 마른 몸, 그렁그렁한 큰 눈으로 멍하니 카메라를 보는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너만은 이 지옥구덩이를 벗어나 살아야 한다며 아이 홀로 등떠밀어 보내는 어미의 심정은 어떨까요. 없는 살림에 뭐 하나라도 더 싸 보내려다 짐이 될까 망설이면서 어미는 얼마나 가슴 찢어지게 울었을까요?
우리나라도 알고보면 전쟁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는 나라죠. 늙은이들이 전쟁을 일으키지만 정작 전쟁에 나가 죽는 건 젊은이고 가장 큰 피해는 우리 아이들입니다. 저기 파란 지붕에 사는 아이가 없는 어떤 여인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나라를 팔아먹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 자들의 후손들이 득시글 대는 어떤 무리는 지금도 여전히 이 나라를 전쟁의 위험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정권의 생명연장을 위해.
이 상황에 화가나면서도 무기력한 내 모습에 자괴감도 듭니다. 내 자식들에게는 좀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고 싶은데....
건너가는 아이들
사람들이 말했다. 공주님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무쇠갓쓰고 무쇠 지팡이 짚고 바리는 길을 떠났다. 설산을 넘고 사막을 지나 바다를 건너갔다.
이 저녁, 세상 어느 모퉁이 가난한 어미들은 먼 길 가는 아이에게 가벼운 짐을 들려주네
더했다가 뺐다가, 뺐다가 더했다가 더할 것도 없이, 뺄 것도 없이 먼 길 가는 아이 손에 건네주는 그 가벼운 짐
모래바람 부는 아프리카 펄럭이는 난민촌 천막 안에서 연기 자욱한 미드이스트(The Mideast) 폭격으로 무너진 폐허 위에서 히말라야 가까운 티베트 버터기름 불밝힌 곰파 안에서
바다를 건너야 할 아이들에게 사막을 지나야 할 아이들에게 설산을 넘어야 할 아이들에게
빵 몇 조각, 옷 몇 가지, 양말 몇 켤레, 돈 몇 푼, 사진 몇 장, 그리고, 그리고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몇 마디의 말.
“나는 괜찮아, 네가 그곳에 가니까. 넌 우리의 희망이야. 사랑한다”
갈 수 있을까요? 저 바다를 건너, 모래바람 지나 총성과 폭음 속에 무사히 칼바람 부는 얼음산 너머 저 곳에 내가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게 될까요?
너는 또 그렇게 오겠지 어느 들판 위에서 헤매어 가는 한 이마 위에 문득 흩날리는 눈발처럼 내가 간 뒤에도 내가 오기 전에도 바위 틈을 적시며 흘러나와 고이는 샘물처럼 너는 또 그렇게 와서 조용히 반짝이고 있겠지 내가 있을 때에나 내가 없을 때에도 이른 봄 꽃들은 가슴을 열고 비 개인 초여름 새벽 깊은 땅 속에 잠들었던 매미들 검은 나무를 타고 기어오를 때 놀란 새들이 날아오를 때 그 가느다란 실핏줄 속으로 더듬거리며, 날갯짓하며 너는 또 그렇게 흘러가겠지 꽃들이 진 자리, 진물이 흐를 때에 가을 저녁, 메마른 그 가지 위에 마지막 울음이 흩뿌려질 때에 너도 그렇게 진득히 맺혔다가 너도 그렇게 아득히 흩어졌다가 그렇게 젖고 마르며 맻혔다 흩어져 만나고 또 헤어지며 흐르고 흐르고 흘러가겠지 흐르고 흐르고 흘러오겠지 내가 가면은 너도 가겠지 내가 오면은 너도 오겠지 내가 있으면 너도 있겠고 내가 없어도 너는 있겠지 그래 내가 없어도 너는 또 그렇게 오겠지 어느 봄날 아침에 선잠에서 깨어난 처마 아래 문득 흩뿌리는 빗방울처럼 그래 그렇게, 또 그렇게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