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014
중학교 때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서 백만원을 주고 보조기를 맞췄었다
그 보조기라는게 코르셋과 원리가 같아서, 명치부터 아랫배까지의 몸통을 꽉꽉 조여 척추를 곧게 세우는 역할을 했다
보조기가 허리를 받쳐주니, 성장기동안 발달해야할 허리를 정말로 받쳐주어야 할 허리 근육이 스스로 자라날 필요가 없어졌다
날은 너무 더웠고 보조기는 너무 조였다
외고를 가기 위한 학원 책상과 의자는 비좁았고
연필이라도 떨어뜨리는 날엔 눈물이 났다
보조기를 차면 주울 수가 없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배가 고파도 밥 먹기가 무서웠다
장기를 꾹꾹 누르고 있는 보조기 때문에
배에 있던 가스가 소리를 내며 나올까봐
창피한 일이 생길까봐
배가 고픈게 싫었다
사는게 너무너무 비참해서 부모님께 죄송하게도 그 기구를 구석에 던져두었다
고등학교에 합격하자 아무도 모르게 버렸던 것도 같다
허리는 더 휘어졌다
상체가 비정상적으로 짧아졌고 왼쪽 골반이 툭 튀어나온 이상한 몸을 갖게 됐다
왼쪽 눈과 오른쪽 어깨가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런 몸을 가지고
잘도 옷 만드는 전공을 택했다
참나
만드는 사람도 좌우가 같지 않은데...
무슨 옷을 만든다고.......
탈출하고 싶다
휘어진 몸도 생리 때마다 끊어질 듯 아픈 허리도 축 쳐진 뱃살도 이제 안녕
몸의 기둥이 틀어지니 마음도 자꾸 틀어지는 것 같아서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운동을 시작합니다
예쁘게 허리를 세워보자 틀어진 마음도 세워보자 사춘기 시절 비참했던 기억을 이겨보자
파이팅.
다리 꼬고 앉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