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대해서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조선이 요동을 정벌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다행으로 여기는 글을 보았기에, 현인의 글귀를 올립니다.)
고려 이래로부터 북부남부는 모두 거란이 차지하였고, 금, 원 이후 다시는 우리 것으로 되찾지 못하였고 압록강 일대가 천연의 경계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 세종, 세조 때에 이르러 마천령 이북으로 천리의 땅을 개척하고 육진을 바둑돌처럼 설치하였으며, 밖으로는 창해에 닿았다. 그러나 요동은 끝내 되찾지 못하였다. (다른 여러) 논자는 그것을 유감으로 여긴다.
신(臣)은 요동을 되찾지 못한 것이 국가에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동은, 중화와 오랑캐가 왕래하는 요충지이다. 여진은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중국에 도달할 수 없고, 선비, 거란은 요동을 얻지 않으면 그 적을 제어할 수 없으며, 몽고는 요동을 지나지 않으면 여진과 통할 수 없다. 진실로 삼가고 온순하여 무(武)가 없는 국가가 요동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화친하면 사신을 맞아들이는 큰 비용과 병정을 징발하는 부역에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화친을 잃으면 사면이 적이니 병화가 없는 때가 없을 것이므로 한 나라의 힘이 고갈되어 지탱할 수 없다.
태조와 태종 때는 대명이 북경에 도읍을 정하여 요동과 심양의 사람들이 기내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를 엿보아도 차지할 수 없었다. 설령 요동과 심양이 오히려 여러 오랑캐에 속했다 해도 태종과 태종께서 이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니 어째서인가? 척박한 황무지로 이득이 없는 땅을 얻고 천하에 적을 늘리는 행동은 영명한 군주라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당 때에도 오히려 주, 진 때의 옛 일을 살펴 도읍을 관중에 정한 후에 위세를 얻어 천하를 제어하였다. 고로 중국의 지략가들이 논한 바는 오로지 동서 이경(낙양과 장안)의 우열뿐이었다.
또 우리나라의 지세는 북으로 두 강[두만과 압록이다]을 경계로 삼고,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강역의 형태가 혼연히 천혜의 요새이니 요동을 얻는 것은 반대로 군더더기를 붙이는 것이다. 어찌 유감으로 여기겠는가?
그렇지만 진실로 나라가 부강하고 병사가 강성하여 하루아침에 천하를 다툴 뜻이 있고 한걸음이라도 중원을 엿보려 할 경우에는, 먼저 요동을 얻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서로 요동을 얻고 동으로 여진을 평정하고 북으로 경계를 넓혀 흑룡강의 근원까지 올라가고 우측으로 몽고와 버틴다면 충분히 큰 나라가 될 수 있으니 이 또한 하나의 통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