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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 이야기 3
게시물ID : humorstory_4413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hristmas
추천 : 32
조회수 : 2537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0/14 15:55:00
이틀동안 연이은 밤샘 술에 여자는 실신상태였다. 

일찌감치 눈이 떠진 나는 여자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여자는 세상모르고 잠만 자는 듯 했다. 



오후쯤 됐을까. 


여자가 잠에서 깼는지 뜬금없는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유튜브 링크였고, 동영상의 제목은 <평양냉면>이었다.


뿔테안경에 왠 인디냄새 풀풀 나는 남자가 구슬프게 평양냉면을 외치는...


순간 저 남자의 얼굴이 나와 비슷해서 보낸걸까 
아니면 평양냉면이 생각나서 보낸걸까.
평양냉면 사달라는 소리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나는 저 여자에게 만족스러운 리액션을 해야했다. 


"ㅋㅋㅋ 이건 또 뭐예요. 노래 좋네요"(사실 가수얼굴 보자마자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노래도 안들었다) 

"그냥 갑자기 니가 생각나서"

"제가 평양냉면처럼 밍밍하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얼굴색이 잿빛이란 말인가요? 아니면..."

"휴 됐다... 난 좀 더 잘래" 

"잘자요"



낮 두시에 잔단다. 
크리스마스때부터 사람 마음에 지진을 놓고 낮 두시에 잔단다. 


진짜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었다. 


여자는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 술자리라는데, 난 저때 최소 술고래 최대 주당 인줄 알았는데 
주량을 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운동을 하고 있었고
여자한테서 사진 하나가 왔다.


사진속 여자는 모아이 석상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이 구역의 졸린년이야!!!' 를 외치는 듯 했다. 


게슴츠레 눈을 감고,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사진의 컨셉도 모르겠고, 뭘 말하는지도 모르겠고. 


"나 지금 이꼴로 술먹어 ㅋㅋ"

"(어쩌라고...) 많이 졸린가보네요ㅋㅋ 하긴 졸릴만도 하지"

"언제 잘꺼야? 나 이따 집에 걸어가면서 너와 통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한데 어때?"

"장갑 꼭 끼세요"



열두시쯤, 전화가 왔다.

"00야↗ 나야. 뭐해?"

또 나왔다. 하이톤 목소리. 



여자는 나에게 말 한마디를 하기위해 
'추워'를 3번 연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예를 들자면 

"아 추워, 춰, 춥다... 오늘 뭐했어? 아 추워"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더니, 원체 걷는걸 좋아한단다. 

그렇다 그말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나중에 종종 한 시간씩 걷곤 한다.

문제는 바깥 온도에 상관 없이 걷는다는 점...



전자파를 통해 그림자가 되어 여자를 집까지 잘 바래다 줬고, 
여자는 나 집에 왔어. 일단 끊자 를 외치며 또 춥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시 전화가 왔다.

"너무 무리하는거 아니예요? 내일 출근한다며"

"야 괜찮다니까? 하루쯤은 내가 관심있는 애랑 수다떨면서 밤샐수도 있지" 

"뭐 몇번이나 봤다고 관심이야" 

"아 그런가? 미안! 그럼 관심은 취소" 

"(짜증...)"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파악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는 여자와 약 세시간의 통화를 통해 
여자의 집은 너무 춥고, 잘때 오리털 파카를 입고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느덧 시계는 세시를 가리켰다. 

그리고 우리는 3일뒤면 한살씩 더 먹는 시기였고,
우리는 더이상 20대 꼬꼬마가 아니었다.



졸렸다. 



"우리 이제 자요"

"웅 그러자"

"잘자요"

"응 너두"



그리고 뿌듯한 미소로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충전기에 꼽고, 머리맡에 둔 뒤 눈을 감았다.


그런데 핸드폰이 울렸다. 




"나 자려고 누웠다가 귤먹으려고 깸" 


정말 이상해.





다음날 여자는 일을 했고, 나는 쉬는날 이었다. 

여자의 퇴근시간에 맞춰 
편의점에서 3000원짜리 초콜렛을 하나 사서 회사 앞으로 갔다. 

"그 집에 가는길에 거기를 지나갈 것 같은데 잠깐 하이파이브나 할까요?"

"웅 그래 좋지"




우리집은 반대방향이었다. 






여자를 만나 초콜렛을 건네줬다.
하지만 나의 그윽한 눈빛은 건네주지 못했다. 

어쩜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서야... 



우리는 딱 4분을 만났다. 
막차시간이 임박해 서둘러 지하철역 개찰구까지 데려다 주었고, 하이파이브도 했다. 


헤어지고 나서 문자가 왔다. 


"손깍지라도 낄줄 알았는데, 정말 딱 하이파이브만 하다니..."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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