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석에서 물러나신 이후 최근 소득주도성장이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다.
“과거 수십 년간의 경제정책 기조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하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 정부가 출범할 때 많은 국민들은 이 같은 변화를 갈망했고 힘을 실어줬다. 과거 경로에 익숙한 사람들은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설득하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는 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최근 고용이나 분배 지표가 너무 좋지 않다.
“일자리, 소득분배 측면에서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은 점에 대해 경제 정책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구조적 문제점들이 맞물리며 고용과 소득분배 지표들이 나쁘게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와 소득분배 악화의 기폭제가 됐다는 지적이 많다.
“무리한 해석이다.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최저임금이란 단일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구조적인 문제가 많다. 인구구조 변화와 더불어 고령화로 노인 빈곤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 또 2016년부터 조선ㆍ해운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올해는 한국GM 사태 등 자동차 산업이 좋지 않다. 이런 구조적 문제 속에 중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며 골목상권들이 타격을 받았다.”
-최저임금 영향이 없다는 의미인가.
“인건비 비중이 높은 일부 업종은 최저임금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는 일자리 부진과 소득분배 악화를 초래한 요인 중 한 부분일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예상하지 못했나.
“자영업 부문에 충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가 최소한의 인간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일정 수준의 생계비를 유지해주는 제도다. 소상공인ㆍ영세기업의 비용부담이 커진다. 결국 고민 끝에 일자리 안정자금이란 대책을 강구했다. 당시 내부적으로도 논란이 많았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고 있지만 고용이 너무 안 좋다.
“취업자 문제는 인구변화와 맞물려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고, 주력인 30~40대 인구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시뮬레이션 해보면 과거처럼 취업자가 30만명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만명도 쉽지 않다. 앞으론 (취업자보단) 고용률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 65세 이상 고령층이 원하는 일자리를 얼마나 더 만들 수 있을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연말에 고용이 개선될 것으로 봤다.
“장 실장의 발언은 상반기와 비교해 하반기에 고용이 나아진다는 의미다. 올해 상반기엔 여러 구조적, 경기적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청년 일자리 추경(3조8,000억원) 기초연금 인상(20→25만ㆍ9월) 아동수당(10만원ㆍ9월) 등 각종 정책 효과들은 상반기에 반영되지 않았다. 하반기부터 본격화된다.”
-소득주도성장 성적표가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의구심이 크다.
“과거 우리는 대기업이 기계ㆍ설비 등 물적 자본에 투자하고 이를 토대로 수출하는 식으로 성장해왔다. 수십 년간 잘 작동했다. 그런데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양극화가 심해지고 성장률이 떨어지며 “바꿔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러면 어디다 투자할까?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경쟁력도 사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분배를 포기한 성장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 겨우 이 길에 발을 디뎠는데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갈 순 없다.”
-방향은 맞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사과했다. 우리 경제가 이를 감내하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인정한 셈이다. 또 하나 살펴볼 부분은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우리 경제가 안고 있던 여러 숨겨진 문제들이 드러난 것이다. 영세 기업들의 낮은 생산성, 이들의 취약한 임금지불 능력, 자영업의 구조적 취약성, 저소득층의 어려운 현실 등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그간 소득주도성장이 너무 파편적으로 진행된 점을 반성한다. 앞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보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느꼈다.”
-혁신성장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 지금 ‘혁신성장=규제완화’로 해석되는데, 사실 작년부터 꾸준히 정책을 발표했다. 스타트업 창업→성장→자금회수의 생태계에서 각종 걸림돌을 제거한 정책이 대표적이다. 올해 벤처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 많이 늘었다. 현재 창업 단계인 스타트업들이 성장해서 안정기에 접어들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또 혁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체계를 뒤흔드는 기술탈취나 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공정위와 중기부가 역량을 쏟고 있다.”
-혁신성장에 비해 소득주도성장만 너무 앞서나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한 세트다. 둘이 따로 가면 문제가 생긴다. 가장 취약한 부문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이다. 이를 얼마나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느냐에 소득주도성장의 성패가 달려 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에서 혁신 동력을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가 (소득주도성장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승부처라는 얘기다. 경제 성장을 끌어내고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중소기업과 끊임없이 등장하는 스타트업들이다.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한편, 우리 산업의 허리인 중소ㆍ중견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현재 실패한 기업가들은 재기가 불가능하다. 이에 ‘혁신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중소기업 연대보증 폐지, 약속어음 폐지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집값이 크게 뛰고 있다. 집값이 많이 오르면 빈부격차가 줄어들 수가 없다.
“국민들한테 참 송구스럽다. 수도권 중심으로 안정화되다가 다시 집값이 오르고 있다. 그 동안 최선의 정책들을 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시장에선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결국 유동성이 생산적인 부분으로 흘러가도록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게 과제다. 집값 안정화 대책을 계속해서 내놓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만큼은 꼭 안정시킬 것이다. 여전히 카드는 있다.”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간 갈등설이 계속 부각되고 있다.
“오해다. 두 분은 정책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사이다. 문 대통령이 토론을 좋아한다. 두 분은 자주 만난다. 경제수석 근무 당시 보면 한 달에 2~3번은 만났다. 공식 회의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본래 정책은 사람마다 자기 생각이 있다. 청와대 수석들간에도 의견차가 꽤 있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을 맡고, 장 실장이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하는 역할분담은 이뤄질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교통정리 한 사안으로 알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소득주도성장이든, 혁신성장이든 정책 조율은 청와대 정책실과 각 부처 사이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장 실장이 소득주도성장 컨트롤타워라면)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등 각 부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아예 손을 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럼 경제 사령탑은 누구인가.
“경제부총리다. 경제관계장관회의, 산업경쟁력관계장관회의, 대외경제장관회의 등 각종 회의를 모두 부총리가 주관한다. 청와대 정책실은 정부 철학의 우선순위를 고려해, 이를 각 정책에 반영하는 역할 정도다. 아마 역대 정부 중에서 경제부총리의 역할이나, 담당 부처의 정책권한이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5월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 긍정효과 90%’ 발언을 두고 통계 조작 논란이 불거졌다.
“(1분기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8.0% 감소한)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충격이었다. 대책 마련을 위해 급하게 국책연구기관에 소득분배 악화가 정말 최저임금 때문인지, 왜 이렇게 나빠졌는지 세밀한 분석을 요청했다. 이후 분석결과 중 명확한 부분을 이야기한 것뿐이다. 일각에선 가계동향조사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소득분배가 개선되지 않은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저소득층 대책을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달라.
“6일 특위가 출범한다. 소득주도성장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 체계를 꼼꼼하게 만드는 임무가 주어졌다. 앞으로 특위는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현장 목소리가 정책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외부 전문가를 모시고 주요 이슈에 대한 토론회도 개최하고, 주요 정책 방향에 대한 이슈 페이퍼를 기획할 예정이다. 소득주도성장 전도사 역할이다. 경제 체질을 바꾸고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하겠다.”
출처 | http://www.hankookilbo.com/v/3cb45be3d84441c3995ed5ffd481d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