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지켜 달라."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시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1년 반쯤 지난 지금, 초심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문재인 정부가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설정한 과제 영역은 크게 (1) 적폐 청산, (2) 전쟁 위기 해소와 평화 정착, (3) 소득주도 성장과 경제 민주화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은 최근까지도 기무사 계엄령 준비 문건, 대법원 재판 거래 등 국가의 근간을 흔들었던 초대형 사건들이 계속 발각된 데다가 앞으로도 어떤 일이 드러날지 알 수 없어 ‘적폐세력’이 공공연히 비난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2)는 비록 기대한 만큼 빠르게 진척되지는 않으나, 남북 관계 개선을 바라는 시민이 많고 미국도 공조하고 있어 예전처럼 ‘색깔론’으로 공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3)은 아직 두드러진 성과가 없어 개혁 반대 세력이 가장 흔들기 좋은 영역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초심’을 지키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기도 합니다.
최근 몇 달 간, 야당과 족벌언론들은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내년도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가 다 망한다는 둥, 소득주도 성장 정책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둥 하며 (3)에 융단폭격을 퍼부었습니다. 저들의 일차 목표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상징’인 장하성 실장을 낙마시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장하성 실장이 거주하는 아파트, 최저임금 때문에 경비원 해고”라는 터무니없는 기사까지 써서 그를 이중인격자로 매도했겠죠.
처음 문 대통령이 정책실장에 장하성, 경제부총리에 김동연씨를 임명했을 때, 김 부총리에 대해서는 정통 경제 관료라서 개혁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 부총리가 오른쪽에서 연속과 안정을, 장 실장이 왼쪽에서 단절과 개혁을 담당하는 것도 좋은 구도라고 봤습니다. 문재인 정부 전체로 봐도 선택과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이런 구도에서 야당과 족벌언론들이 장하성 실장을 집중 공격하는 건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들에게는 재벌 개혁을 방해하고 이명박 박근혜 때의 경제 체질을 ‘연속’시키는 게 1차 목표이고, 장 실장이 낙마하면 '우왕좌왕하다가 경제 망친 정부'라는 낙인을 찍는 게 2차 목표일 겁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의아하게 여긴 건,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라며 스스로 ‘진정한 문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민주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덜 개혁적이고 재벌 친화적인 사람을 대표로 미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어떤 구도가 좋은지는 아예 따지지도 않고 그저 이재명 지사에 대한 태도만을 단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과 경제 민주화가 야당과 족벌언론들에게 난타를 당하는 마당에, 여당까지 거기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요? 결국 하고 싶은 일은 못하고 끌려가는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지지하는 사람조차 이재명 지사 ‘출당’이 아니라 ‘자진 탈당’을 언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어떤 사람이 당 대표가 되더라도 명백한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선출직인 이재명 지사를 쫓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임명직에 대해서는 당 대표의 의사가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겁니다. 분명 이재명을 향해 총을 쐈는데, 그 총알이 장하성, 김상조, 조국 등을 맞추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말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선택을 할 리 없습니다.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그 마비 상태를 이용해서, 바보 같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세력은 언제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경험한 바로 보면, 그런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