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고
미팅을 나가서도 분위기만 띄워주고 싹 빠지는(쫒겨나는 것 일수도...)
나의 연애는 늘 아는사람과였다.
학교에서 만나 구애의 춤을 추며 따라다녔던 한 선배가
애인과 헤어진 틈을 타 위로의 손길을 가장한 유혹의 손길을 뻗으며 한 번.
학원에서 스터디를 하다 만났던 사람은
영어 스터디인지 연애 스터디인지 또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게 내 여자친구였다.
2014년 크리스마스.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난 그 날이기도 하지만,
솔로가 된지 1년차, '세상은 다 똥이야...' 를 숨쉬듯 말하던 그 날이기도 했다.
커플인 친구들이 파티를 한다고 하는데
내가 너무 불쌍했는지 끼워줬다.
커플2, 나 1
나는 짝이 없으니 왕자리에 앉았고, 짝이 있는 친구들은 끼리끼리 앉으며 마주봤다.
할 것도 없겠다 음식이 나오면 썰어주고, 비벼주고, 덜어주고를 하자
왼쪽을 쳐다보면 하나가 입에 먹여주고 있고
오른쪽을 보면 하나가 입을 닦아주고 있어서
잘 익은 고기가 똥으로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오늘은 예수님 생일이니까.
미리 준비했던 커플양말을 한 커플씩 던져줬다.
"신발을 주면 도망간다니까, 양말을 줄게.
그럼 니들의 사이는 미끄러지겠지."
그렇게 똥인지 고긴지도 모를 안주와
꼴에 분위기 낸답시고 와인을 두 병 먹고 거리로 나왔다.
"야 됐고 한잔 더 해!"
그랬더니 이것들의 눈빛이 쎄하다.
마치 '급하게 나오느라 눈치는 집에 놓고왔냐?' 라는 표정이었다
몇 번 보지 않은 한 친구의 짝은
"아..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라며 복통터지는 소리를 했고.
나머지 한 짝들은 도망치려 택시를 잡고 있었다.
그래... 내가 나온게 잘못이지.
"오늘만 봐줄게 또다른 예수님이 탄생하지 않게 조심들 해라"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집에가기 매우 적적했다.
나와 똑같은 신세인 친구를 불렀다.
"내가 크리스마스에 너랑 술을 먹어야 하냐?"
"그럼 누구랑 먹을껀데?"
"너♡"
그렇게 우리는 자주 가던 바에 갔다.
늘 우리의 동지였으니까. 거기는 늘 우리의 위안이 됐던 곳이니까.
하지만 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듯이
바 안에는 2진수들이 난무했다.
구석탱이 겨우 남은 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술을 홀짝홀짝 마시는데 친구의 안구가 한 시도 쉬질 않는다.
"야 저기 완전 니스타일 있다"
"하지만 저분에게 나는 아닐거야..."
"한 번 보기나 해봐"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너무나도 예쁜 여자가 혼자 앉아있었다.
나는 등을 지고 있는 상황이라 잽싸게 친구에게 옆자리에 누가 있는지 스캔을 지시했고
친구는 우리 회사 스캐너보다 더 빠르게 스캔을 하기 시작했다.
"동지여"
"혼자 온 것 같다"
"옆에 사람들이랑 말하는게 어색한 것으로 보아, 혼자 왔는데 옆 테이블이랑 친해진 듯 하다"
"오른쪽 얼굴보다는 왼쪽 얼굴이 더 예쁘다"
"하지만 너는 양쪽 다 못생겼으니 어떤 수를 써도 안되겠지"
나는 나를 매우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친구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실실거리며 맥주를 사러 갔고
나는 혼자 내가 얼마나 못생겼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툭툭 친다.
하여튼 커플들이란...
"아이씨 뭐야..."
가뜩이나 기분도 안좋겠다
온갖 안면근육을 다 쓰며 얼굴을 구겨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였다.
"크리스마스인데 뭐해요?'
여자를 확인하고 급하게 얼굴을 펴는데 회복속도가 느린 나이라
덜 펴진채로 대답했다.
"술 먹잖아요"
아마 여자가 받아들이기엔 인상을 잔뜩 쓰고 뭐 이런애가 있나 싶었을거다.
"혼자 왔어요?"
"아니요 친구랑 왔는데 지금 술사러 갔어요."
"그렇구나...#%#$#%@%$# 해요?"
주위가 너무 시끄러운 탓인지 여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네?" 하며 몸을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몸서리를 치며 다시 돌아 앉는 여자.
그렇지...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길리가 없지.
친구에 두 손에는 맥주가 들려있었고,
나는 사약을 먹는 기분으로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등 뒤에서 또 툭툭.
"여기 자리 비었어요. 이리 와서 같이 먹을래요?"
상황을 모르는 친구의 눈은 곧 튀어나올 지경이었고.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여자가 앉아있는 자리는 바텐더와 마주하는 자리였다.
일렬로 쭉 앉아있었고,
눈치가 빠른 내 친구는 여자의 옆자리를 내게 내어주었다.
자비로운 자식...
그렇게 우리 이야기는 시작됐다.
"왜 혼자 왔어요?"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심심하니까 그냥 대화상대가 필요한거겠지...'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나이, 사는 곳, 직업, 취미 등등
"음식은 뭘 좋아해요?"
뜬금없이 저 말이 왜 나왔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
여자는 "평양냉면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 때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주위의 소음이 하나도 들리지 않고
여자의 얼굴만 보였다. 그것도 매우 빛나게.
평양냉면.
나는 평양냉면 부심을 부리는 흔한 면식가중 하나였다.
의정부 스타일이 어떻고 고춧가루가 어떻고 메밀이 어떻고 등
한 겨울에도 평양냉면을 찾아먹는 그런 사람이었고.
안타깝게도 내 친구들 모두 평양냉면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
늘 쓸쓸하게 면을 흡입하던 나였다.
그런데,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정말 예쁜 여자가 내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나는 물개박수를 치며 적극적 전투태세로 돌변했다.
"번호좀 알려주세요. 나중에 같이 평양냉면이나 한 젓가락 해요"
"연락 계속 하실거예요? 보통 연락처 받아가시면 연락이 잘 끊어져서..."
거절의 표현인가 한참을 고민하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자는 번호를 알려줬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저 여자는 왜 갑자기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으며,
왜 같이 술을 먹자고 제안했으며,
왜 번호를 알려줬을까.왜? 저렇게 예쁜 여자가 나한테?'
가만 생각해보다
한결 같이 리액션 좋고 참 밝았던 여자는
번호달라는 내 말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연락하기 싫으시면 하지 말까요?"
"연락하고 싶으니까 번호 줬죠."
아... 그 퀘퀘하고 어둡던 술집이
저 여자의 입술색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때 알아 차렸어야 했다.
저 여자의 상대들이 왜 연락을 끊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