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선거 직전에 경기도지사 선거에 관해 장문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좋아요 7천 번 이상, 공유만 2천 번 가까이 됐으니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취지는 “민주당이 후보 잘못 내는 바람에 고민스럽게 됐다. 차라리 남경필 찍겠다는 사람들 마음도 이해한다. 그러나 남북 화해 시대에 교류협력의 관문인 경기도를 자한당에게 넘기는 건 위험하다.”였습니다. 이재명 지사가 그 글을 봤다면 무척 기분 나빴을 겁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자마자, 저를 ‘찢빠’라며 욕하는 멘션이 쇄도했습니다. 표창원, 최민희 의원 등도 집중공격 대상이 됐죠. 경기도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더러 자한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재명 지사를 비난하고, 진상 규명이나 퇴진을 요구하는 건 시민의 당연한 권리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찢빠’ 낙인을 찍는 건 시민의 권리가 아니다. 민주시민들 사이에 의심의 씨앗을 뿌려 분열을 유도하려는 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글을 썼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이재명 비난하는 건 외부세력의 소행”이라고 했다며 글의 취지를 왜곡해서 퍼 나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남의 글을 왜곡하는 이유는 둘 중 하나입니다. 사악하거나 무식하거나. 라디오 방송 진행자들조차 이런 왜곡을 서슴지 않는 걸 보면, 왜 조선일보가 아직 1등 신문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무개’는 문성근, 이기명, 주진우, 김어준, 김제동, 이승환, 조국, 박주민 등으로 계속 늘어났고 급기야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역사학은 추세와 방향을 보는 학문입니다. 저는 역사 속에서 이런 움직임의 목표 지점을 수없이 봤습니다. 현재 이재명 지사를 적극 옹호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대다수는 ‘수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쪽과 ‘당장 축출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이는 ‘확신’과 ‘의심’의 비중 차이이자 타이밍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차이는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이 ‘비본질적 차이’를 ‘본질적 차이’로 만들어 둘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을 심어놓으려는 움직임을 분명히 감지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민주당 지지율은 20% 내외였습니다. 문 대통령 인기에 편승해서 한때 60% 가까이까지 올라갔다가 최근 40%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지만, 현재 민주당 지지자의 반 이상은 ‘최근에’ 지지 정당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민주당의 재집권을 기필코 막으려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에겐 최근에 합류한 지지자가 오래된 ‘골수’ 지지자들과 화합해 ‘콘크리트화’하는 게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세 번 정도 연속으로 같은 당에 투표하면, 보통 ‘정체성의 일체화’가 이루어집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이라는 정서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찢빠’로 몰려 공격받는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민주당 의원이거나 오래된 민주당 지지자들입니다. 반면 ‘낙인찍기’의 최선봉에 선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뭐 했는지 알기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문재인 정권 탄생 전후에야 비로소 자기를 ‘진정한 문파’라고 소개한 사람도 있고요. 이들이 ‘비본질적 차이’를 ‘본질적 차이’로 바꾸기 위해 애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에 쓴 바 있습니다. 만약 민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민주당 지지층의 콘크리트화’를 막는 데 이 보다 이용하기 좋은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낙인찍기’에 열심인 계정 중에는 프로필에 “오직 문프만 지지”라고 쓴 것들이 많습니다. 문 대통령이 워낙 흠 잡을 데 없고 인기가 높으니 ‘본받을 만한’ 태도 같지만, 사실 이건 ‘악마의 워딩’입니다. 지난 수천 년간, 간신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입니다. “소신은 오직 전하께만 충성합니다. 다른 자들을 믿어서는 아니되옵니다.” 간신들은 이렇게 해서 왕과 다른 신하들을 이간질하고, 결국 왕을 고립시켰습니다. 저들도 ‘문프는 절대 신임하지만 민주당은 믿지 않는다’고 공언합니다. 문 대통령 퇴임 후 민주당을 버릴 마음의 준비가 돼 있음을 밝히는 것이고, 남들더러 그러라고 시키는 것입니다. 며칠 전 민주당 전당대회 뒤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하나‘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 말은 무조건 믿는다면서, 왜 저 말은 믿지 않는 걸까요? 민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투 트랙 전술을 구사할 겁니다. 첫 번째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여 아주 잠시 민주당에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 최근 지지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는 이 전술의 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굳건하되 민주당과는 정서적으로 거리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 아무에게나 ’찢빠‘ 낙인을 찍고 민주당 내에 ’찢빠‘가 많다는 왜곡된 정보를 퍼뜨려 새로 합류한 지지자들이 오래된 지지자들과 화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이 전술의 목표입니다. 이는 단기적으로 민주당 내 내분을 부추길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문 대통령 퇴임과 동시에 신규 지지자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릴 수 있는 전술입니다. 문 대통령 말씀대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하나입니다. 경찰과 검찰은 정부 소속 기관입니다. 이재명 지사 문제는 사실이 밝혀지는 데 따라 순리대로 처리될 겁니다. 그러니 ’비본질적 차이‘를 ’본질적 차이‘로 확대해석하고, 공격의 화살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돌리라고 주문하는 사람들을 의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남의 글을 왜곡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