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궁녀'는 백낙천이 당현종과 양귀비를 소재로 한 시에서 나온 말로,
대개 중국에서는 폭군들이 주색에 빠져 충신 말도 안 듣고 나라를 망칠 때 인용되는 싯구이다.
왕들은 다들 후궁들을 거느렸으니 물론 의자왕도 후궁들이 있었겠지만 삼천이란 말은 터무니 없는 과장이다.
그런데 의자왕에게도 그런 폭군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씌워서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서 백제를 패망시킨 것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삼천궁녀를 인용한 것일 뿐이다. 의자왕이 아무리 똑똑해도 나당연합군을 대적할 능력은 없다.
근데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인 게 좀 부끄러웠는지 의자왕을 폭군으로 몰아세워서 백제 백성들을 폭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그렇게 의자왕을 매도했을까,,,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진실의 기록이 우선인데,,,
의자왕은 젊어서는 해동증자로도 불려졌고 죽어서도 의롭고 자애로운 왕으로 여겨져서 묘호를 의자왕으로 할 정도였다.
궁녀들은 왕의 많은 여인들 중의 하나이므로 굳이 절개를 지켜 죽을 필요가 없지만,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걸 보면 의자왕에 대한 정이 깊었고 의자왕이 그렇게 방탕한 왕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광해군도 조선시대에는 폭군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자주적이고 실리적인 외교정책과 위민정책을 시행한 개혁군주로 재평가 받고 있는데,
의자왕도 누명을 벗어야 한다.
오늘의말씀 (2013-08-11 13:00:14) 국가의 마지막 왕은 시호를 붙여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냥 이름으로 불린다고 하군요.
의자왕의 이름이 '의자'이고 보장왕의 이름이 '보장'이군요.
경순왕의 경우는 고려에 평화적으로 항복했기 때문에 고려 측에서 시호를 붙여 주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