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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쌓여가는 눈 위로 말발굽과 바퀴자국이 깊게 패여 간다. 그네들은 발자국 남겼고 누군가는 그 위에 또 다시 발자국을, 누군가는 그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갈 길을 재촉한다. 그런 이들의 발자국이 닿지 않는 눅눅하고 습한 골목을 지나 도시의 외곽, 눈과 함께 회색 담뱃재가 수북히 쌓여갔다.
톡톡, 그녀는 습관처럼 타들어가는 담뱃잎의 재를 털어냈다. 열네 살, 노란 딱지를 스스로 받고 이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담뱃잎을 태웠다. 그리고 톡톡, 재를 털어낸다. 그녀, 그녀는 종종 스스로가 이 담배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이 안의 무언가가 다 소모되어 회색 재만 남게 되면 이 구역의 포주는 습관처럼 그녀를 털어낼 것이다. 그녀에게 태우는 법을 알려준 이도 그렇게 톡톡, 털려 나갔지.
머잖아 그녀와 그녀가 태우는 법을 알려준 이들도 털려나갈 거다. 바람이라도 불어와 멀리 흩날리기라도 한다면- 그런 일은 없다. 새로 떨어지는 잿더미들은 저번에 떨어지는 잿더미들과 뒤엉켜 이 구역 어딘가를 배회할 것이다. 바람에 날리기에는 너무 무겁고, 누군가의 발에 치이고, 누군가가 무심코 뱉은 침을 맞을 것이다. 톡톡, 털어져나갈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그녀는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다. 세월에 슬어가는 주름, 점점 뜸해져가는 나그네의 발걸음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동안을 그렇게 담뱃잎을 태우고, 연기를 내뿜고 멍하니, 혹은 무슨 생각에 잠긴 사람처럼 넋을 놓고 있다 한숨 쉬기를 반복했다. 곁에 있는 여인네들이 각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사라질 때에도, 잠들어 있던 전등들이 기지개를 켜고 환히 빛날 때에도 그녀는 그렇게 앉아 있었다. 성탄의 전야, 여느 해보다 추웠던 겨울임에도 그녀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얇디얇은 드레스 사이로, 하얀 피부가 움츠러들어 더 창백해지고 코끝이 빨갛게 익어갔지만 그런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성탄전야와 성탄절에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낭만어린 상상은 이 거리에서 얼어붙어 버린 지 오래, 대신 그녀는 얼마 전에 있던 사건에 대해 생각했다.
작은 발걸음으로 천 이백 예순 다섯, 큰 발걸음으로 칠백 서른 세 발걸음을 걸으면 목재로 된 큰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곳에는 노파와 동생이 산다. 아니, 살았다.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 그리고 그녀의 동생 리자베따 이바노브나. 둘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죽었다. 머리가 도끼에 쪼개어져서 죽었다. 바닥을 끈적하고 검붉었던 그것으로 적시며 죽었다. 사이가 썩 좋지 않은 사이였는데(노파가 일방적으로 리자베따를 노예처럼 부렸다), 가는 날만큼은 함께였다.
처음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칠장이 드미트리 미치카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범인이 자수했다. 살인자는 라스콜리니코프라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소냐와 함께 있다 몇 번 보기로 병약하고 소심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도끼를 들어 두 사람의 머리를 쪼개었다니!
차마 믿기 힘들었지만 그는 그 일을 해내었고 자수를 하였고 재판을 받았고 모스크바의 형무소로 끌려갔다. 아마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를 따라간 소녀, 소냐. 아, 소냐.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곳에서 어떻게 되건 상관없지만 소냐는 한 번쯤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녀처럼 술주정뱅이 아비에 미쳐 날뛰는 계모 사이에서, 스스로 노란 딱지를 받고 이곳으로 왔던- 참 착한 아이였다. 만약 제대로 된 아니, 평범했던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생각하다 그녀는 상념에서 깼다.
만약이란 없다. 10시를 알리는 나팔소리가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여밀 것도 없는 옷을 여미고 일어났다. 덩달아 그녀처럼 누군가의 선택받지 못한 여인들도 일어났다. 집으로, 아무도 없을 텅 빈 그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오늘도 홀로 돌아간다 생각하니 ,왈칵 서러움이 몰려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설움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내일 탄생을 기리는 유대의 성인은 그녀와 같은 창녀의 발을 친히 닦아주었지만 그녀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하루에 세 번 기도를 잊지 않았고, 그래서 성탄의 전야, 그 끝자락서 누구나 꿈꿔 마지않을 근사한 신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성인이 기도를 들어주었다고 믿었다.
“…!”
그녀의 발걸음을 멎게 한 신사는 유난히 피부가 창백했다. 언뜻 핏줄이 도드라져 보여 잦은 잔병치레를 하는 부잣집 도련님 같은 느낌도 났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사는 그녀를 보아왔던 그 어느 남자보다 근사하다는 것이다.
"저를 불렀나요?" 그녀가 물었고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싱글벙글 웃는 것이 마치 천진난만한 개구장이 소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부잣집이나 귀족의 자재가 아닐까. 그녀가 뭐라 묻기 전에 그가 물었다.
"소피야 세묘노브나 마르벨라도바, 알지?“
문득 그녀는, 유독 그의 뒤편이 어둡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게 빛나던 전등들도 그의 뒤편에선 빛을 잃었다. 너무 오래 추운 곳에 있어 착각하는 거일수도 있어. 추위에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지.
그는 한걸음씩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신은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
2
새해 벽두부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 것인지, 니꼬짐 포미치는 이른 아침부터 썩 기분이 좋지 않아다. 오랫동안 도시를 맴돌았던 노파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휴가 중이었건만, 도시는 그 며칠사이의 고요함을 참지 못하고 또 다시 비명을 질렀다. 그는 쉬고 싶었지만, 경찰서장이라는 명함은 그를 쉬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빨리 가셔야 합니다."
그래, 젠장. 간다고 가. 재촉하는 부하를 따라 그는 제복 대신 족히 십 년은 되었을 양털 모자와 코트를 입고 집을 나섰다. 도시의 비명을 듣지 못한 것인지, 사람들은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다. 모스크바의 겨울, 그리고 눈은 비명을 묻어버리기에 충분하다. 만약, 지금 당장 눈을 치우지 않는다면 무릎까지 쌓인 눈이 다음 날 허리 이상으로 쌓여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는 눈삽을 들지 않기로 했다. 그의 아내나 어린 자식들이 불평을 터뜨리겠지만 지금 눈삽을 들었다가 시장의 호통이 터지는 것보단 낫다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시내로 나아가, 골목을 지나 호수에서 한참을 떨어진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이 많이 늦지 않았음에(도리어 남들보다 일찍 도착했음에)안도했다. 공직의식 투철한 그의 수하들은 능수능란하게 현장접근을 통제하고 있었고 한 켠에서 부서장 일리야 빼드로삐치는 아침에 먹은 내용물들을 모두 게워내고 있었다. 딱 생긴 것만큼 유약한 부서장은 늘 이런 식이다. 이번에도 그에게 브리핑을 듣기 글렀다 싶어 니꼬짐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러하였듯 모든 것을 솔직히 이야기해 줄 것이다.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신원은 파악됐나? 먼저 묻기도 전에 그를 안내한 부하가 말했다.
"신원 불명에 올해 스물 여덟살로 추정되며…“
“신원이 없어? 이름은?”
“아시잖아요. 다 거짓이죠.”
그렇긴 하다. 노란 딱지를 지닌 족속들은- 물론 전부가 그런 것들은 아니겠지만 모든 것이 거짓으로 범벅되어 있다. 진실도 거짓이고 거짓도 거짓이다. 그러니까 살아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짓인 셈이다. 아니, 이제 죽었으니 모든 것이 거짓이다. 완벽하군.
"사인은?“
“직접 보시죠.”
니꼬짐은 그녀를 덮은 흰 천을 살짝 들어올렸다. 이래서, 일리야가 구토를 하고 있었구나. 니꼬짐은 수긍할 수 있었다.
"정수리부터 하부까지 아주 깨끗하게 찢겨 죽었습니다. 팔다리의 상흔은 이 여인을 처음 목격한…"
"마차였겠지." 마차라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니꼬짐의 머릿속에 아주 선명한 영상이 그려졌다. 마차를 몰던 마부는 이곳에서 덜컥 혹은 우드득하는 소리를 들었을 거다. 실제로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은 적 없어 잘 모르겠으나 니꼬짐은 그리 생각했다. 마부는 마차에서 내려 소리가 났던 곳의 눈을 치운다. 그리고 눈에 덮혀 있던 노란딱지의 여인을 발견, 그리고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 다음으로 말미암아 휴가 중에 여기 와 있으니까. 니꼬짐은 다시 한 번, 천을 들추었다. 그는 이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자로서, 피해자를 마주할 의무가 있었다. 양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있었기에 마차에 훼손된 부분은 양 팔 밖에 없었다.
그녀의 몸을 찢어버린 이유는 따로 있다.
"자묘도프, 폭설경보가 언제쯤 시작됐지?" 그의 충실한 수하, 사무관 자묘도프는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양꼬치엔 칭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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