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호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일제시대 때 한국사에 대해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으로 점철된 식민사관을 퍼뜨리던 조선사편수회와, 친일학회인 청구학회에 몸담고 실무를 맡던 자입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 그는 곧 민족주의자로 변신합니다. 민족주의에 대해 그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여 국사편찬위원회 책임자가 되고, 항일운동과 독립운동을 연구하겠다며 들고나서 무려 순국선열과 생존지사에 대한 평가작업에서 실무자로 위촉되고, 독립기념사업회 위원, 이준열사 사인조사위원회 위원, 동학기념사업회 부회장까지 역임하는 수완을 발휘합니다.
재미있는 건 50년대 이승만 정권에서는 그렇게 이승만을 추종하며 빨아대더니, 5.16이 일어나자, 재빨리 이승만을 비난하고 박정희를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그는 일제시대부터 5공에 이르기까지 내내 역사학계의 거두로 대접받으며 살았고, 무엇보다 1962년부터 1968년 사이에 독립유공자를 선정/심사하는 위원으로서 목에 힘을 주며 군림했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박정희에 대해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그의 만주군 이력도 많이 말해야 할 거리이나, 여기서는 잠시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는 해방 직후부터 1948년 말까지만 해도 군내 남로당 군사총책이었습니다. 그러나 5.16 이후에는 그의 남로당 경력 때문에 좌경화를 의심하던 미국을 의식해서 누구보다 목소리높여 '반공'을 부르짖습니다. 그의 투철한 '반공국시' 덕분에 스러져간 수많은 넋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수많은 민족반역자와 친일파와 반민주주의자가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인간들을 가장 혐오합니다. 평소에 자기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반민족, 반민주행위를 하다가 시대가 바뀌면 자기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더 먼저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친일파 혹은 좌익인사들을 앞장서 처단하던 자들.. 그리고 누구보다 선명한 민족주의자, 혹은 자유민주주의자인 척을 하며, 무려 진정한 민족주의자들과 자유민주주의자들을 평가, 재단하는 자리에 올라 억압하기까지 하던 후안무치한 자들.. 단순히 기회주의자라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이런 뱀같은 부류의 인사들을 가장 혐오합니다.
최근에 권순욱이라는 이의 목소리가 진보진영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일 그가 이명박근혜 시절, 어떤 부분에서든 희생을 감수하고 시대가 원하는 목소리를 냈던 언론인이었다면 다른 말이 필요없겠지만, 저는 그의 2016년 이전과 이후의 모습에서 자꾸 신석호와 박정희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아 열심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 진영 내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기대하듯,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문파의 도덕적 우월성을 견지하기 위해 몸바쳐 일어선 신성의 기사라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쏟아내는 독설의 날끝이 자꾸 이명박근혜 시절, 시대의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향한다고 느껴지는 것은 저만의 기우인가요?
적어도 권순욱이라는 이가 자신을 입증하기 위해선 더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가 자유한국당과, 거대재벌과, 양승태 사법부와, 기무사 등 외부의 분명한 적폐세력에 대한 분명한 전공을 세우고 나서 내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소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만, 아직은 그에 대해 경계심이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특히 저는 오유인으로서도 그의 어투와 문체에 대해 불만이 큽니다. 상대방에 대해 비아냥과 조롱과 욕설이 난무하는 그의 문체가 진정한 문파의 문체와 결이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곳은 오유 아니겠습니까? 최근 오유 시게가 서로를 혐오하고, 부정하고, 상처주는 말로 가득차게 된 것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의 영향도 조금은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져서, 그리고 그런 언어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신석호나 박정희같은 자들의 전매특허인 경우가 많기에 저로서는 경계심과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