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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눈팅족 람보원입니다.
늘 직접 컨텐츠를 업로드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에 치여 미뤄오다가 연휴를 맞아 업로드해봅니다.
저는 이공계 출신 전직 영화 엔지니어입니다.
지금은 아... 머리아프네요ㅠㅠ
여하튼, 기존에 이미 일반 영화 리뷰는 많고 그런만큼 내용 분석에 충실한 비평은 많은데비해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가십으로만 간단하게 나오고 마는게 안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 칼럼을 쓸 기회가 생겼으나 바빠서 불발되고, 그때 써둔 원고를 일단 이곳에 풀어봅니다.
다소 딱딱한 상태인데 앞으로 수정할 예정이구요.
그럼 시작합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포함 7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
#1. 2014년 3월 2일 미국 로스엔젤리스 돌비 극장
화려하게 차려입은 스타들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감도는 이곳은 L. A.에 자리 잡은 돌비 극장. 할리우드 최대 이벤트인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된 지도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미 감독상, 남녀 주연상, 작품상의 메인 스테이지만 남은 상태. 다섯 명의 감독상 후보와 해당 작품이 호명될 때마다 고조되던 긴장감이 일순 멈추고, 올해의 수상자가 발표되자 환호 속에 무대 앞으로 나서는 라틴계 남자. 멕시코 출신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다. 그는 조난당한 우주인이 지구로 귀환하기까지의 90여분을 그린 <그래비티(Gravity, 2013)>로 시각효과상, 음향 믹싱상, 음향 효과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의 6개 부문을 석권하고, 감독상까지 수상했다. 이는 영화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은 물론, ‘보는’ 것을 넘어 ‘체험’하는 예술을 재현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약 120년 전, 영화라는 인공 매체가 ‘발명’되었던 바로 그 날의 체험 말이다.
#2.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 그랑 카페
12월의 끝자락. 파리의 한 카페 지하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묘한 기대감으로 반짝인다. 이들은 훗날 최초의 상업 영화 관객으로 기록되지만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3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 역사적인 순간으로 남을지. 이 자리를 기획한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뤼미에르 형제 역시 그들이 상영한 10편의 영상이 새로운 예술 장르를 열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리도 없이 역에 도착하는 열차의 모습이 담긴 50초짜리 짧은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마치 기차가 스크린을 뚫고 나와 그들을 덮칠 것같이 느꼈다. <열차의 도착(L’Arriv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 1895>과 함께 최초로 시간이 물질에 담기고 재생되고, 이 경험이 공유되는 영화라는 매체가 ‘탄생’한 것이다.
열차의 도착 https://youtu.be/b9MoAQJFn_8
#3. “영화 좋아하세요?”
예술은 어렵다. 평범한 우리들은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고 들어선 미술관을, 클래식 공연장을 나선 후에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영화는 다르다. 교양을 과시하며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그저 재미있었다 혹은 재미없었다는 한 마디로도 충분하다. 개똥철학을 늘어놓아도 좋고, 배우의 연기에 빠져도 좋으며, 아름다운 장면과 음악에 취해도 좋다. 저렴한 관람료만큼이나 낮은 이해와 공감의 문턱은 영화를 대중 예술로 만들었다. 이런 높은 접근성 덕에 우리는 영화를 쉽다고 느낀다.
그저 영화가 좋아서, 물리학의 길을 접고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두 시간의 백일몽을 만들기 위한 과정 역시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관객이 그저 수동적으로 자신과 화면 사이를 채운 빛과 소리 자극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그 편안함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예술적, 기술적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결코 쉽지 않다. 순간의 셀카 한 장을 찍기 위해서도 조명, 카메라와의 거리, 각도, 초점 등 제어해야 할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며, 포토샵 등 소프트웨어를 통한 후보정의 힘까지 빌지 않나. 이런 사진 수천수만 장에 소리까지 적절한 시간에 동기화시켜 담고 다양한 플랫폼에 맞춰 재생시키는 일은 예술적 영감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낭만적 작업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 집약적 작업이다. 기술로서의 영화, 그 이상의 매력에 빠진 후 영화와의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4. ‘발명’된 예술
자연발생적인 인간 활동인 예술과 발명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음악, 미술, 무용, 문학, 연극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답할 수 있는가?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1만 년 전에도 그곳에 있었고, 약 2천 년 전 가야의 토착민들은 김수로 왕을 구지가라는 노래로 영접할 수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화는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 분명하게 답할 수 있다. 영화의 역사가 짧아서가 아니라 영화 예술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했기 때문이다.
키네토스코프 관람 모습 https://en.wikipedia.org/wiki/Kinetoscope
영화사 초기의 영화는 열차가 도착하는 모습, 물을 뿌리는 소방관의 모습,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의 모습과 세계 각국의 구경거리 등을 담은 기록영화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촬영 기법과 편집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플롯을 담을 수 있게 되자 이야기를 전달하는 종합예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녹음기술과 컴퓨터그래픽 기술 등이 영화에 도입되어 영화 제작 과정은 복잡한 기술적 공정을 거치게 된다. 이를 크게 분류하면 사전 제작(Pre-Production) – 촬영(Production) – 후반 작업(Post-Production)으로 나뉘며, 영화의 일반적인 제작 과정과 이에 필요한 기술은 아래 표에 정리하였다. 단, 아직까지 촬영 및 영사가 모든 상영 환경에서 완전히 디지타이징 되지 않았으므로 제작 과정은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한 필름 작업을 기준으로 한다. 또한, 표현 기법 등 영화 예술적 문법과 관련 기술은 추후 연재에서 다룰 예정이므로 본 도표에서는 생략한다(보다 자세한 영화 제작 과정은 한국영상자료원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다시 “영화 좋아하세요?”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영화는 쉬운 문화 콘텐츠다. 이 연재는 영화 제작의 복잡함을 토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친숙한 영화 매체 제작 과정의 기술과 원리를 공유하여, 영화 보는 즐거움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 부족하나마 영화와 기술 모두를 공부하고 몸담은 이력을 살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영화 기법과 원리, 예술적 표현이 가능한 과학적 근거, 실제 개봉한 영화에 사용된 장비와 기술, 영화적 문법의 원리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우리의 두 시간이 더욱 충실한 경험이 되길 기원하며 글을 마친다.(*)
참고문헌
[1] Geoffrey Nowell-Smith, “The Oxford History of World Cinema”, Oxford University Press, pp. 29, 1996
출처 | 예전에 써둔 칼럼입니다. 어쩌다보니 묵히게 되었는데 오유에 공유하고 피드백 받고 싶어요. 직접 조사하고 쓴 글이니 불펌하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