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게에 어울리는 내용같기도한데... 일단 과게에 써봅니다. SF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복제인간이라는 소재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입니다만 나와 "똑같은" 인간인데 어째서 다른 자아를 갖는 걸까요? 이것에 대해서 고찰해봤습니다. 전공자가 아니라서 용어사용은 양해를 좀.. (굽신굽신)
우선, 의식과 자아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이 세상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의식의 매커니즘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 세상 안에 존재하는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것이라는 건 합당한 전제라고 봐도되겠죠. 사실 이 범주를 벗어난다면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구요(...)
또한, 복제대상은 복제인간과의 완벽한 일치성을 전제로 합니다. 인체의 복잡성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지는 당연히 제쳐둬야겠지만, 양자역학에서의 확률이나 물리적으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한다는 이유로 자아가 분리되는 거라면 그건 그거대로 엄청나게 흥미롭겠죠. 따라서 실제로 완벽하게 같을 수 있는지는 보류로 하고 인체의 범주에 드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A라는 사람과 그와 완전히 같은 유전정보와 신체상태를 가진 B라는 클론이 있다고 합시다. 물론 A와 B의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변수는 모두 통제된 상태입니다. 그러면 A와 B는 완전히 같습니다. 어떠한 과학적 방법론으로도 이런 전제 아래에서 A가 B와 어떠한 점에서든 다르다는 것을 보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자의식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전제에 따르면 그들은 완전히 똑같이 생각하고, 실제로 뇌에서도 똑같은 작용을 거칠테니까 자아를 외부로 표상할 수 있다면 A와 B는 서로 "똑같이 생긴"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이 자아의 완전한 일치는 A와 B 당사자들에게도 똑같이 다가와야 합니다. 즉 A는 자신이 A인지 B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죠. B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이런 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당신이 A라면, 당장 내 눈앞에 B라는 개체가 존재합니다만, 내 눈앞에 B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만으로 B와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테죠.
만약에 두 사람의 자아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집단의식을 형성해서 개별성을 완전히 상실한다고 해도 문제가 생깁니다. 두 사람의 감각은 이제 완전히 구분할 수 없게되고 A가 B의 얼굴을 보는 것과 B가 A의 얼굴을 보는것이 완전히 하나의 의식속에서 존재하므로 이것이 개체의 유일무이성을 입증할 수는 없게되겠죠. 그러나 둘이 완전히 같다고해도 A가 원본이고 B가 복제된 사실에는 변함이없습니다. 비록 B가 자기가 원본이라는 생각을 갖고 태어나긴 했지만요.
본래 B는 A를 본따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B가 없을때의 A는 단 하나의 자아를 가지고 있었고, B의 제조과정에서 A에게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죠. 모든 변수가 통제되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의 자아에서 갑자기 B의 의식을 취득해버렸다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물리적으로 A의 뇌에 영향을 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가 B를 인식하는 것이 그 영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둘의 거리를 광년 단위로 늘려버리면 어떨까요? 집단의식의 동력원이 뇌파든 뭐든, 둘 사이에 하나의 집단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끊임없이 정보가 오가는 과정에 최소 몇 년의 지연이 생겨버리겠죠. 그렇다면 그들은 최소 몇 년동안 개별적인 자아를 가져버리고 말죠.
완전히 같은 뇌를 가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의 자아인 A를 완전히 똑같이 복제했는데 하나의 자아인 A라는 개체는 소멸하고 식별 불가능한 A,B라는 집단자의식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B는 복제하려고 했던 A와 달라져버린 것이죠. 모든 변수를 통제한다고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변수로 작용해버립니다. 결국 어느쪽이든 모순이 생기죠.
그래서 두 가지 전제중에 어느 하나 또는 둘 다가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전제를 부정하는 것은 의식이 시공간이나 근거율 밖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어찌보면 관념론적이네요) 더 이상 논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의식이 논리적인 경과에 따라서 존재한다는 확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따라서 필연적으로 두 번째 전제인 "완벽성"에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리학에 깊은 지식은 없는지라 제가 논할 수 있는 건 완전히 똑같은 분자구조라도 다른 시공간에 있고 다른 사건이 일어나므로 완벽히 같지 않을거라는 정도네요. 유전정보 쪽의 복잡성은 완전히 해결했다고 가정해도요. 그러나 이것은 물리적인 존재의 개별성으로 자아의 개별성을 완벽히 입증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어느 한 점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자아를 가진다는 것은 그 다른 점이 자아 개별성의 근거로서 기능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 이런식의 논증은 마치 내 체온이 36도이고 네 체온이 37도로 다른 것이 우리가 개별적인 자아를 가지는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완벽히 일치"한다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그것이 개별적인 자아의 원인을 규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실제로는 결국 완벽히 똑같지 않은 점에서 개별성이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점 모두가 그것을 입증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아마도 의식의 매커니즘속에 그 다른 점중 일부를 포함하고 있겠죠.)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동시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했습니다. 이것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완전히 서로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겠죠. 그런데도 우리의 자아는 많은 시간을 거쳐오며 과거의 자신을 자신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1초전의 내 자아와 1초후의 자아는 물리적으로 완전히 다른데도 말입니다. 마치 세밀하게 따져보면 각 개체마다 조금씩 다를 유전자들이 모두 자기복제라는 본질에 있어서는 같은 것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자아는 본질적으로는 뇌속의 실재하는 현상으로서 존재하고 과거와 물리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자아를 연속하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똑같이 물리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는 타인의 자아와는 연관되지않도록하는 프로그램이 뇌속의 자아 매커니즘에 포함되어있다." 정도가 제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결론일까요(그 마저도 의식이 현실에 선행한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결국 그 매커니즘을 제가 알 수는 없지만(알면 노벨상 받으러 떠났을..) 복제인간의 자아에 대한 답은 복제인간과 원본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다른 존재이며 그 차이점 속에 의식의 개별성을 집행하는 요소가 포함되어있다는 것. 즉 다른 자아를 갖겠네요. 그런데 이런 쪽으로 파고들어보니 엄연히 물리적으로 다른 과거의 자신과는 연관되면서 타인과는 연관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네요.결국 거시적인 진전은 없습니다만..
철저하게 쓴 글이 아니니 재미로 읽어보시면 좋을 것같고 논리오류나 의문점 같은 게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철학게에 더 어울리는 것 같지만 전 최대한 과학적으로 접근해본참이고...
과게분들의 의견도 듣고싶고 사실 이런 쪽(특히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같은 것에서 오는 철학적 문제들)은 과학이니 철학이니 구분할 필요없이 여러방면에서 보면 좋을 것같아요.
미숙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