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좀 두서없어질지 모르겠으나 제 아들에게 말하는것으로 가정하고 써봅니다.
먼저, 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캐나다사람이 되고, 이젠 미국이민권을 갖게된점에 대해서 미안하다만... 아빠가 이런이유로 선택했고, 잘 선택했다 혹은 후회한다는것을 이글을 통해서 이해해주었으면 한단다.
1. 군대
네가 고추를 달고 아빠한테 처음으로 안긴날, 네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울아들은 한국에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야.' 아빠는 한국의 군대를 별무소용이 없다고 단정을 지었기때문이란다. 네가 정 군을 간다면 미군이나 캐나다군으로 가길 바란다. 한국은 의무군인을 집지키는 개로 생각하고 대우하기때문에 내 아들이 그런 고생을 안하는것이 좋다는 생각이란다. 이 아빠는 1993년 6월에 논산으로 영장이 나왔다만, 네 할아버지가 몰래 연기해서 12월에 의정부로 입소를 했단다. 그 이유는 술만 마시던 네 아빠를 정신차리게 하려는 할아버지의 생각때문이었단다. (당시 논산훈련소 연대장이셨던 5촌당숙의 덕을 못보게 하려는...) 그래서, 6사단 2연대 2대대 5중대로 배속을 받고 GOP로 들어가 군대생활을 시작했단다. 사단장표창과 연대장표창을 받으며 육사출신 분대장이란 말을 들으며 생활을 잘 해내던 25개월의 군생활은 신병의 이유모를 자살로인해서 ROTC출신 중대장의 부당한 핍박속의 1개월은 군생활과 조직에 대한 심한 회의가 들게 했단다. 제대후에도 한 5년간은 꿈에서 그 중대장을 볼때마다 몸부림을 쳐서 일어날때마다 다리며 팔이며 멍이 들어 깨곤했단다. 누구는 특기병으로 제대할때 자격증을 몇개 갖고 나온다고 하지만, 104특기(M60 람보총)인 아빠는 자격증 공부할 여건도 아니었고 그럴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단다. 그야말로 20대의 초반 26개월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가득했단다. 혹여 네가 새해아침마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또는 요즘 진짜사나이에서 나오는 내용을 보고 현혹될까봐 덧붙인다만, GOP에 있는 군인들은 주적이 북한군이 아닌 후방에서 오는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이란다. 또한, 초병으로 들어가도 잠자는 군인이 대부분이며, 소대장들은 철책점검을 한번이라도 하면 다행일정도로 무시한단다. 다 쑈란다. 철책을 지키는 것은 군인이 아니라 TOC라고 불리는 CCTV같은 기계부대란다. 아빠의 이런 안좋은 경험이 너에게 군대갈 의무를 없애게 한 다행스런 선택이었단다.
2. 대학원
IMF덕에 들어온 대학원에서는 주로 아침 7시에 학교에 와서 창없는 연구실에 6명이 책상을 따닥따닥 붙여놓고 담배를 끊임없이 피워대는 선배들 틈에서 공부하다가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술판에 가서 새벽 2-3쯤 들가는 생활을 했단다. 물론, 술은 한전 혹은 전력연구소 선배들이 와서 사줬단다. 왜냐믄, 그 선배들 석사혹은 박사과정 등록해놓고는 술만 사주고 간단다. 석사 혹은 박사과정의 학생들과 연결해서 논문을 쓰면 거기에 이름올려서 학위를 같이 받는 그런 시스템인지라... 그 선배들도 본인들의 회사에서 프로젝트(연구비)를 들고 학교에 들어와서 지원해주니 서로 윈윈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단다. 논문의 제목을 잡는 길은 지도 박사과정 선배가 알려줬는데, '국내 국외 관련 논문 100편 읽고 나서 얘기하자.' 라고 했고, 논문방향을 잡고나서는 훌륭한 짜집기 기술을 전수해주더구나(중요아이디어 한 두줄이면 된다. 나머지는 짜집기로 채우면 되니까). 8개월쯤 지났을때, 몸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갔더니 담배를 너무 많이 펴서 폐에 거미줄이 심하게 폈다면서 약을 먹으라고 하더구나.(이 아빠는 지금까지도 담배한개비 피지 않았는데...) 몸이 힘드니 만사가 귀찮더구나, 교수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한학기만 쉬겠다고 하자.'ㅁㅊ놈, 너만 그 방에 있었냐? 유난도 떤다. 네 논문에 전력연구소 과장이 연계되어 있으니 잔말말고 다녀' 이말에 바로 한달후 캐나다행을 선택했단다.(이 아빠가 꽤 반골기질이 있어서, 누가 뭐라고 하면... 그냥... 콱..) 물론, 약 20년후쯤에는 대학생활이나 사회여건이 좋아져서 네가 이런 입장이 되지 않을수도 있겠다만, 그때 아빠는 소모품이 된듯한 자괴감이 들었고, 적어도 교수님이 좋게만 말했어도 그런 결정은 하지 않았을거란다. 논문을 마치지 않았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학위를 받으신 다른 분들이 손가락질 하며 거짓말이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는 네가 짜집기하지않는 진정한 학문을 할수 있는 곳에 있다는 생각에 기쁘단다.
3. 가정생활
네 할아버지는 아빠가 7살부터 14살이 되는 7년간 주말부부이셨단다. 2주일에 한번 금요일 밤에 오셔서 일요일 밤에 가시는... 오실때마다 참 열심히 놀아주셨던 그때의 할아버지 모습을 아빠는 지금도 머릿속 깊이 기억하고 있단다. 그래서, 이 아빠도 너에게 피곤한 기색을 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고 놀아주는 거란다. 축구를 같이하고, 캐치볼을 하며, 골프장가서 같이 연습하고, 테니스를 같이 치며, 책을 같이 보고 의논하고, 영화를 같이 보고 얘기하며, 청소를 같이하고, 잔디깍는것도 같이... 우리 가족이 같이 있는동안에는 무엇이든 같이 하면서 공감대를 공유하고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이 아빠와 엄마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몸은 조금 힘들지만, 아빠 엄마는 이 순간순간이 너무 기쁘단다. 너도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이런 기쁨을 느끼기를 바란단다. 우리 집 가훈 '동생동사' 를 실천해주기를 바란다. 한국에 있는 아빠의 친구들과 선후배들의 얘기를 전해보자면, 아이 자는 얼굴 보는 날이 대부분이고 주말엔 피곤해서 쉬고싶다고 하더구나. 아빠는 너랑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항상 웃는 우리 가족의 모습 보는 것이 너무나도 좋단다. 이민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단다.
4. 학교생활
옳고 그름을 말할수 있고 실천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빠는 이민하기를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단다. 작년에 Justin과 있었던 일(저스틴의 아빠는 유명한 외과의사였고 백인이었지)- 너를 한국인(동양인)이라고 비하하며 놀려서 네가 울고 들어온날, 엄마아빠는 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고 있었단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주선으로 저스틴의 부모를 만났고, 그들의 진정어린 사과를 받았단다. 물론, 지금은 너의 플레이메이트가 된 저스틴이 너를 더 보호해주고 친해졌지만... 아마도, 한국에서는 이런 불편한 일을 당해도 부모간의 서열정리로 네가 더 많은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르겠다만, 여기서는 그래도 상식이 있어선지, 저스틴 부모가 똥피하는 심정으로 행한일인지는 모르지만... 잘못한것은 사과해야하고 잘한것은 평가받는 이곳에서 너를 키운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단다. 그렇지만 아들아. 이곳에서도 인종차별은 있단다. 작년의 네 담임이 부모상담에서 네가 산만해서 정신과 의사를 만나보고 ADHD약을 먹어야된다고 말해서, 네 엄마가 울고 들어왔단다. 네가 사귄 저스틴과 함께 노느라 선생님 말씀을 잘 안들어서 그런것이었지만, 저스틴은 아무얘기도 듣지 않고 너만 얘기를 들었다는 말에, 아빠가 화가 많이 나서 교장선생님과 교육부(ISD)에 인종차별로 항의해서 담임과 교장선생님의 사과를 받았었단다. 네가 어른이 되기까지는 이 아빠가(중산층이나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너를 불평등이나 차별속에서 조금은 지켜줄수 있을것 같아서 이민을 잘했다고 생각한단다.
5. 너의 꿈과 자세
이제 3학년인 네가 앞으로 여러 진로를 고민하고 바꾸겠지만, 네가 6살부터 지금껏 말하는 경찰이 되고 싶어요, 소방관이 되고 싶어요란 말이 참 듣기 좋더구나. 남을 도울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는 덧붙임말도 엄마 아빠가 절로 웃음짓게 된단다. 물론, 아빠는 네가 의사나 파일럿이 되기를 막연히 바라지만, 네가 무엇이 되든 어떻게 살든 엄마아빠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거란다. '지나간 일로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잘하면 된다, 대신에 잘못한것을 잊지말라'는 아빠의 말을 잘 따라주어서 고맙단다. '사람을 보면 항상 웃으며 인사하라'는 아빠말에 어른을 보면 배꼽인사(한국사람에게)를 하고 또래나 외국사람들에게 Hi하며 인사하는 네 모습을 사람들이 칭찬해줘서 들을때마다 기쁘단다. 올해 있었던 흑인 남매의 놀림(You Suck! Go Home)에도 의연히 대처하는 모습(I 아들이름. Come to my home to play)에 많이 컸구나하는 뿌듯함을 느꼈단다. 항상 긍적적이고 밝은 네 모습에 이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단다.
6. 객관적인 언론
이곳에 살다보면 CNN이나 BBC를 통해서 들어오는 한국의 소식은 객관적인 보도라고 생각한단다. 믿음직한 언론의 나라에서 널 키울수 있어서 기쁘단다. 아빠는 경남출신 할아버지 밑에서 30년을 막연한 여당지지자로 살다가 이민오면서 몰랐던 근대사를 알고서 야당으로 바뀌었단다. 김대중대통령이 김정일과 평양에서 포옹하며 세계의 유일한 대치국에 평화가 왔다는 보도에 기쁘고 뿌듯했고, 김대중대통령이 노벨상을 탔을때는 더할수 없이 기뻤단다. 김대통령의 노벨상의혹을 낸 한국언론에 대해서는 수치심을 느꼈단다. 노무현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는 말에는 정말 어디 숨고싶을정도로 부끄러웠고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때는 정말 한심했단다. CNN에서의 논조와는 다른 조중동의 편향된 논조속에서 너를 키우지 않는다는 안도의 한숨을 쉰단다. 아빠는 이이제이의 광팬이란다. 너에게 한국의 고대사까지는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1900년대의 근현대사는 같이 보며 논의해보려고 한단다. 우리 가족은 이민자이지만, 한국사람들이기때문이란다. 물론 이곳도 편향된 언론이 있지만, 한가지 사실을 가지고 말장난하거나 허위사실을 얘기하는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한단다. 작은 의견도 존중을 해주고 귀기울여주는 객관적인 가치관을 가질수 있는 이곳이 우리 가족에게 좋은 보금자리일거라 생각한단다.
7. 가족
아빠가 외동아들이고 너도 외동아들이라서 주위에 가족이 없구나. 아빠엄마가 경제적인 압박에 너 하나만 키우려고 한단다. 그래서, 너에게 많은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는 거란다. 올리비아(칠레)와 쿤타남(에티오피아)은 너와 생년월일이 같은 아이들이지만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이란다. 네가 지난 2년간 편지를 주고받는 그 아이들을 통해서 네가 지금 생활하는 삶이 얼마나 넉넉한 것인지를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엄마아빠가 지난 9년간 작은 금액을 후원하며 인연의끈을 놓았단다. 나중에 그들의 나라에도 가보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갖고 도와줄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맘이란다. 너는 따로이 가족이 많지 않으니 친구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신실하게 대했으면 하는 바램이란다. 여러 이모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사촌들이 있는 한국에서 살지 않는 지금이 조금은 너에게 미안하구나.
8. 치안
총기휴대 허용국가라는 위험속에 너를 내놓은것 같아서 미안하단다. 그런데, 처음에 미국에 왔을때 만난 이민2세인 사람에게 들은 말에 조금은 위안을 삼으면서 사는구나. '한국에서 나는 강력범죄가 더 많아요. 여기는 대다수 안전해요. 여기서도 무고한 사람들이 총기로 죽거나 성폭행등으로 피해를 당하지만 모두 언론에 적나라하게 나와서(얼굴이나 범죄자의 얼굴이 전국방송에 뜸.) 지각있는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한국은 사람이 죽어도 묻히잖아요. 예를 들면, 군에서 무고하게 죽는 사람들 많아도 사람들이 모르고 계속 진행중이잖아요.' 물론 편향된 지식이긴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아직 주변에서 강력범죄나 강도가 들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범죄율이 높다낮다 말할수가 없구나. 너도 알다시피 우리집 차고문을 이틀간 열어놓고 갔었던 지난 여름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아무일없었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렇게 걱정할정도는 아닌것 같구나.
아들아. 아빠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단다. 몇몇사람들은 어려움을 헤쳐나가지 않고 도망와서 사는 사람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아빠는 극복이 불가능한 몇가지 부분에서 좌절을 느끼고 결정을 했단다. 무엇보다도 아빠엄마는 네가 잘 자라는 모습과 돈독한 우리 사이가 너무도 만족스럽단다. 아빠엄마가 생활해보니, 이곳에서는 공부를 못해도 먹고사는데는 지장이 없단다.(물론 경제적으로 좀 힘들기는 하겠지만.) 노력한만큼 얻는것이 있는 사회라고 생각했단다. 너를 한국인으로 캐나다인으로 미국인으로 만들어놔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아빠는 네가 이곳에서 가치관을 잘 다듬어서 어디 하나에 귀속되지 않고 세계인으로 살아줬으면 한단다. 물론, 한편으론 한국인이란 자부심은 항상 갖고 살기를 바란다. 지금은 암울하지만, 많은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있어서 곧 극복하고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거란다. 아들아... 사랑한다...
쓰다보니 제 변명글이 되어버렸네요. 지금 이민 고민하시는 분들은 현재 아마도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일겁니다. 다음편은 이민오실때의 직장몇몇가지와 사례를 실어보도록 해보겠습니다. 물론, 제가 다 경험하지 않은 카더라 지만, 주변의 실례를 들어서 말씀드릴게요. 우리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잖아요. 적어도 국민 전체가 신드롬처럼 느끼는 스트레스들(세월호, 메르스, 정의의 부재, 교육)은 세계어느나라를 가더라도 한국보다는 낫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