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와 난징 대학살을 비교해 봅시다.
난징 대학살은, 사실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이래로 항상 벌어져왔던 학살극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병영 생활과 전투로 인한 스트레스, 적국에 대한 적대감 및 멸시, 약탈과 학살을 당연시하는 교리, 폭력과 야만을 미화하는 사회 분위기 등의 이유로 인해 학살과 파괴, 강간이 자행되었고 지휘관들은 이를 막기는 커녕 방조했습니다. 총과 칼과 생매장으로. 결과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20만 전후가 죽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야만의 발로죠. 이것이 한 때 탈아입구를 선언했던, 열강의 일원임을 자처하는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자행된 사실이 충격적이었을 뿐, 본질은 전근대의 학살극과 다르지 않습니다. 소위 아시안 홀로코스트도 마찬가지죠. 이건 근대적 제국주의 국가 일본이 숨겨왔던 야만으로 해석되었지, 이성과 근대에 의한 것으로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홀로코스트는, 학살계의 산업혁명?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전투를 끝낸 점령군은 지역의 인구를 파악해, 대상자를 추려냅니다. 이들은 나뉘어 수용소로 이송되며, 강제 노역 후 대규모로 학살됩니다. 유럽 대륙의 발달된 철도망, 독일 관료들의 행정력, 효율적인 독가스에 의해서.
중국은 난징에서 죽은 만큼을 이미 기원전에 장평대전에서 학살한 바 있습니다. 뒤져보면 이런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아무나 가능한 일이에요.
하지만 홀로코스트는 어떤 전근대 국가도 흉내낼 수 없습니다. 오직 근대 국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야만을 드러낸 거죠. 이는 곧 이성에 대한 믿음, 인간의 본질에 대한 희망을 산산조각 내고 전후의 철학계를 뒤집어 놓습니다.
근대화는 인구, 경제, 생산, 소비, 인프라, 제도, 사상, 교육, 보건, 문화, 조직, 군사 등 다양한 방면을 포괄하지만, 결코 그 자체로 진보와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혹은 학계에서 대세가 된 이유가 뉴라이트와 친일파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다음의 명제를 반박해 보시기 바랍니다.
"1909년의 조선과 1946년의 한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이다. 둘의 차이는 그 사이의 일제 강점기 동안 만들어졌다. 이 변화는 일정한 방향성을 띄고 있으며, 이를 근대화로 볼 수 있다."
그래도 내키지 않는다면, '일제가 근대적인 조직과 인프라를 동원해 조선을 효율적으로 착취했다'고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식근론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식근론자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을사, 정미의병과 조선의용군, 한국광복군의 차이는 어떨까요? 식민지배에 대한 조선 민중의 대응과 변화 또한 식근론에서 다루는 주제 중 하나니까요.
조선을 36년동안 내버려뒀어도 그정도는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가 없어 식근론 등장 이전부터 비판받아오다 식근론 이후 박살난 '자본주의 맹아론'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방향은 모르겠으되 속도는 확실히 못 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