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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자의 잘못과 우리 아버지와 나
게시물ID : gomin_15183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정진영(남)
추천 : 0
조회수 : 613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9/15 13: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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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한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흔히하곤 하지만 엄청난 반감을 갖는 말이 있습니다.

'야한 옷을 입고 다니니 성폭행을 당하지' 또는 '주의를 안했으니 성폭행을 당하지'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으나, 옷차림과 성폭행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증적으로 어떻든 간에, 남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남자로써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공격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성폭행 범죄자를 감싸주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저희 아버지는 엄격한 분입니다. 제가 길거리에서 넘어져 울고 있어도 절대로 세워주지 않으시고, 위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왕따를 당해도 제 잘못, 사기를 당해도 제 잘못, 사고를 당해도 제 잘못, 사전에 주의를 다하고 상대방이 100% 잘못한 정황이어도 당한 니가 잘못.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남탓을 하기 보다는 무조건 자기 탓을 해서 다음에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는게 아버지의 가르침이었죠. 이런 아버지, 한국에는 참 많습니다. 이렇게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 탓을 하지 않습니다. 남의 탓을 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못나고 무능력한 자신의 탓을 합니다. 따라서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한 사람에게도, 항상 듣고 자랐던 소리를 합니다. 조심하지 못한 니 탓이다.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자란 이야기거든요.

취업을 못하는 것도 니 탓, 연애와 결혼을 늦게하는 것도 니 탓. 우울증 걸려 고생하는 것도 나약한 니 탓, 살 못빼는 것도 게으른 니 탓.

노력만 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데 젊은이들은 사회 탓만 한다고 하는건 저희 아버지만은 아닐 겁니다. 

한국이 아프리카가 된다고 해도, 이런 분들은 남 탓, 나랏님 탓을 하지 말고 노력하지 못한 니 탓을 하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에는 무시무시한 이기주의가 도사리고 있지요. 나만 잘살면 되는게 아닌데. 그리고 타인에 대한 무시무시한 불신감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암만 나서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비관주의가 바탕되어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제 탓을 하지 않습니다.  성폭행 피해자의 잘못을 탓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잘못을 탓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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