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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은 어떤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글
게시물ID : sisa_10885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revo
추천 : 13/10
조회수 : 1908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8/07/30 19:53:58
직접 보시고 판단하는데 도움되시라고 올립니다. 

이해찬 계간광장 4월 기고문

지난 7월 10일 우리는 49재를 지내고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유골을 부엉이바위 밑에 안장했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뜻에 따라 작은 비석을 세웠습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불교의식에서 49재는 사람의 의식을 구성하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 즉 눈, 귀, 코, 혀, 몸, 뜻(意)이 쌓아 놓은 과거를 7일마다 제사의식을 통하여 맑고 밝은 감각을 갖게 하여 궁극적으로 왕생극락케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보고 들으시면서 당한 수모와 치욕을 다 씻어버리고 이제 편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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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리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마세요. 다쳐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당했어요.… 세상에 아무도 안 믿겠지만 (나는 돈 받은 줄을) 정말 몰랐어요." 

제가 고인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입니다. 저들은 아무도 안 믿을 것이라는 상황 설정을 철저히 악용했습니다. 그야말로 증삼살인(曾參殺人. 증삼이라는 자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음에도 그가 그런 일을 했다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이 사실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비유한 말 - 편집자 주)이었습니다. 신문·방송 등 온갖 미디어에서 수많은 논객·필객들이 자객 노릇을 했습니다. 하이에나처럼 증삼살인에 가담했습니다. 홍위병들의 인민재판보다 훨씬 치졸했으며 훨씬 가혹했습니다. 

고인이 살아 계셨을 때도 지식인들의 매도가 횡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쓰나미에 고인은 살신성인으로 맞섰습니다. 마지막까지 부당한 포퓰리즘에 맞서 사람 사는 세상의 깃발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증삼살인(曾參殺人)에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맞섰습니다. 

500만 조문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하고 뒤늦게 알게 되어 안타까워하는 조문행렬 속에서 서로 서로 깨달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서민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권위주의와 특권을 떨쳐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이 얼마나 강고하고 잔인한지를 깨달았습니다. 때마침 반면교사가 있어서 보다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 말기에 보였던 집단만행, 공포 분위기, 경찰 폭력이 나타났습니다. 이승만도 선출된 대통령이었습니다. 군부독재가 물러난 자리에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경찰특공대와 백골부대가 들어섰습니다. 절제력과 판단력을 잃은 경찰에게 수사권 분리가 이루어졌다면 유모차 어머니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요. 포악한 경찰과 교활한 검찰로 통치가 가능하다고 보는 정권이 이 나라에서 얼마나 가겠습니까. 

연봉 2천만 원 받는 일자리 100만 개 이상 만들 수 있는 22조 원+α의 예산으로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하에 대운하 전 단계 토목공사를 벌린다고 합니다. 그 대가로 서민들의 의료급여, 장애인의 수당마저 삭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이고 강은 살린다고 합니다. 

분단 50년 만에 겨우 혈로를 찾은 남북관계가 대결국면을 넘어 충돌직전까지 갔습니다. 미국 IP에 기반한 사이버 테러 공격까지 북한·종북파 소행으로 몰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3년 반 동안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치고 포기하면 우리 다음 세대는 꿈과 자유와 생명을 잃습니다. 우리가 저들의 만행을 두려워하면 우리의 자존심과 양심마저 잃습니다. 우리가 현혹당하면 눈과 귀를 잃고 마음까지 잃게 됩니다. 현 정부의 역주행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기회와 시간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부활해야 합니다. 조문행렬의 마음속에 부활한 노무현의 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이. 

김민웅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부활'은 '봉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탐욕스러운 주류의 핍박으로 이미 죽었다고 여긴 변방의 힘이 역사의 중심에 서고, 모두를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일깨우고, 역사적인 실현의 장에 나서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부활의 사회적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조광조의 기묘사화, 실학파에 대한 신유박해에 비유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역사 속에 묻어버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가치는 역사에서 찾고 방법은 현실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방법, 길을 찾기 위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성찰하고 공정하고 냉정하게 평가한 뒤 앞으로의 10년을 전망해야 합니다. 아무런 분석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한두 가지 사실만으로 규정하고 단정하는 행태로는 미래를 열어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조건 속에서 우리 사회의 발전 경로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단기·중기·장기적인 발전 조건과 경로를 함께 인식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고 역지사지해야 합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고 국민과 함께 하면 길은 열립니다. 

우리 국민은 지난해 촛불집회에서 현 정부의 실체를 여실히 보았고 올해 노무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마음을 다졌습니다.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총선을 외면했던 눈과 손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역주의에 균열이 가고 있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새로운 인터넷 세대가 현실 정치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의 의미를 깨닫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증삼살인-살신성인-부활-연대-승리의 길로 손에 손을 잡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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