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직업을 가진 분들의 글들에 동감하고 있다보니 전에 경험했던 것이 그냥 떠올라, APPLE 이벤트 기다리면서 썰 좀 풀어보겠습니다.ㅎ
일단 더러움은 미리 준비하시고...
우리 집은 작은 빌라에 지층이라서 그런지 수압도 낮고, 변기도 잘 막힙니다. 그래서 변기 옆에 항상 뚫어뻥을 비치해 놓고 막힐 때마다 바로바로 뚫고 있지요.ㅠㅠ
이젠 뭐 자연스럽게 하는 일들인데, 그전에는 더 심했습니다. 소변 보고 내려도 막히는 정도니; 뭐 제대로 물을 내리지도 못했죠.
처음 이사왔을 땐 괜찮았는데 점점 살다보니 심해지더군요.
그날은 아마도 비가 많이 왔던 때였을 겁니다. 속이 아파 화장실에 가서 즐거운 나만의 시간을 가졌죠.
비가 많이 오면 역류하거나 더 잘 변기가 막히곤 해서 그날도 좀 불안했는데... 역시나더군요..ㅠ
근데 그날은 느낌이 좀 달랐어요. 전 같으면 서서히 차오르는 게 느껴질 정돈데...
그때는 물을 내리자마자 엄청 빠른 속도로 확 차오르더군요. ㅠ 얼른 바지를 올리고 대피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역류!!!!ㅠㅠㅠㅠㅠ
근데 그 역류의 정도가 이전이랑 다른 거에요. 이미 내 속에 있던 건 넘친지 오래고 전혀 우리 집 거 같지 않은 것까지 계속
쉼 없이 올라오대요..ㅠ 마치 세숫대아에 물 세게 틀어 놓은 것처럼...
아부지랑 저는 당황해서 넘치는 변기를 보며, 어떡하지 발만 동동 굴렀는데.. 그러다보니 드디어 멈추더군요...
휴 한숨 한 번 쉬고 있는데, 갑자기 작게 물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다시 넘치는 겁니다!!! ㅠ 여전히 건더기들..ㅠ
딱 드는 생각이 윗집에서 물 내렸구나!
바로 뛰어 올라가 반장 아줌마한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른 집들 물 못 내리게 해달라고 부탁했죠.
그리고 검색해서 뚫어뻥 아저씨를 불렀어요. 전화 끊자마자 그 세차게 부는 바람과 비를 맞으시며 금세 오시더군요.
바로 오시자마자 변기 상태 확인하시고 ㅠ 절대 윗집에서 물 못 내리게 해달라고 당부하셨는데, 물 또 내려서 ㅠㅠㅠ
다시 당부하시고 작업을 시작하시는데, 안 뚫립니다..ㅠ 아저씨도 단단히 막혔다면서, 반장 아줌마한테 열쇠 받아서 정화조로 내려가십니다.
바로 우리 집 바닥이 더러워지지 않게 뭔가를 깔고 작업하시는 섬세함까지... 정말 더러운 거 힘든 거 내색 없이 분주하게 작업하시는데, 여전히 시원히 내려가지 않는 상황...ㅠ
그러다 윗집 아줌마들도 내려왔네요. 문 옆에 서서 구시렁구시렁들대십니다. 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팔짱 끼고 서 있네요. 우리는 뭔가 미안해져서 암 말도 못하고 있었지요.
그때 정화조에서 올라와 들어오시는 아저씨에게 그 아줌마들이 핀잔 섞인 잔소리를 합니다. ㅠ
"아유, 이집 때문에 변소도 못가고 이게 뭐야, 아저씨 빨리빨리 좀 해줘요. 우리 애기 장실 가야 한단 말이에요~! 빽~"
ㅇㅈㄹ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냥 맨붕이라 여전히 얼굴만 하얘져서 대꾸도 못하고 있었죠... 뭐라고 한소리 했어야는데...
그런데 아저씨가 화가 좀 나셨는지 한마디 하시네요.
"아줌마, 여기가 왜 막혔는지 아세요? 내려가니까 기저귀 같은 걸로 잔뜩 막혀 있어요! 못 믿겠음 보여드려요?"
그러자 아줌마들 표정이 싹 바뀌대요. 대꾸도 못하고 조금 들릴랑 말랑 구시렁 대더니 집으로 돌아가네요. 어찌나 시원하던지... 쩝
우리 집은 제가 막내거든요. 군대를 다녀왔으니 기저귀를 찰 나이는 한참 지났고; ^^; 네 그렇습니다.
그러시면서 오히려 저희를 위로까지 하시는 아저씨 ㅠ
"대부분 빌라 같은 데 막혀서 가면 기저귀 때문에 막힌 데가 많아요. 아줌마들이 생각 없이 변기에 막 버려서 막히는 거죠. 이 집 때문 아니니까 걱정마세요."
막힌 것을 깔끔하게 뚫으려면 변기를 부셔야 한답니다. 그러라고 말씀드리고 새 변기를 아저씨한테 구매해 새로 달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아니다 다시 쓸 수 있게 깨서 새로 살 필요 없다. 깔끔하게 다시 붙여드리겠다'고 하시네요.
그래 그냥 이대로 좀 살다 더 좋은 데 이사가지 뭐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아직도 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ㅠ)
그러고는 작업 완료하시고 각종 오물로 더렵혀진 화장실 바닥도 깨끗이 정리까지 해주셨습니다..ㅠ
너무 감사해서 뭐라도 더 드리고 싶어도 음료수 말고는 드릴 것도 없고...
기분 좋게 인사하시고 가시는 모습을 보고는 "야, 저 일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우리끼리 그랬죠. 존경심마저 들더군요.
이렇게 우리를 대신해 어려운 일들 하는 분들 없으면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까요? 아무리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라지만, 남들이 힘들다 하는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문제없이 다음 톱니바퀴로 힘이 전달되면서 사회라는 덩어리가 굴러가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