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22
“정치관심 한방울 한방울이 바위 뚫을 것”…발랄·당당한 목소리들
분명 ‘무거운 주제’임에도 그들은 발랄했다. 그리고 당당했다. 화창한 날씨의 토요일 저녁, 봄나들이 대신 서울역 광장에 모여든 청년들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의 진상을 규명해줄 것을 그들만의 방식과 목소리로 요구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및 2, 30대 정치참여 유도를 위한 촛불집회’가 4일 저녁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100여명 가량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집회를 시작하기 불과 10여분 전만해도 참가자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역 광장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집회를 주최한 님크(NIMC) 측 관계자는 130명 가량이 온라인을 통해 참가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님크’란 (Not In My Country)의 약자. ‘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인터넷 커뮤니티인 ‘여성시대’에서 출발한 모임이지만 ‘오늘의 유머’나 ‘쭉빵카페’같은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 유저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었다.
이날 모인 이들의 상당수는 2, 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었다. 젊은 남성들도 적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 가운데는 세대를 넘어 이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중년들의 모습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다만, ‘go발뉴스’와 ‘오마이뉴스’, ‘프레스바이플’ 등 몇몇 매체를 제외하면 취재진의 모습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이들이 쓴 마스크에는 ‘Not In My Country’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손에는 ‘2~30대여! 당신의 나라입니다’ 등의 다양한 구호가 적힌 손피켓이 들려져 있었다. ‘국정원 부정선거!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도 눈에 띄였다. 주최 측은 속속 도착하는 참가자들을 위해 방석을 준비하고 이들의 자리를 안내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현장을 찾은 이상호 기자와 ‘go발뉴스’의 인터뷰에 응한 김모 씨는 자신을 21살의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집회를 이끌어간 김 씨는 “중,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과 지금 상황이 너무 이해가 안간다”며 “당연히 우리가 나서야 하는 상황인데 다들 모르는 것 같아서 ‘저희가 한번 나서보자’ 해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님크’에 대해서는 “‘여성시대’에 기사를 퍼나르는 게시판이 있는데 (어떤) 한 분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이런 중대한 사안이 있는데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며 ‘그럼 우리 다같이 뭉쳐보자, 우리가 나서면 바뀔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4월 초부터 모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집회는 예정시간인 오후 7시를 조금 넘겨 시작됐다. 참가인원이 많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젊음의 패기가 담겨있는 탓인지 이들의 환호성과 박수는 대규모 집회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주최 측의 다소 매끄럽지 못한 진행에도 참가자들은 박수로 격려했다.
진행 순서도 다른 집회와는 조금 달랐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인기가요를 함께 부르는 시간이 마련돼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작은 축제나 대학생들의 MT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미리 준비한 가사지가 참가자들에게 배포됐다.
싸이의 ‘챔피언’을 시작으로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빅뱅의 ‘더티 캐쉬(Dirty Cash)’ 등의 가요가 집회장에 울려퍼졌다. 노래를 잘 모르는 이들도 몸을 좌우로 흔들며 흥겨워했다. 집회용 촛불을 준비하던 운영진도 노래를 신나게 따라 불렀다.
단순히 인기가요만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과 정형돈의 ‘강북멋쟁이’는 이날 집회의 의미에 맞게 ‘해피엔딩’, ‘서울멋쟁이’로 개사됐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좋은 소식 울려퍼질 이 거리서 노래불러요’, ‘나라에 관심좀 가져라 우리 서울 멋쟁이 처럼’ 등 재치있는 가사가 눈에 띄었다. 이들의 노래로 집회의 열기는 더해갔다.
해가 저물자 어느덧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있었다. 100여개의 촛불은 어두워진 서울 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노래로 흥겨워진 분위기는 참가자들의 자유발언으로 이어졌다.
‘님크’의 주축인 ‘여성시대’와 ‘오늘의 유머’ 회원들이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정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한방울 한방울 물방울이 돼 바위를 뚫을 것” 등의 발언이 나오자 참가자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옳소”라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다음 순서는 ‘참가자 인터뷰’였다. 주최 측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고 직접 참가자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하는 형식이었다. 집회를 진행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20대 여성 안 모씨는 능숙한 솜씨로 인터뷰를 이끌어나갔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안 씨는 ‘go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투표를 처음 했는데 그게 하필 부정선거라니 화가 나더라”며 “그래서 (집회에 참여) 하게됐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이 쑥스러울만도 할텐데 참가자들 역시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특히, ‘오늘의 유머’에서 왔다는 한 남자 고등학생은 어른들을 향해 “지금 자라나는 학생들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서울역을 오가던 일부 시민들도 발길을 멈추고 이들의 당당한 발언에 귀를 기울였다. 집회의 취지를 묻는 행인의 질문에 한 남성 참가자가 진지하게 답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의 발언이 못마땅한 듯 보이는 몇몇 시민이 집회장에 들어오려고 했지만 경찰이 이들을 제지했다. 다행히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참가자 인터뷰’가 끝나고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합창하면서 한 시간 가량의 집회는 종료됐다. 자리에서 일어난 참가자들은 쓰레기를 치우는 등 자발적인 뒷정리에 나섰다. 이들의 집회는 18대 대선의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가 끝나는 오는 6월까지 매주 토요일 진행된다. 서울역 광장에 울려퍼지는 청년들의 당당한 외침과 요구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