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고유예 판결을 가지고
과거 원세훈 항소심에서 유죄를 판결한 것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었다 해서 좌파 판사니 하는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엄청나게 잘못된 주장입니다.
1.
원세훈의 항소심 판결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한 취지는 형사소송법 315조 2호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려 천만 건에 이르는 증거들의 '증거능력' 자체가 사라졌죠.
대법원의 판결취지를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원세훈이 어떤 놈이든 일단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라 간다.
입니다.
2.
'법과 원칙'에 따른다면 물론 대법원의 취지는 타당합니다.
형사소송법 310조의2는, 해석하자면
'법정에서 직접 말하지 않은 것은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이 없다.'
라는 원칙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이를 '전문법칙'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형사소송법 311조부터 316조까지는 위 원칙의 예외를 규정합니다.
사건에서는 국정원 직원이 원세훈의 진술을 기재한 내용이므로, 형사소송법 313조 1항 후단의 적용을 받고,
작성자인 국정원 직원이 문서의 진정을 부정했으니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항소심에서 들었던 형사소송법 315조 2호는 조금 더 예외적인 규정이니 313조 1항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법조인'의 '법과 원칙'에 따르면 타당한 판결이지요.
3. 이제 본론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비법조인'인 '일반인의 상식'에 기초해서 생각해봅시다.
저런 복잡한 증거능력의 법리 말고.
아무리 그래도 천만 건에 이르는 자료를 작성자가 자기가 쓴 게 아니라고 해서
'아 그럼 이건 판단대상이 아니네요'
할 수 있을까요?
무려 천만 건인데? 그것도 직원이 원장의 말을 쓴 건데요?
피고인의 유죄 증명을 엄격하게 한다는 그 공판중심주의의 이념은 둘째치고,
저 무려 천만 건에 이르는 자료들의 증거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일반인의 상식에서?
물론 일반 시민에게 '국가 권력'으로 '합법적 폭력'을 행사하는 '유죄 판결'의 증거로 쓰기는 어렵지 않느냐, 하는 말까지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무죄추정과 적법절차의 원칙은 국가로부터 우리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시민사회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무죄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4.
원세훈 항소심 판결은 우리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결과를 내놓은 것입니다.
판사가 '좌좀'이 아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