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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1
게시물ID : lovestory_7549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PrimeTime182
추천 : 0
조회수 : 4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25 12: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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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회사원 인생이 뭐 특별나겠냐만 최근들어 일주일에 단 하루, 특별한 날이 생겼다.
 
"여보 나 게임 한판만 해도 돼?"
잔뜩 기대를 품고 나즈막히, 그리고 30%정도 애교를 섞어서 물어본 내 물음에 집사람은 아주 당연하다는듯이 외마디 허락을 해주었다.
 
야근이 많은 IT직종이라 TV는 언감생신 잘 볼수 없지만, 남들 다 즐긴다는 불금만큼은 9시 이전에 퇴근하려고 노력하는데
모든 유부남이 어디 그렇겠냐만은, 적어도 나는 집에서 게임을 하면 딱히 뭐라 하지 않아도 집사람 눈치를 보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박보영이 나오는 드라마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팬카페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그녀가 어떠한 작품을 해왔는지도 모르지만
그녀 덕분에 게임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난 매우 감사하며, "다음 영화 촬영하시면 극장에서 볼께요" 라는 웃기지도 않는 다짐도 해 보았다.
 
신혼집에 컴퓨터 방을 둘 수 없는 비좁은 방, 컴퓨터는 자연히 침대 앞으로 놓이게 되면서
총각시절 영혼을 불태우던 게임과 자연스레 이별하게 되었는데
 
박보영님... 당신 덕분에 나는 오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의 접속으로 많은양의 패치를 다운받고 있는 내 컴퓨터를 보며,
"조급해 하지 말자... 금방 끝날꺼야..."
어렸을적 집열쇠 잃어버리고 울며불며 찾으러 다닐때보다도 더욱 절박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작 5분정도였지만 50년 같은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게임에 접속했을때, 벅찬 감동에 결혼식장에서도 흘리지 않은 눈물을 보일뻔 했지만
 
감격의 시간에도 야속한 시계는 멈추지 않으니, 소싯적 놀아봤던 손놀림으로 재빠르게 방을 만들고 게임 준비를 했다.
 
다시 5분쯤 흘렀을까.. 석사학위 받을때부터 돈이 없어서 중고로 산 컴퓨터가 드디어 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왜 하필.. 50년같은 5분을 기다린 후에, 이제 겨우 게임을 할 수 있는 이 시점에서란 말인가....
 
너무도 격한 슬픔이 밀려오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내가 누군가.. 최신예 반도체를 내손으로 내보내는 남자다.
 
이정도 문제따위 아무렇지 않게 해결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 했지만, 당장 고치기에는 부품이 부족했다...
 
아쉬워할 틈도 없이.. 내가 사랑한... 무슨 작품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 인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TV속 그녀는
내일 다시 만날 약속만을 주고 TV속에서 홀연히 사라지신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오늘의 행복한 순간의 마지막이 내 눈앞까지 와있음을...
 
그렇게 절박하게 원했던것을 얻기 직전, 떠나가버린 TV속의 그녀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나라를 잃은 조상님의 표정이 나와 같았을까, 드라마 시청을 끝내고 나를 처다보는 집사람의 눈빛이
 
흡사 불쌍한 강아지를 보는듯한 표정이다.
 
망연자실 내곁을 떠나버린 컴퓨터를 차마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나를 보며,
"컴퓨터 한대 사자. 고장난건 어쩔수 없잖아."
 
종교는 믿지 않지만 이 모든일을 행하신자는 분명 박보영 님이실지어다.
 
무릇 종교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자에게 큰 상을 내린다고 하더니...
 
재빨리 용돈모아 결혼 1주년으로 사주었던 태블릿으로 컴퓨터 아이쇼핑을 시작했다.
 
내가 안본 사이에 많은 기술이 발전되었지만, 그정도 지식을 습득하는데에는 고작 30분정도면 충분했다.
 
최신예 그래픽카드, CPU, 램, 메인보드, 파워, 케이스
 
기본적인 컴퓨터 구성품을 모두 마음속 깊은곳에 저장 한 후 가격을 보니....
 
60만원이 넘는 가격표에 나는 그저 보던 웹 브라우저를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이순신 장군님은 열 두척의 배로 일본군을 마주보셨을때 어떤느낌이었을까...
가진게 열 두척인데, 필요한게 백척 이라면.. 절망해야 하는가...
 
 
나름 현실적인 가격대라 생각하고 부품을 고르던 내 손은, 하염없이 올라가는 가격표에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다.
 
한참동안 나를 관찰하던 집사람은 괜찮다, 사도 된다. 어쩔수 없는것 아니냐며 나를 달래주었고
 
무슨 용기가 나서일까, 쥐꼬리만한 월급 벌어오던 내가, 60만원이라는 거금을 이번엔 쓰고 말리라 다짐을 하고 말았다.
 
 
다시 시간이 지나, 기쁜마음으로 반차까지 써서 용산으로 간다.
 
15년전 알바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골라볼 생각에 들뜬마음으로 차를 몰고 간다.
 
비가 내리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카 오디오에서 나오는 이름모를 가수들의 노랫소리를 소리내어 불러보기도 하며 흥에 겨워있지만
어쩐일인지 오늘따라 운전이 어렵게 느껴진다.
 
아마도 제때 교체해주지 않은 와이퍼가 시야를 흐리게 하기 때문이겠지.
60만원... 월급의 1/5.. 대출도 많고 값을돈도 많지만 이 순간만큼은 생각하지 않고 싶었다.
 
자꾸 내 시야를 흐리게 하는 저 와이퍼가 신경 쓰인다.
진짜 중요한것을 잊고자 하는 내 속내를 들킨것 같아 더없이 마음이 쓰리다.
"잘 보이기만 하면 되는것을... 고작 이정도 빗물 하나 제대로 못 닦아주니..."
 
마음 한켠이 계속 무겁다.
 
이대로는 가기 힘들어 가까운 유명 마트를 갔다.
 
그리고 만원이 조금 넘는 와이퍼를 새것으로 샀다.
 
주차장에서 가볍게 교체하고 다시 차도로 나오니 밝아진 시야 만큼, 내 마음의 안개도 한결 맑아졌다.
 
가벼워진 마음에 60만원을 쓰고 말겠다는 내 무거운 다짐도 한결 가벼워진걸까
 
가던 차를 돌려서 다시 집으로 간다.
 
고기 좋아하는 마누라, 간만에 돼지 목살이나 좀 구어먹어볼까.
 
비가오니까 술은 막걸리가 좋을까, 3만원이면 충분한 행복을 맛볼 생각에 또다른 흥에 겨워있다.
 
컴퓨터는 일부 부품만 교체하기로 했다.
 
그래도 새로 산 기분이라도 느끼고 싶은 마음에 4만원짜리 컴퓨터 케이스도 하나 샀다.
 
그래도 4만원이나 사치를 누렸더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와이퍼가 내 마음속의 안개를 지워준것처럼, 새 컴퓨터 케이스도 내 마음을 새롭게 해준다.
 
비도 오고,
막걸리도 입안에 착착 감기고
집사람은 술에 취해 안기고
 
새로 성형한듯, 얼굴만 바뀐 컴퓨터도... 또 한 5년정도 더 쓰다보면,
 
60만원정도는 내가 그냥 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나저나 정말 큰일은
 
뒤이어 하는 최지우님의 드라마를 와이프가 안 볼것 같다는거다.
 
다시 행복한 시간은 조금 더 뒤로 밀려난것 같아 즐거웠던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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