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과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베오베에 지방의회 비례대표와 관련된 글이 있어서 여기에 올립니다.
해당 글의 댓글을 보면 여성이 비례 홀수 순번을 받고, 지방의원 것이 부당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실제로 여성 할당제 때문에 이번 선거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당선자들 중 71.3%(25:62), 기초의원 비례대표 당선자 중 97.1%(11:374)가 여성입니다. 이는 비례대표의 수 자체가 적다 보니 비례대표 후보들 중 비례 1번만 당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남성에 대한 차별일까요?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로 가면 상황은 역전됩니다. 광역의원 지역구 당선자들 중 86.7%(639:98),기초의원 지역구 당선자들 중 79.3%(2015:526)가 남성입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당선자들을 모두 합치면 광역의원의 성비는 4.15:1(664:160), 기초의원의 성비는 2.25:1(2026:900)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입니다. 구청장, 시장, 군수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전체 당선자 226명 중 여성은 단 8명에 불과합니다. 전체의 3.5%만이 여성인 셈이죠. 이는 여성 후보자 자체가 적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청장, 시장, 군수 후보의 성비는 20.4:1(714:35), 광역의원 후보(지역구+비례대표)의 성비는 3.52:1(1698:483), 기초의원 후보의 성비는 2.46:1(4409:1791)입니다. 여성 후보 자체가 적기 때문에 여성 당선자도 적을 수밖에 없죠.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여성 후보 자체가 적으니 여성 당선자가 적은 거 아냐? 그런데 왜 비례대표를 여성에 강제로 할당해?"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당에서 여성을 공천하지 않아서'입니다. 무소속 후보가 아닌 이상 모든 후보는 정당의 공천을 받아서 출마합니다. 이상적인 정치 환경이라면 모든 후보가 당원 투표를 통해 공천되는 당원민주주의가 확립되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정당에서 공천은 소수의 지도부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광역시장, 도지사보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광역의원, 기초의원, 특히 비례대표의 경우에는 누가 어떤 줄을 타느냐, 어느 계파가 당권을 잡고 있느냐에 의해 공천 여부가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정치인은 남성입니다. 그들의 계파에 속해서 공천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정치 지망생 또한 대부분이 남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천을 받는 사람의 대부분은 남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정치 환경에서 여성 정치인의 수를 늘리려면 비례대표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왜 할당제라는 방법을 써서 여성 정치인의 수를 늘려야 돼? 굳이 정치에서까지 여성할당을 해야 하는 거야?" 사실 저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여성 할당제가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형식적 성평등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실질적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는 제도보다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치인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사원들과는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신해서 정부의 운영에 개입하는 일을 합니다. 모든 국민은 동등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의견이 정부에 반영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이제까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50~60대의 부유한 남성이 대부분인 대한민국의 정치계에서 여성의 목소리, 청년의 목소리, 서민의 목소리는 묵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에 지금보다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보다 더 많은 청년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20대 당선자는 31명, 30대 당선자는 207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체 당선자의 수인 4015명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또 이번 지방선거의 당선자, 특히 비례대표 당선자 중 '스펙'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비판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 이번 지방선거의 몇 안 되는 청년 당선자와 고졸 이하 당선자의 능력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펙이 떨어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스펙이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고려대 경영학과(이명박), 서강대 전자공학과(박근혜)를 졸업한 대통령의 최후를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목포상고(김대중 전 대통령), 부산상고(노무현 전 대통령)를 졸업한 대통령의 업적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스펙'이 떨어지는 후보들의 능력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미치지 못합니다. 또한 그들 역시 당 지도부의 몇몇 사람과 인연이 있어서 공천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스펙'이 뛰어난 후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들이 '스펙이 떨어진다'라는 이유로 비판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스펙이 떨어진다'는 말은 이미 청년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선자들은 그들의 학력이 아닌 행적이나 발언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말이 옆으로 샌 감이 있는데, 결론은 같습니다. 비례대표 할당제는 지역구 선거에 공천되기 어려운 여성과 청년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든 사람의 각자의 생각에 맞는 정당에 가입하고, 정당의 당원들이 자신들을 잘 대변할 수 있는 후보를 공천할 수 있도록 당원민주주의가 자리잡는 것이지만, 그러기 전까지 비례대표 할당제는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을 가져야 하니까요.
3줄요약
1. 지방선거 당선자 중 대부분은 50~60대 남성이다.
2. 청년,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비례대표 할당제는 어쩔 수 없다.
3. 정치인의 '스펙'이 아닌 정치인의 행적을 비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