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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쟤들 얼마야?"
게시물ID : menbung_227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oolshin
추천 : 3
조회수 : 68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20 07: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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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시점. 어제 오늘 이 시간대 거리엔 유난히 사람이 없다. 가게에도 손님은 한 테이블도 없었다. 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남색 땡땡이 티셔츠에 뿔테안경. 30대 중반쯤 될까. 분명 반시간 전쯤에 먼저 퇴근한 친구와 가게 앞에서 대화하고 있을때 옆 가게로 들어간 사람이다. 옆 가게에 들어갈때에도 꽤 취해서 걸음을 가누지 못했었다.
일단은 예 하고 대답을 하며 문으로 향했다.
그는 잔뜩 꼬인 발음으로 가게 바깥쪽을 가르키며 말을 뱉는다.
 
"쟤들 놀잖아, 얼마야?"
 
내가 앞뒤 자르고 쓴 말이 아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부터 전후가 없었다.
 
"네?"
 
고개를 돌려 그의 손 끝이 향하는 곳을 본다. 근처 바에서 일하는 언니 셋이 의자에 앉아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그미들은 업무 특성상 뭇 남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과감한 복장들을 하고 있더라. 아마 그도 그 매무새에 매료되어 지금 이러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아 시발 쟤들 놀잖아. 쟤들 얼마냐고."
 
근데 시발 이게 무슨 말씀이지. 혹시 나에게 성매매 알선을 요청하는건가. 자주 가는 업소 실장이랑 날 헷갈렸나? 아니 그전에 시발 내가 그런 업종에 종사하게 생긴건가?
내가 도저히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자, 그는 답답한 양 길길이 날뛰며 말을 뱉었다.
 
"아니! 저기! 노는! 애들! 얼마! 얼마 나왔냐고!"
 
 아하. 그게 그런 의미였구나. 내가 감히 지레짐작하는 그의 작전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같은 가게에서 술을 마시는 그녀들의 자태에 매료된 그는 그녀들에게 말을 거는 대신에 술값을 계산해줌으로써 호감을 얻으려 했을 것이다.
 
계산을 하려는 그녀들.
이미 계산이 됐다는 말에 뒤돌아 그를 보는 그녀들.
반짝이는 소주잔을 들어보이는 그.
소주잔 안에서 찰랑이는 소주.
그 모든 요인과 멋드러지게 어우러지는 그의 젠틀한 미소.
그의 신사다운 행동은 그녀들에게 그와 합석할 만큼의 호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래.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 이후에 그녀들 중 그에게 가장 호감을 느끼는, 그러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여성과 은밀한 장소에서 자신에게 내재된 야성미를 표출하기 위해 뿔테안경과 땡땡이 티셔츠를 벗어던질 시간을 고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의 작전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이고. 이 근본을 내다버린 견자분아. 전후 문맥을 좀 더 상세히 말씀하셨으면 제가 불순한 방향으로 오해하지 않고 좀 더 순수했던 당신의 의도를 알아차렸을텐데요.
아무튼 오해는 풀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나는 나직히 그에게 진실을 말씀드렸다.
 
"저쪽 분들은 저희 가게 손님이 아닌데요.."
 
"아 그래? 그럼 꺼져."
 
그는 소기의 목적이 해소되어 후련해졌는지, 쿨하게 주머니에 손을 박아넣고는 원래 자신이 마시던 테이블로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아아. 저 시크함과 쿨함이었다면 굳이 술값을 내지 않아도 그녀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으랴.
 
아마 이세상에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신은 저런 또라이들도 그 품에 감쌀 정도로 자비로우신 분이 아닐까.
 
아무튼 자리에 돌아간 그가 그녀들에게 다가가 전후 문맥 잘라먹고 "야. 니들 얼마야?" 하고 묻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출처 내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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