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을 뜨자 검은색 천장이 보였고, 낯선 방의 침대에 누워있는 나를 인식했다. 고개를 움직여 주위를 둘러보니 벽지며 가구며 방 안의 모든 것들이 검정이였다. 나는 꿈을 꾸는듯한 기분이들어 다시 눈을 감았다, 떴으나 여전히 검은 천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br /><br />잠결에서 벗어나자 공포와 긴장으로 몸이 떨렸다. 심장이 크고 빠르게 쿵쿵거려서 나는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앉았다.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려고 해봤지만 애초에 생각이라는 걸 해본적이 없었던 것 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br /><br />잠시 후 나는 본능적으로 문으로 짐작되는 맞은 편 벽을 향해서 휘청거리며 움직였다. 검은색 문 아래에 둥글고 검은 손잡이가 보였다. 덜덜 떨리는 팔을 다른 손으로 붙들어 진정시켜고 천천히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하며 문이 열렸다.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문 너머의 공간은 절망적이었다. <br /><br />낯선 방에서는 적어도 나와 구분되는 사물들이 검다는 걸 빼면 나름의 구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어둠만 존재했다.<br /><br />놀란 동공으로 꽤 오랜동안 그 공간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낯선 방을 탈출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 공간으로 발을 내딛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br /><br />나는 어쩐지 빨리 방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하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아니 어둠 그 자체가 꿈틀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br />쾅, 하고 문을 닫고 뒷걸음쳤다. 벽을 등지고 서서 검은 문을 응시했다. '저게 뭐지?' 닫힌 문틈으로 뭔가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완전히 들어오진 못하고 문틈에 매달려서 촐싹거렸다. <br /><br />그걸 보고나자 어쩐지, 다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것은 검고, 점성이있는 연기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받아들였다. 그러자 떨림이 멈췄다. 심장도 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로 향했다. 침대 옆 책상에는 검은 담배 한개비가 검은 라이터와 함께 가지런히 놓여져있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부싯돌을 몇 번 굴렸다. 치륵치륵하더니 금새 검고 뜨거운 불꽃이 확 켜졌다. 깊게 한모금 마시자 차지고 미지근한 연기가 기관지로 수욱 들어왔다. 길게 내뱉자 문틈에서 촐싹거리던 연기들이 뿜어졌다. 연기는 스멀스멀 위로 올라가더니 먹구름처럼 천장 전체로 퍼져나갔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더 피고 싶어져서 책상 아래에 있는 서랍을 뒤적거렸다. 온갖 검은 잡동자니 속에서 반짝 거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것을 꺼내들었다. '작은 손거울이구나' 생각하고는 그 조그만 것을 코와 배꼽과 발가락 따위로 하나씩 비추어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검은 코와 배꼽과 발가락 따위를 보면서 '이것은 검고, 점성이 있는 유기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