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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이다 게시판에 들어오는 재미로 삽니다. 고민/멘붕 게시판에서 꽉 막혔던 속이 여기서 뻥 뚫리거든요.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 처했으면 어떻게 대처할까 하는 인생의 팁도 얻어가고 있습니다.
저도 하나 생각 나는 일이 있어 써봅니다.
타이밍이 묘하게도 오늘은 광복절이네요.
저는 일본에서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전 직원 중에 외국인은 저 하나이고, 사장님이 따로 있긴 하지만 간단한 결정은 제가 있는 부서의 본부장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부장이, 외국/외국인을 별로 안 좋아하고 은근히 일본이 최고라고 강조하고 싶어하는 낌새가 보여요.
그러든가.
과장된 강조는 열등감의 반증이라고 하죠.
왜 주위에 그런 분 있잖습니까. 콕 찝어서 강요는 안 하지만 괜히 큰소리 내면서 자기 의견에 동조하도록 유도하는 사람. 사무실, 식당이나 버스 같은 데서 "우리 때는 밤새가면서 일해도 불평 하나 안 했어!" "요즘 젊은 것들은 어른 공경할 줄을 몰라." "박** 대통령이 참 잘했지." "여자 대통령 한번 만들어야 해." 뭐 기타 등등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큰 소리로 떠드는 분들.
이 사람이 그런 타입인데 다행히도 뻔뻔함과 무례함이 좀 떨어져서 적당히 무시하면 지낼 만합니다. 어차피 나랑 하는 일이 겹치는 경우가 많이 않거든요. 그런데 일부러 그러는 건지 꼭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한국/외국에 관한 주제를 꺼낼 때가 많아요. 도발하려는 거죠.
몇 년 전, 당시 자민당이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평화헌법 개정에 밑밥을 깔던 때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사무실에서 큰소리로 이러더군요.
"전쟁할 수 있는 나라는 필요한 것이다"
"필요하면 법은 바꿀 수도 있다"
"군사력이 있어야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공격은 최고의 방어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뭐랄까, 꼭 그 자리에서 동조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 머릿속에 은근히 이런 생각을 심어놓으려는 의도가 느껴집니다. 그날따라 짜증이 치솟더군요. 하지만 회사에서 정치 토론을 하고 싶지는 않고, 한다쳐도 말이 통할 것 같지도 않고, 회사에서 저런 화제를 꺼내는 저 사람이 잘못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상사이고.
그래서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남직원A(20대, 좋게 말해서 순진함)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나: 전쟁 나면 A 씨는 싸우러 나가야겠네요.
A: (눈이 휘둥글해짐) 네? 제가 왜...
나: 젊잖아요. 여기서 가장 먼저 나가겠네요.
A: (살짝 멘붕된 표정) 어어...
A는 좋게 말해 순진하고 나쁘게 말해... 뭐 그렇습니다.
본부장이 꺼낸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하물며 본인이 전쟁에 나간다고는 상상한 적이 없겠지요.
A 옆에 있던 B대리(30대, 적당히 눈치 있음)에게도 건넸습니다.
나: B씨까지는 나가겠죠.
B: (난처한 표정) 그, 그런가요. 하하하...
이쯤에서 그만둘까 했는데, 나이 좀 있다고 무시하면 서운해하실 것 같아서, 좀 멀리 떨어져 앉은 C부장(40대, 제 직속 상사)에게도 공평하게 건네드렸습니다.
나: 어쩌면 C부장님까지 나가실 수도 있겠네요.
C: (본부장 눈치를 보며) 아, 아니 내가 왜...
C부장은 업무상 저랑 가장 친합니다. 난처한 상황에 자신을 끌어들인 것에 약간 성이 난 표정이었지만 이미 지른 것, 그대로 갑시다.
나: 나이 상으로 그렇잖아요. A씨, B씨가 나간 후에 상황이 악화되면 C부장님까지도 나가시겠죠.
C: (너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냐) 하...
A씨, B씨가 나간 후에 상황이 악화되면, 곧 저 두 사람은 안 좋은 상태에 놓여 있을 것이란 뜻. 두 직원의 표정은 더더욱 안 좋아집니다.
그러고 나서 본부장에게는, 슬쩍 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달하려던 메시지는, 전쟁은 노인들이 일으키고 젊은이들이 죽는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곧, 네놈은 어차피 전쟁 안 나갈 테니 닥쳐라는 말이었죠. 잘 전달되었는지 흙 씹은 표정이 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눈치 없는 A군이 입을 열었고. 한국은 징병제이지 않냐, 전쟁 아직 안 끝났는데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 그래서 한국은 오래전부터 부가가치세가 10%다(이때 일본은 소비세가 오르기 전이라서 5%), 나 어릴 때는 국방비가 국가 예산의 50%를 넘었었다라고 대답을 하고, 연이어 경악을 하는 A군와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주제 전환이 되었습니다.
물론 A군과 저 외의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는 개판이었지만, 덕분에 본부장이 저런 식으로 제 성질을 긁으려 드는 일은 줄어들었습니다.
예,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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