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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부부강도
게시물ID : panic_825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도둑맞은마음
추천 : 15
조회수 : 273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8/14 20: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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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네비게이션이 음성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서둘러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두리번거릴 새도 없이 바로 앞 건물 위로 大田日報란 네 글자가 두 눈에 들어왔다.

“들어갈 수 있겠어?”

어느새 조수석에서 내린 아내가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아내에게 머물러있던 시선을 거두고 건물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내를 힐끗 보고나서 자못 비장한 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도중에 혹시나 싶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꼼꼼히 훔쳐보았다. 빌어먹을 그 자식의 얼굴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데스크 앞에 다다르자 어느새 숨이 가빠오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커다랗게 심호흡을 한 후, 안내직원을 불렀다. 통화중이었던 그녀는 서두르듯 전화를 끊고 나와 마주했다.

“제작국장 정현욱씨를 만나려고 왔습니다.”

여자의 표정은 잠깐 당혹한 듯했지만, 어느새 여자의 눈빛엔 연민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분은 이미 퇴사하셨습니다.”

문득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고, 여자가 내 등 뒤로 누군가와 눈짓을 주고받았다. 여자의 시선을 좇아 뒤를 돌아보자, 여자와 같은 색깔의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내 위아래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피해자분이시지요?”

남자의 거침없는 그 말에 느닷없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선생님의 일은 매우 유감이지만 이곳에선 해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국장님, 아니, 정현욱 그 사람 지금 수배중이라면서요. 기자들이 득실득실한 이곳에 나타날 리가 없잖습니까?”

그렇다. 남자의 말처럼 정현욱이 이곳에 나타날 리는 만무했다.

그럼에도, 어쩌자고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까지 왔던가...

실날 같은 기대감으로 나는 가늘게 입을 열었다.

“혹시 집 주소라도 알 수 없을까요?”

“선생님 말고도 다른 피해자 분들과 경찰이 이미 집까지 수차례 다녀갔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도주하기 전에 집 명의를 바꾸고 집기까지 죄다 팔아치웠다고 들었습니다.”

남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일만큼 내 눈엔 이미 눈물이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것이 흐르지 않도록 눈에 잔뜩 힘을 주어야 했다.

“그럼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겁니까?”

“딱하게 되셨습니다만, 저희로서는 아무런 도움을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황망하게 여자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나는 남자에게 짧게 목례를 하고 그들에게서 도망이라도 치듯이 데스크에서 멀어져갔다.




아내는 차 안에 있었다. 내 표정을 읽고서 아내도 이미 상황을 알았을 것이다. 아내의 긴 한숨소리가 차안을 가득 채웠다. 이대로 있다가는 왜인지 질식할 것만 같아서 서둘러 시동을 걸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해졌다.

아내가 기어에 얹어있는 내 손을 감싸주었다.

“우선 밥이나 먹자. 새벽에 휴게소에서 우동 먹은게 다잖아.”

“미안해. 배 많이 고팠지? ”

“당신만큼 하겠어? 참, 근처에 학교가 있으니까 학생식당에서 밥 먹자. 지금도 아마 일반식당보다는 저렴하고 양도 많을 거야.”

“그래, 그러자.”

학교는 십여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아내 말처럼, 단 돈 오천 원으로 우리는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 커피도 마시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자판기 커피가 한잔에 백 원이더라.”

나는 커피를 뽑아서 아내 앞에 놓아주었다.

“당신은 안 마셔? 설마 백 원 아끼시려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아내를 향해 웃어주었다.

“머리가 좀 지끈거려서, 그냥 안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많이 아픈 거야?”

“아냐, 딱 커피 한 잔 못 마실 정도만!”

“치, 혼자 먹으면 맛없는데...”

그러면서도 아내는 종이컵을 양손에 쥐고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홀짝거렸다.

“그런데 당신, 졸업 못한 거 후회 안 해?”

아내는 새삼 주위를 죽 둘러보고 나더니 다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니, 대신 지은이가 졸업했잖아. 나보다 훨씬 나은 학교였고... 그때는 취직 하고나서 꼬박꼬박 월급을 모아 지은이한테 등록금 줄때가 가장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이렇게 못난 언니가 되었지만...”

또르르... 아내의 보석 같은 슬픈 구슬이 커피 잔으로 숨어들었다. 

그때, 누군가의 거친 말소리가 아내와 내 사이를 파고들었다. 
“야야, 그깟 돈 오백만원 가지고 그딴 식으로 굴 거야? 너 학교도 안나온다며, 미친거 아냐? 졸업 안하려고 작정했냐? 도대체 언제까지 나 피해서 도망만 다닐 건데? 이 불쌍한 인간아, 당장 와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해! 그럼 돈 안 갚아도 되니까!”

선그라스를 쓴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여자 앞에 잠자코 앉아있던 남학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돈 안 받아도 되는 거야?”

“걔가 어떻게 버텨온 학교인데... 졸업은 해야 할 거 아냐? 나야 옷 몇 벌 안사면 되지 뭐.”

“너 진짜 멋지다! 너도 알다시피, 걔 정말 불쌍한 애야. 걔네 엄마 병원비에, 동생들 학비에, 말 그대로 소녀가장 이라니까.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얼마 전에 엄마가 다시 쓰려지셔서 정말 딱하게 됐어. 나중에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학기 등록은 하긴 했으려나?

“돈돈돈! 그 놈의 돈이 뭔지... 난 왜 이렇게 돈 많은 집에 태어난 거야, 밥 맛 없게 스리...”

“야, 너 방금 잘난 척 한 거냐, 신세타령 한 거냐?”

“몰라, 이 자식아! 나 그만 간다. 콜라 잘 마셨다! 다음에 이 누님이 맛난 밥 쏘마!”

“나야 언제나 땡큐지, 잘 가라!”

여자는 또각 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돈이 많아도 밥맛이 없는 거구나...”

아내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쩌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은 허무한 걸지도 몰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그냥, 저 여자 보니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치, 난 허무주의자가 되어도 좋으니까 허무할 정도로 돈 좀 많아봤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 애들도 당장 데려오고, 예쁜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먹이고,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장사도 하...”

갑자기 나를 의식해서인지 아내가 말을 끓었다.

“아니, 그냥... 그냥 헛말이 나온 거야. 미안해.”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지... 명은아, 정말 미안하다”




식당에서 나온 우리는 교정 벤치에 앉았다. 달리 할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햇살 참 좋다. 벌써 봄이네...”

말을 마치던 아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애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아주버님이나 형님이 밖으로만 내몰진 않겠지?”

나도 목이 메여왔지만 힘겹게 참아냈다.

“어머님이 잘 감싸줄 거야. 밥도 잘 먹고 건강하게... 둘 다 잘 있을 거야.”

“당신한텐 정말 미안한데... 사는 거 너무 힘들어... 이젠 어떡해야 하지? 우리 이제 어디로 가?”

울먹이는 아내에게 뭐라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삼십분 전, 우리는 사고를 당했다. 아니, 당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일방적인 실수였다. 교정 인근에서 선그라스를 주우려던 여자를 차로 친 것이다. 아내는 뒷좌석에서 무릎 위로 여자의 상체를 받치고 있었다.

“어떡해.., 이 아가씨 아직도 의식이 없어. 그나저나 아직 못 찾은 거야? 도대체 병원이 왜 없는 거야?”

나는 엑셀을 힘차게 밟았다. 사고를 당한 여자가 의식이 없다는 말을 듣기 이전에 내 결정은 이미 정해졌다. 나는 한적한 길을 지나서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뭐야, 왜 이런 데로 오는 거야?”

당혹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긴 한숨소리... 몸의 기운을 토해내는 아내의 한숨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정말 질식할 것만 같다. 나는 차를 세웠다.

“묻자.”

“당신 미쳤어? 이 아가씨 잠깐 기절한 거야. 아직 살아있다고! 당신도 봤잖아, 이 아가씨, 살짝 부딪혔을 뿐이야, 많이 다치지 않았어!”

아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가벼운 접촉사고였고, 여자는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는 말에 엉덩이를 털고 차에 올랐던 것이다.   

“피해보상이라도 요구하면 어떡할 건데? 이 차 보험 지난 거 당신도 알잖아. 우리한테 무슨 돈이 있어?”

“그래도, 그래도... 이건 아니야. 이러면 안 되는 거야.”

아내는 울고 있었다.
“돌아가자, 우리 나쁜 생각 하지 말자.”

“이 여자는 우리 차도, 우리 얼굴도 똑똑히 기억할거야. 정신 차려! 이대로 돌아가면 우린 무조건 감옥행이야. 당신도, 나도!”

아내가 눈물 그렁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만 들어간다고 쳐, 당신 또 옥바라지 할 수 있겠어? 그땐 애들 굶어 죽을까봐 나쁜 짓해서 들어간 거지만 이제 무슨 핑계를 댈 거야? 정현욱 그 개자식한테 사기 당해서 벌인 짓이라고 해? 세상에 사기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누가 과연 우리를 용서하고 이해해줄까? 또 애들한테는 어쩌고? 이미 전과자인데 또 범죄자 애비 노릇을 하라고? 난 못해! 절대 그렇게는 못해!”  

“우리 애들... 그럼 우리 애들 못 보는 거야?”

나는 쐐기를 박아야 했다.

“당연하지! 범죄자 애비, 애미를 애들이 과연 만나줄까?”

“어떡해... 그럼 어떡해...”

아내는 한참을 울었다. 그때까지도 여자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아내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럴게, 당신 하자는 데로 할게. 대신 죽이지는 말자...”




우리는 여자를 들고 강가 근처에 눕혀 놓았다.

“여기에 두고 가자.”

“설마 죽진 않겠지? 우리 얼굴 기억하지 않을까? 학교 앞이었는데 목격자는 없었을까?”

아내의 불안한 말에 나도 걱정이 되었지만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운명에 맡기자. 우리한텐 이게 최선일거야.”

그때였다.

여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와 여자를 번갈아보았고, 아내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로 여자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으응...”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여자가 상체를 일으키고 앉았다. 여자도 아내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내가 왜 여기에...”

여자가 벌떡 일어섰다.

“당신들 뭐야? 당신들 누구야?”

퍽.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여자를 주먹으로 내리친 것이다. 여자의 몸이 쓰러지자 나는 여자의 배에 앉아서 몇 번이나 더 여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만해, 사람 죽겠어! 제발 그만해!”

필사적으로 나를 부여잡고 제지하는 아내의 손길에 나는 주먹을 땅 위로 내려놓았다.

“어떡해, 이젠 정말 어떡해...”

아내처럼 나도 여자의 곁에 털썩거리며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그저 한참을 울었다. 그러다 문득 여자를 보자, 여자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주먹으로 눈가를 훔치며 몸을 일으켰다.

여자의 옷을 벗겼다. 아내는 반쯤 실성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멍하게 있었다.

“신고하면 안 돼... 못하게 해야 해...”

나는 차안으로 가서 카메라를 가지고 여자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플래시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기절한 척을 포기한 듯이 눈을 떴다. 여자의 눈동자엔 공포와 수치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저씨, 저 돈 많아요. 그냥 보내만 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여자가 흐느꼈다.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세요.”

여자가 내 무릎을 부여잡고 울먹이며 흐느꼈다.


나는 다시 차 안으로 가서 여자의 핸드백을 가지고 왔다. 핸드백을 여자의 앞에 던졌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은 가진 돈이 없지만 집에 연락해서 얼마든지 드릴게요.”

나는 여자에게 명령했다.

“집으로 전화해. 당장 일억만 준비하라고. 그럼 보내줄 테니.”

“네네, 그럴게요. 지금 전화할게요.”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백을 열고 휴대폰을 꺼냈다.

“어...어... 어엄마, 나... 나나... 나야. 어, 나 지금 병원에 와있어. 아니, 내가 아픈게 아니고... 친구가 좀...”

여자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엄마, 친구 어머님이 지금 위독하시데. 그래서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데, 나 일억만 보내줘요.”

여자는 자세를 바꾸고 휴대폰을 다른 귀에 갖다 대었다.

“엄마는 그걸 말이라고 해? 어떻게 산 사람을 죽게 내버려둬? 제발, 엄마 제발 부탁해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란 말야. 이번에만 도와주면 하라는 대로 다할게. 나중에 내가 다 갚을게. 제발 돈 좀 보내줘요. 제발...”

여자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다할게. 제발... 제발... 지금 당장 그 돈이 필요하단 말이야...”

아내가 다가왔다. 아내는 여자의 팬티를 집어서 여자의 다리 사이에 넣어주었다.

“알았어요. 꼭 그렇게 할게. 그 남자랑 당장이라도 선볼게. 엄마가 그 남자 마음에 들면 그 남자랑 결혼도 할게.”

여자는 아내한테 연신 꾸벅거리며 한 손으로 팬티를 끌어올렸다.

“어, 고마워, 고마워 엄마. 나 앞으로 잘할게. 엄마한테 진짜 잘할게. 어, 어.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안에 시내로 갈게. 기사아저씨 편에 꼭 보내줘요. 아니, 병원으로 올 필요 없어. 여기 시내에 있는 병원이야. 어, 어. 시내에 도착하면 내 전화로 아저씨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내가 바로 나갈 수 있어.”

여자가 기쁜 눈으로 아내와 나를 번갈아보았다.

“고마워, 엄마. 정말 고마워. 잘할게. 나 정말 잘할게...”

여자가 전화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옷 입어도 돼요?”

아내가 여자의 옷을 집어주었다.

“미안해요, 아가씨... 우리가 너무 힘들어서, 아니 너무 무서워서, 아가씨한테 몹쓸 짓을 했어요...”

아내가 울먹거리며 여자가 옷을 편하게 입게끔 도와주었고 여자도 함께 울며 옷을 입었다.

“괜찮아요, 아줌마... 아줌마, 저 착한 사람이에요. 이곳저곳에 자원봉사도 많이 다니고, 가난한 친구들도 도와주고, 헌혈도 많이 하고, 나름대로 정말 착하게 살았어요. 잘보이려고 거짓말 하는거 아니에요. 정말 이에요... 아줌마, 그냥 살려만 주세요. 저 절대로 신고 안할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내가 여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해요, 아가씨. 정말 미안해. 이렇게 고운 얼굴이 망가져서 어떡하나. 이걸 어쩌나......”

아내는 여자를 부축해서 뒷좌석에 앉혔다.

“나한테 악한 감정만 있겠지만 편하게 기대요.”

차에 시동을 걸고 뒤를 돌아보자, 여자는 눈을 감은 채로 아내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아내와 여자는 마치 친자매처럼 편안하고 애틋해보였다.



결국 우리는 돈을 받지 못했다. 기사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여자가 돈을 받으러 갔었다. 아내와 나는 금방이라도 도망칠 수 있게끔 차안에 있었다. 여자가 고급 승용차 앞으로 다가가자 운전석의 문의 열리고 기사가 나왔다. 곧이어 뒷좌석이 열리면서 중년의 여인이 빠르게 나왔다. 기사와 중년의 여인은 반항하는 여자를 질질 끌고 가더니 조수석에 구겨 넣었다.

“박 기사, 얼른 들어가서 문 잠궈. 또 누구한테 뜯기려고? 너 그동안 가난한 것들한테 돈 퍼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니가 뭔데 그것들한테 내 재산을 축내고 난리야!”

여인이 소리소리 지르며 차안으로 올라탔고 차는 빠르게 출발했다.


“가자.”

아내가 힘없이 말했다.






오늘에서야 문득 그 날이 떠오른다. 그 날 이후로, 무려 이백일 동안 우리 부부는 수십 차례, 아니 수백 차례 강도짓을 저질렀다. 밥을 먹고 잠을 자듯이 우리의 일상은 사람들에게서 돈과 물건을 훔치고, 협박하고, 속이는 것이었다.

만약 여자한테 1억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아니, 정현욱의 사탕발림 같은 권유를 뿌리치고 정수기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여기에 있었을까? 아니, 그 전에 힘겹게 유지했던 이발소를 닫지 않았더라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지금 이 순간, 아이들이 보고 싶다. 지금 내 눈에 눈물이 흐르는 건 원망도, 참회도 아닌 그리움의 눈물인 것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를 아내의 얼굴위로 아이들의 얼굴을 오버랩시켰다.

경찰들은 이미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고, 내 두 손엔 벌써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끝>

 

 

출처 오래전에 습작으로 썼던 거라서 어디에 남겨놨는지 기억이 안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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