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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명아, 너는 조국을 위해 한번이라도 연탄처럼 뜨거웠던 적이있었냐?
게시물ID : sisa_10732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뚱아저씨1219
추천 : 115
조회수 : 1972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8/06/11 10:2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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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네 또래니까 그냥 말 놓고 편안히 글쓴다.

 

요즘 김부선 배우와의 관계를 마치 없었던 일처럼 부정하고 뻔뻔스럽게 구는 너를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참, 먼저 한 가지는 인정할게. 김부선 배우가 자기를 만나는 15개월 동안 10원 한 장 안썼다고 해서 .. 이 놈 지독한 놈이네.. 어떻게 밥 한 번 안살 수 있냐?” 라고 했는데 인천 앞바다에서 스테미너에 좋다는 낙지까지 먹으면서 그 계산을 네 카드로 했다고 하니 완전 공짜는 아니었더구나. 그래 그 정도는 계산해줘야지 남자지.

 

나는 재명이 네가 한 말 중에 제일 이해가 안되는 말이 ‘5.18은 나의 정신적 어머니라는 말이다.

 

스스로 일베처럼 살았다는 말까지 했던 네가 5.18을 정신적 어머니라고 생각할 정도의 높은 수준의 가치관을 갖게 되려면 뭔가 아주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거든. 사실 나도 80년대 대학에 입학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한 계기가 바로 5.18 광주 항쟁이었어.

 

대학가 대자보에 전시됐던 5.18의 진실과 광주 항쟁 희생자들의 그 참혹했던 사진들. 그리고 학교 소강당에서 당시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함께 보기엔 너무도 작았던 티비로 봤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목숨걸고 찍은 그 학살 현장의 영상들.

 

그 때까지만 해도 전두환, 노태우가 맘에 들지는 않았어도 그렇게까지 나쁜 놈인줄 몰랐던 내가 빡 돌게 됐던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바로 5.18 광주 항쟁의 사진, 영상물들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그런데 재명이, 너는 도대체 언제 5.18을 너의 정신적 어머니라고 생각하게 됐니? 네가 지금까지 쓴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언제 어떤 계기로 5.18을 너의 정신적 어머니라고 생각했는지 알 수가 없더구나.

 

재명이 네가 1964년생이니까 아마 잘 알거야. 1988515일에 한겨레 신문이 창간됐단다. 지금은 맛탱이가 간 기사도 자주 나와서 한걸레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듣는 신문이지만 그 신문 창간 당시에 민주 언론’ ‘정론 직필에 대한 민주 시민들의 요구는 정말 대단했단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의 창간은 어느 돈 많은 자본가가 만든 신문이 아닌 국민주 형식으로 십시일반 모금된 돈으로 만든 신문이었단다.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할 때 한겨레 신문 창간 위원도 하고 없는 살림에 정말 많은 돈을 모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년대를 관통했던 우리 세대들이 가장 뜨거웠던 때가 바로 876월 항쟁과 88년 한겨레신문 창간할 때 창간주주가 되는 것이었다. 86년 월간 말지에 전두환의 보도지침 사건이 보도되면서 권언유착한 언론의 실체가 낱낱이 까발려지면서 더욱 우리 얘기를 사실대로 보도해주는 언론을 만들고 싶었던거야.

 

당시 가난한 집 아들에 대학생인 내가 무슨 돈이 있었겠니. 하지만 어떻게라도 한 푼이라도 보태서 신문다운 신문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방학 때 등록금을 번다고 노가다를 뛰는데 당시 일당이 2만원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교 등록금이 60만원이었는데 한 달 꼬박 일하면 등록금을 벌 수 있었지. 그래서 열심히 노가다 뛰어서 등록금을 벌었는데 매일 같이 몸이 뻑적지근해서 무척 힘들었었어.

 

하지만 어떻게든지 한겨레신문 창간 주주가 되고 싶어서, 정말 피곤하고 몸이 쑤신 것 꾹 참고 열흘을 더 일해서 20만원을 더 벌었단다. 재명이 너도 공장에서 일해봤으니까 그렇게해서 번 돈이 얼마나 소중한 지 잘 알 것 아니냐.

 

그렇게 벽돌짐을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까지 하루에도 100번씩 오르락 내리락 하며 열흘간 더 일해서 번 돈 20만원을 한겨레 신문 창간주에 넣었단다. 사실 그 돈 다시 돌려받을 생각도 없었어. 그냥 우리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신문 하나 만든다는 기쁨과 보람으로 내 작은 성의를 표시하고 싶었던 거지.

 

재명아, 너는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연탄재처럼 한 번이라도 뜨거워봤던 적이 있니?

 

김부선씨는 네가 함부로 연탄재처럼 걷어찰 여인은 아니다. 가끔 나조차도 헷갈리는 말을 해서 실망스러웠던 적도 있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그 여인은 조국을 위해 뜨거웠던 여자였단다.

 

2005년 춘천에서 열렸던 조선일보 반대 마라톤대회(일명 조반마)에서 그녀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봐서 잘 안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나름대로 뜨거운 신념을 가진 여자였더구나.

 

재명아,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80년대를 관통하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너에게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네가 5.18을 정신적 어머니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니? 그리고 5.18을 정신적 어머니로 생각한 다음에 무슨 실천을 했니?

 

나는 나름대로 876월 항쟁에 목숨걸고 싸우다 수배도 당했고, 구속되어 투옥 생활도 했고, 벽돌짐 나르며 노가다도 뛰어서 마련한 금쪽 같은 돈을 한겨레 신문 창간주에 넣었단다.

 

쑥스럽지만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 1층에 동판으로 새겨져 전시된 창간 주주 명단을 인증샷으로 올린다. 그 가운데 황동열이라는 이름이 바로 나다. 정말 그 당시 민주 언론에 대한 뜨거운 마음으로 내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번 금쪽 같은 돈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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