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등신백일장] 견문발검(見蚊拔劍)-대(對)모기기피부대
게시물ID : readers_212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ayho!
추천 : 6
조회수 : 42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8/13 18:28:51
옵션
  • 본인삭제금지

책게시판입니다.

책게라고하지요.

책게시판에오면

온몸이책잇책잇

===============================================

[프롤로그]


치익! 칙!

짧은 분사음과 함께 라벤더향이 나는 작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오랜 시간 어두운 용기 안에서 대기하다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한 무리의 정향유 병사들. 

그들의 지휘관인 L000001014는 갑자기 현란해진 세상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곧 자신이 낙하임무를 지휘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억지로 시야를 확보했다. 

그들의 목표지점에는 빨갛게 달아오른 나지막한 산이 있었다. 

그 가운데를 흉포하게 갈라놓은 십자 모양의 계곡이 그들을 맞이했다.


[2015/08/14 22:09]


"......이상 낙오자보고 끝."


보고를 끝낸 6397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같은 제조번호를 가졌기에 그들 사이에 상하관계는 없다. 

그들은 용기에서 분사된 마지막 병력이라 그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이런 곳에 떨어질 줄은 몰랐는데."


1014가 착피한 곳은 붉은 산의 십자 계곡 안이었다. 

이미 한 번 모기가 물어뜯고 지나간 곳으로 검붉게 변한 피부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 다른 동료들과 합류하자. 아직 시간은 충분해."


1014의 말에 부대원들은 이동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4885가 그에게 다가왔다.


"1014, 우리는 이곳에 남겠다."


"무슨 일이지?"


1014는 4885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한 무리의 부대원들이 자신의 시선을 회피한 채 모여있었다.


"아무것도 묻지 마. 우린 이제부터 독자적으로 행동하겠어."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이동 준비해."


4885는 고개를 숙였다. 곧 그의 입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네끼리나 개죽음당하라고, 우린 여기서 바람이 될 테니."


"......4885."


4885는 속사포를 쏘아댔다.


"그래, 우린 모기랑 싸우러 왔지. 인간들이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4시간 동안 모기를 쫓아내면 바람이 될 수 있다고? 

웃기는 소리 하네. 여긴 전쟁터야. 달랑 칼 한 자루 가지고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 

그 4시간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면서부터 수십, 수백 시간 동안 기다리고 얻은 유일한 나의 삶이라고! 근데 왜 그걸 버려야 하지!"


1014는 우울한 눈으로 4885를 바라보았다. 그가 하는 말보다 더 1014를 짓누르는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그까짓 지휘관 감투로 네가 내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건 합당하냐?'


"4885...!!!"


그 순간, 갑작스럽게 어둠이 사방을 집어삼켰다. 인간이 빛을 숨기고 수면활동에 들어간 징후였다. 

그것은 전투를 알리는 첫 번째 나팔 소리나 다름없다. 1014는 눈을 감았다. 

4885와의 언쟁이 길어질수록 부대원들은 더 흔들릴 것이다. 자기합리화의 근거를 찾은 1014는 곧 상황에 대한 합리화를 시도했다.


"......지휘권 일부를 위임할 테니 이곳에 통신동과 연구동을 설치해. 

임무종료시간까지 다른 지시사항이 없으면 너의 권한으로 철수해도 좋아."


"건투를 빌지."


1014는 4885의 비웃음 가득한 얼굴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설치할까?"


4885는 말을 꺼낸 동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상쾌하게 대답했다.


"4시간뿐인 인생 뭐하러 힘들게 사냐. 우린 바람이 된다. 바람이 되면... 원하는 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어."


[2015/08/14 22:32]


행군을 하는 동안 산자락은 점점 표피에 수렴해갔다. 무선통신장비를 짊어진 8225는 1014에게 다가갔다.


"냄새가 너무 구리지 않아?"


"인간의 발 부위에 뿌려진 모양이다."


"나도 세상에 나온 건 처음이지만 발냄새치고 굉장히 심각한데..."


"통신은 연결됐어?"


"4885쪽은 아직이야. 0719는 20분 전에 연락했고..."


8225는 계곡의 끝을 가리켰다.


"이제 다 왔으니 곧 만나겠지."


그때였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하늘이 찢어지고 있었다. 

시야를 덮는 거대한 몸으로 굉음을 뿜어내며 선회하는 모습은 하늘이 찢어진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기가 나타났다.


"하앍하앍~ 스멜~ 우리 애기들을 위한 동물성단백질을 핥짝핥짝~"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공포에 질린 비명이 울려 퍼졌다.


탕탕탕탕


"어머 음식에다 약을 뿌려놨어~ 개념 없게~"


계곡 밖의 부대는 이미 교전에 돌입했다. 1014는 칼을 빼 들고 외쳤다.


"서둘러! 아군을 지원한다!"


계곡을 빠져나오자 공중과 표피를 순간이동 하듯이 움직이는 거체가 실감 나게 다가왔다.


"전 병력, 칼날 후퇴고정!"


불규칙한 쇳소리 뒤에 칼날에 숨겨져 있던 총구가 드러났다.


"발사!"


타당탕탕타당


"아 진짜 화학약품 때문에 화가 나려고 하네~"


총알을 다 쓴 1014는 다시 칼날을 장착했다. 몇 걸음 달려간 1014는 온 힘을 다해 도약했다.


"흡혈을 저지하자!"


[2015/08/14 22:54]


"......이상 생존자 보고 끝."


보고를 끝낸 6397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예전의 자리는 이제 없었다. 

모기와의 전투에서 병력의 2/3가 소실됐다. 간신히 모기의 흡혈은 막았지만 다음번 전투에서는......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8225가 무심코 입을 열었다. 1014는 그 말을 들었지만 어떤 희망적인 대답도 떠올릴 수 없었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시선을 집중할 뿐이었다.


"그 친구들, 바람이 되었을까."


"소실되면 바람이 되지 못해. 인간이 몸을 씻을 때 구정물이 되면 몰라도."


"임무 시간 끝날 때까지는 살아남아야지."


잡담을 나누던 8225는 1014를 슬쩍 바라보았다. 1014는 청각을 고의로 유기하고 더더욱 어둠 속에 시선을 집중했다. 

마치 그곳에 특이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처럼. 


"저게 뭐지?"


너무 의식한 듯한 타이밍이라 8225는 잠시 동안 1014를 동정했다. 하지만 1014는 진짜로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발견했다.


"누구냐."


"누구겠나, 전 모기기피부대원이지."


그제야 8225는 그들에게 다가오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까지 왔을 때 8225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시선은 초점이 맞지 않았고 입은 닫히지 않았다. 전투복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나사가 빠진 모습이었다.


"이 부대의 지휘관 L000001014다. 그쪽은?"


"C314159265... 그냥 파이라고 해. 이 죽음의 살갗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네, 낯선이여. 크크."


1014에게 8225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저 친구 이소발레르산중독 아닐까?"


"......발냄새중독?"


"그렇지 않고서야, 오래전에 여기 온 거 같은데, 왜 소실되지도 않았으면서 남아있는 거지?"


둘을 바라보던 파이는 몸을 떨며 웃었다.


"크크, 크, 크크크크. 내가 미친 것처럼 보여? 크크크크"


"그럼 왜 그 꼴로 여기를 돌아다니는 거야?"


"발냄새가 좋아서."


8225는 얼이 빠졌고 1014가 대화를 이어받았다.


"죽음의 살갗이라는 건 무슨 뜻이지?"


"크크크, 알면서 물어? 너희도 이미 한바탕 했으니 알 거 아냐. 숫자가 많이들 줄었지? 크크크."


"......모기와 싸우는 것은 우리의 임무다."


"너희 부대원도 그렇게 생각해?"


1014는 차마 뒤돌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신들 아~주~ 좋지 않은 곳에 떨어졌어, 크크. 이 인간, 어린 여자애인데 운동을 하는지 땀이 엄청나, 크크크. 

발냄새도 장난이 아니지. 근데 요 며칠 동안 발목을 다쳤는지 깁스를 하더라고. 오늘 그 깁스가 사라졌고, 너희가 온거야. 

이 얘긴 뭐냐......"


8225는 어쩐지 하는 표정을 지었고, 파이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지금 너희는 모기들이 환장할만한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는 곳에 떨어졌다~ 이 말이야, 크크크."


1014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사실 저자가 왜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여기서 개죽음 당할 거야? 그러지 말고 날 따라와, 크크크. 

얌전히 모공에 숨어있다가 시간 되면 바람이 되어서 날아가라고."


"우리 임무는 모기와..."


"이봐, 그 말, 믿을 수 있는 거야?"


1014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8225가 앞으로 나섰다. 


"모공에 은신하면, 바람이 될 때까지 버틸 수 있어?"


"8225."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겠나, 크크크."


"8225."


"......그만해, 젠장! 난 그렇게 착해빠지지 않았다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1014. 난 지휘관으로서의 널 존중하지만, 지금은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겠어. 살아남아서 바람이 될거야. 

저 산에 남은 친구들처럼..."


파이의 고개가 8225의 손가락을 따라 붉은 산으로 향했다.


"저 산에 동료들이 있나."


"그래."


"미쳤군. 이 인간은 가려운 걸 못 참는단 말이야! 빨리 튀어나오라고 해!"


"8225!"


8225는 파이와 1014를 번갈아 보고는 급하게 무선통신장비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들의 깨달음은 한발 늦었다. 

눈치챌 사이도 없이 모기만 한 크기의 거대한 손톱 네 개가 붉은 산 주위를 덮었다.


그르르르르륵 그르르르르륵 그르르르르륵


땅이 찢어졌다. 순식간에 붉은 산의 높이는 절반 정도 가라앉았다. 거칠게 긁혀진 표피에서 붉은 피와 진액이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죽을 거야."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모르지만, 그 말은 그 광경을 지켜보는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하나둘씩 1014에게 향했다. 파이가 입을 열었다.


"난 지금까지 수많은 병사의 소실을 보아왔어. 

그래서 얻은 결론은, 모기와 목숨을 걸고 싸우든 목숨을 보전하고 바람이 되든, 우리에게 정답은 없다는 거다. 

아직도 모기와 싸우고 싶나?"


1014는 눈을 감았다. 이미 그가 가진 선택지는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 부대원의 생사와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에 관한 고민이었다. 이윽고 대답이 나왔다.


"물론 난 싸울 거야."


파이는 1014가 모기가 아닌 부대원의 원망 때문에 소실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대답이 이어졌다.


"하지만 부대원들을 더 희생시킬 수는 없어. 모두 모공에 참호를 구축하고 은폐해."


부대원들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다. 파이는 부대원들을 향해 키득거리고는 1014에게 다가왔다. 


"자넨 싸운다고? 혼자서?"


"우리 부대는 해체한 거나 다름없어. 이건 내 문제야."


"왜 그렇게까지 모기한테 집착하는 거?"


"......내가 다른 모두와 같을 수는 없으니까. 난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태어났고, 그 외에 다른 목표를 가져본 적은 없어. 

이렇게 살다가 바람이 되지 못하고 소실되더라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1014는 붉게 타오르는 살갗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어리석은 결정으로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소실되었으니, 그 책임도 져야지."


"어벙한데 고집만 센 지휘관인 줄 알았는데, 내 생각이 맞았군. 킬킬킬."


파이는 1014를 지나쳐갔다.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따라와. 혼자서라도 싸울 수 있을지 모르니까."


[2015/08/14 23:26]


"여기는?"


"내가 지내던 모공이야. 그리고 이 장비들은 인간의 신경계와 연결된 정보수집장치지."


파이는 정보수집장치를 작동시켰다. 


"이걸 통해 이 인간의 생체정보를 수집했어. 그러다 흥미로운 곳을 발견했는데......"


그는 지금까지 중 가장 신나 보였다.


"인간의 무의식이라는 곳이야. 여기엔 이 인간이 살아오면서 생산한 모든 정보가 저장되어 있지. 

근데 하도 정보가 방대해서, 여기서 놀다 보면 시간이 훅 가. 

내가 미쳐 보이는 것도 이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휩쓸려다니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거, 크크크."


킬킬대던 파이는 갑자기 정색하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이 무의식을 떠돌다가 생각한 게, 내가 여기서 정보를 받을 수 있다면 반대로 정보를 줄 수도 있지 않겠어? 

그러니까 우리가 모기한테 몸을 던지는 것보다 이 인간이 직접 모기를 잡는 게 더 낫잖아? 

그러면 모기가 접근할 때 우리가 신호를 줘서 이 인간이 직접 모기를 잡게 할 수 있지 않으냐 이 말이야."


"그게 가능해?"


"몰라. 해봐야 알지. 어쨌든 혼자 모기에게 돌격하는 거보다는 나을걸"


1014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고 싶었다.


"작동하는 법을 알려줘."


파이는 정보수집장치를 1014에게 연결했다. 


"눈을 감아. 그러면 시작할 거야."


1014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의 뒷면이 보였다. 

그리고 점점 희미한 영상이 들리고, 신경질적인 잡음이 들리더니, 

거대한 우주로 빨려 들어갔다.


[2015/08/15 00:39]


숙희는 눈을 떴다. 미친것 같은 열대야와 미친 모기 새끼들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까 긁은 발을 만져보니 근처에 또 한방 물렸다. 화풀이로 이불을 뻥 차고 잠을 청했다.


'아오, 저 모기기피제 다시는 사나 봐라.'


1014는 토할 것 같았다. 눈이 뒤통수로 돌아가고 목구멍으로 창자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 

정보의 격류에 휘말리다 그는 산산이 부서질 것 같았다.


'모기, 모기에 집중하자.'


1014는 어는 시골집을 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그것은 숙희의 꿈이었다.


'음냐... 여기는 할머니네 집.'


왠지 인간과 의사교류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014는 좀 더 집중했다.


[2015/08/15 02:04]


"어이, 자네 뭐하나."


6397은 파이를 돌아봤다.


"친구들을 배웅하는 중."


"아, 다들 바람이 된 건가. 자네는?"


"보고를 해야 하니까. 1014는?"


"모기를 퇴치할 방법을 찾는 중이지."


"빨리 좀 찾았으면 좋겠는데."


파이는 뭔가 대답하려다가 어떤 소리가 들려오는 걸 깨달았다.


"하으앍~" "태교엔~" "맛좋은~" "인간의~"


이번엔 모기떼가 나타났다. 파이는 자신의 모공과 연결된 통신장비를 켰다.


"어이 1014! 내 말 들려!"


"피~!!!"


순간,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2015/08/15 02:05]


숙희는 방의 불을 켜고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기온과 습도를 바꿀 수 없으니, 안면을 위해 모기라도 때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기기피제는 자기 전에 다 쓰고 버렸다.


'어떻게?'


비몽사몽 한 상태여서인지 몰라도, 뭔가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던 것 같은데 알 수가 없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비 꼬면서 침대를 뒹굴거렸다. 기억날 듯 말 듯한 생각을 떠올리기 전에 다시 잠에 빠지게 될 것 같았다.


[2015/08/15 02:14]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순식간에 낮과 밤이 바뀌는 상황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파이는 6397이 소실된 것을 깨달았다.


'방금 이 인간이 불을 켰었지. 근데 왜 그냥 자는 거지? 실패인가?'


굉음이 울렸다. 한 번 타이밍을 놓친 모기떼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급강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파이는 상황을 파악했다.


'성공했구나.'


모기들은 급강하하다가 공중에서 크게 휘청거렸다. 뿌연 연기와 함께, 모기 잡는 악마가 등장했다.


"으하하하하하하! 어서 오시게! 전설의 비행편대 Foxtrot-KILLER!"


파이는 자신의 칼을 빼 들었다. 오래전 소실된 부대원들이 다시 돌아와 자신과 함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몇걸음 뛰어가다 크게 도약했다.


"흡혈을 저지하자!"


[2015/08/15 02:48]


"파이."


1014는 파이를 똑바로 눕혔다. 그는 금방이라도 소실될 것 같았다. 정신을 붙잡아두기 위해 말을 걸었다.


"그녀의 꿈속에서 시골집을 보았어. 

거기서 모기향을 보았고. 그녀의 무의식 속에서 할머니 집에서 쓰던 모기향을 서랍 어딘가에 처박아둔 걸 발견했지. 

그런데... 조금 늦었군."


"크크크, 잘했어."


파이는 눈을 떴다. 하지만 여전히 초점은 맞지 않았다.


"말했잖아... 우리에게 정답은 없다고... 

살아서 바람이 된 친구들이 잘한 것도... 미련하게 모기랑 싸우다 본전도 못 찾은 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니야. 흐헉, 헉."


파이는 자신의 피 묻은 칼을 1014에게 건넸다.


"자네는 이미 바람이야...쿨럭."


파이는 소실되었다. 


[에필로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무더위도 슬슬 물러나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었다. 

여름을 나기 위해 방을 차지하던 물건들도 모두 창고로 돌아갔다. 

숙희는 다리가 완전히 나아, 원래 자신은 그러기 위해 태어났다는 듯이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며 땀을 흘렸다. 

그리고 집안을 방문하는 가을바람에 땀을 식히다 꿀 같은 잠에 빠지곤 했다.


"하아앍~ 하아앍~ 집 나간 며느리도 찾아서 무는 가을모기~"


1014는 바닥에 놓여 있던 칼을 손에 쥐고 일어섰다.


"어머~ 건방지네~ 어디서 이 위대한 생명체의 거룩한 생식활동을 막아서는 거야~ 미개한 화학약품이~"


1014는 바닥에 놓여 있던 다른 칼도 손에 들었다. 

고개를 들자, 그의 앞엔 하늘을 막고 있는 거대한 몸체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1014는 두 칼을 떨치며 달렸다.


"미안하지만, 난 천연성분이라서."


1014는 도약했다.


====================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