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 꿈을 많이 꾸는 사람입니다. 근데 꿈을 꾸면 꿀수록 꿈은 질리지가 않아요. 그래서 꿈게 생성 기념으로 아주 짧은 옛날옛적에 꿨던 꿈을 끄적여 보려고 합니다.
이 꿈은 제가 진짜진짜 어렸을 때 꿨던 꿈입니다. 네살인가 다섯살인가, 그리고 그 때 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된장찌개와 병어조림을 좋아하는 토종 한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꿈도 된장찌개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저는 꿈 속에서 어째서인지 전형적인 시골소녀가 되어있었습니다. 닭한테 모이를 뿌리고 달걀을 모으는 그런 소녀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잘 차려입은 늙은 아저씨와 한 무리가 우루루 제 집 울타리 앞에 몰려와서 저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왜 찾는지 물어보았더니 하는 말인 즉슨 나라의 왕이 심한 감기에 걸려서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저를 먹는 것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에헤이 거기 입꼬리 올리고 웃는 선비님 그런 생각 하는거 아닙니다. 다섯살이에요 다섯살. 늙은 아저씨가 설명해 주기를 먹는 건 저를 챱챱 깍둑썰어서 찌개를 끓여 먹겠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그 아저씨 기색이 묘했습니다. 되게 저를 안쓰러워하는 듯한... 어쩐지 어린 애를 두고 꼬솔꼬솔 꼬셔서 구워 삶을 생각은 안하고 겁을 주고 앉아있는게 제가 차라리 도망가기를 바라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다섯살 꼬맹이였지요. 그런 은밀한 신호 따위 개나 주고 사탕 하나에 쪽쪽 빨며 유괴범 손을 조신히 잡고 달랑달랑 걸어갈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 착하고 늙은 아저씨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는 얌전히 국왕의 된장찌개가 되러 길을 떠났습니다.
왕궁에 도착하자 저는 요리사의 손에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이 요리사는 결코 늙은 아저씨와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식재료를 사용해 볼 수 있다는 것에 감격하며 저를 깨끗하게 씻어서 손질했습니다. 저는 껍질이 벗겨져서 살점이 없는 말단부위들이 잘려 나갔고, 토실토실한 부위들과 몸통은 된장찌개의 두부와 감자크기로 썰려서 이상한 미끄럼틀 같은 것에다가 탁탁 털어넣고 물을 틀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손질되고 썰리는 내내 저는 정신이 말똥말똥했고, 심지어 간지럽게 느끼고 재밌어하고 있었습니다. 입만 멀쩡했다면 웃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는 성대와 허파가 없으면 소리가 안난다는 해부학 지식은 없었으니까요.
미끄럼틀을 쭉 타고 내려가며 저는 내내 굉장히 재밌어 했습니다. 끓는물이랑 된장의 구간을 몇번 지나치고 마침내 뚝배기에 국물과 함께 담겼을 때는 다시한 번 타고 싶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뚝배기에 담겨서 왕 앞에 내어진 저는 먹히기 일보직전에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평생 이 꿈을 잊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했죠. 굉장히 괴랄하고 일견 잔혹한 듯 보이기까지 하지만 이런게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고 규율 배운 적이 없을수록 흰 토끼를 쫓아가 앨리스의 원더랜드를 방문할 가능성도, 밤중에 일어나 피터 팬이 두고 간 그림자를 발견할 확률도 높겠죠. 이 사건 후로도 많은 꿈들을 꿨지만 어떤 것은 옛 연인의 향수냄새만큼 희미한 느낌으로 남아있고 어떤 것은 새신부의 왼손 넷째 손가락에 끼워져있는 반지만큼 확실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나이를 얼마나 먹든지 꿈은 언제나 제 옆에서 저를 지켜주고 있을 겁니다. 지친 현실을 두고 베개에 머리를 뉘일 때면 언제나 이런 괴상하고 발랄한 꿈으로 망막에 맺힌 고통의 잔상을 씻어주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