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차 남편의 이직에 따라 제주도로 내려와
1년째 시댁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 시어머님은 70대, 저는 30대인데
아무래도 나이차가 있다보니 고부갈등보다는
딸아이처럼 잘 대해주시고 대화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오늘은 어머님과 얘기하다가 무심결 근현대사 얘기가 나와서
평소 관심이 있던 터라 주의깊게 듣다가 여기에 살짝 올려봅니다.
1940년도생 제주도 토박이 어머님의 최초 기억은
노보꼬라는 이름이었대요.
믿을 신, 아들 자를 써서 신자 자자 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시지만
태어날 당시 일제시대였기 때문에 본인 이름보다는
노보꼬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고 합니다.
지금도 어머님 친정쪽 마을로 가면 신자야~ 라고 부르지 않고 노보꼬야~ 라고 부르고
마을 어르신분들도 본인 이름보다는 요시꼬, 기모꼬 등의 이름으로 부르곤 한다네요.
혹시 제주 4.3 사건도 기억하시냐고 했더니 잘 기억은 안나지만
7살때쯤 그때 살던 마을에서 해안가 마을(고내)로 서둘러 피난갔던 기억이 난다고 하십니다.
산에 있으면 다 죽는다는 소문에 어머님의 할머님이 서둘러 짐을 쌌고
짐이 너무 많다보니 아직 어린아이였던 어머님께도 짐을 매게 했는데
짐을 매고 있던 무명끈이 어깨를 파고들어 너무 아파 뒤뚱거렸다고 하네요.
시어머님의 작은 아버지가 4.3때 목숨을 잃으셨는데
마을에서 낯선 군인들이 와서 남자들은 전부 나오라고 했고
당시 작은 어머님은 만삭의 몸을 가지고 있던 터라
아버님이 양손에 한 아이씩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이없이 총살 당한 남편과 자식들 시신 수습하기도 전에
산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왔고 작은 어머니를 죽창으로 .....
결국 뱃속 아이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엄마와 죽었다고 합니다.
결국 시신은 시어머님의 아버님이 수습했다고 하는데
왜 4.3 유가족으로 등록하지 않으셨는지 물어보니
직계 가족도 아니었고 자녀는 시어머님 하나 다보니
유족으로 등록하고 절차 밟는 게 엄청 복잡했었다네요.
그렇게 등록을 포기하고 제사를 지낸 집이 많았다 하니
실제 제주 4.3 사건 희생자는 엄청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남는 것이 박정희 대통령 사망이라고 하네요.
그땐 제 신랑이 갓난 아이였다는데 아침 일찍 식사를 준비하려고
라디오를 켰는데 첫마디가 박대통령이 저격당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대요.
평소 박 대통령을 존경한건 아니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디 아프다는 소문도 없이
하루 아침에 죽었다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몸을 덜덜 떨면서 지금은 작고하신 시아버님을 깨우며
빨리 라디오 들어보라고 소리쳤다고 하시네요.
그때 얼마나 무섭고 떨리던지 지금도 생각하면 몸이 떨린다고 하셨어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르신들도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이나 정치적인 지지가 아닌
하루 아침에 엄마와 아빠를 총격으로 잃은 가여운 장녀라는 인식도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흠..
암튼 글이나 자료로만 봤던 근현대사를
직접 피부로 경험한 분에게 직접 들으니 기분이 참 묘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