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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 폐인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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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레이튼교수
추천 : 0
조회수 : 26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08/12 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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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년소녀들의 책 게시판!
아쿠아리움 스케일의 책 게시판을 오징어처럼 유유히 다녀보자!



19금입니다. 베드씬 같은 게 나오진 않지만 19금적 용어가 들어가기 때문에...
심히 모두가 불쾌하다고 느낄만한 욕설, 성적문구, 비하문구가 있으면 탈락.
이 정도는 아닙니다.

이 글은 등신 같이 웃긴 글이 아닌 등신 같은 글을 표방합니다.

등신백일장이란 이름에 맞추어 등신을 하나 창조해보았습니다. 막 웃긴 병맛은 아니지만, 진지한 병맛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가독성을 위해 문단마다 간격을 넓혔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thㅔ요!
 


폐인의 굴레



 나이는 스물하나. 남성. 재학 중인 대학교 근처에서 혼자 자취 중.

 스물한살의 대학생이지만 미래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지금 청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온 과거에 대해선 더더욱 그렇다.

 자취하는 집에 친구를 초대한 적은 없다. 고등학굣적 친구들은 이미 다른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지금 다니는 학교에선 딱히 친구가 없다. 흔히 말하는 아싸가 바로 나다. '아싸'라는 말이 주는 부정적 뉘앙스와는 달리 나는 내가 아싸라는 점에 비참한 느낌이 든 적은 없다. 혼자만의 일상을 즐길 수 있으니까. 오히려 여러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삶은 나름대로 피곤할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불통은 아니지만 소통엔 그다지 관심이 있진 않으니.

 집에서는 컴퓨터나 TV에만 시선을 꽂는다. 시간이 아까우니 식사는 최소한으로. 식사를 최소한으로 하니 그에 맞춰 식욕도 최소한이 돼버렸다. 개이득. TV는 즐겨보는 애니메이션이나 공중파 예능이 방송할 때가 아니면 굳이 틀진 않는다. 외의 시간엔 이렇게 컴퓨터를 붙잡는다. 몇 주 넘게 꾸준히 하는 게임이 있긴 하지만 게임만 하진 않는다. 오늘의유머나 웃긴대학 등의 유머 사이트에도 들락거리고, 웹서핑도 하고, 이렇게 무의미한 글을 쓸 때도 있다.

 자조 섞인 말로 이런 나를 스스로 폐인이라 비하─비하라는 표현이 적절한진 모르겠다. '낮춰부른다'라는 표현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할 때가 많지만, 그건 전부 진심이고, 나는 내가 폐인이라는 사실에 아무 생각이 없다. 폐인이 정확히 뭔지도 모를 뿐더러, 관심도 없고, 무엇보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키는 170에 미치지 못하는 169, 꾀죄죄하다고 할만한 키는 아니지만 꾀죄죄하게 다니기 때문에 꾀죄죄하다.

 못난 외모는 아니나 잘난 외모는 더더욱 아니며, 21년 인생 여자친구 한번 사귀어본 적도 없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자사람친구조차 한 명도 없다. 이걸 변명으로 받아들일지는 그쪽 자유이나, 일단 나는 연애에 관심이 없다. 여자엔 관심이 있으나, 사귀는 데에, 면대면으로 만나는 데에, 적어도 면대면이 아니더라도 커뮤니케이션하는 데에, 요컨대 연애를 비롯해 여자와 어떤 식으로든 접촉하는 데에 별 관심이 없다. 여자들만의 언어는 암컷도 암것도 모르는 나로서는, 모솔이라 뭔솔이란 건지 모르겠기도 하기 때문.

 고로 섹스는 당연히 해본 적도 없다. 창녀촌에서 첫경험을 치룬 친구들이 주위에 몇 있지만 난 그런 데에 별 관심 없다. 귀찮기도 하고. 그저 난 적어도 이틀에 적어도 두 번은 하는 자위에 만족한다. 하루종일 컴퓨터만 붙잡고 앉아있으니 즐겨찾기해 놓은 야동사이트만 해도 여럿. 엄선 또 엄선해서 스크랩해둔 야동만 해도 수십개는 될 것이다. 수백개가 될 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이는 왜곡된 성 가치관일 수도 있다. 날 등신이라고 욕할 수 있다. 나도 나를 등신이라 생각하는 판국에. 물론 바깥에서 정상인, 아니 정확히 말해서─정상인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기준에 맞게끔 행동하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나를 향한 좋지 못한 시선이 내 뇌리에 박힐 것이다. 나는 내 혼자만의 고독한 일상에 고통을 첨가하고 싶진 않다. 꼴에 문학적으로 보이려나 생각하면서 이런 표현을 쓴다.

 문학… 책은 그렇게 자주 읽진 않는다.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하다가 지칠 때 즈음 정신차리고 책 읽어야지 할 때 많이 읽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적당히 읽고 끝낸다. 최근에 읽은─사실 다 읽진 못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를 비롯해 지금껏 그래왔다. 생각해보면 보통 책을 그만 읽는 시점은 우리 과 단체톡방에 누군가 무언가 말할 때이다. 친구 없는 아싸인 내가 말을 꺼낸 적은 맨 처음 입학식 전 인사했을 때 이후론 한번도 없기 때문에 누군가 화두를 던져도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하진 않지만, 녀석들의 대화를 읽는 것은 흥미롭다. 처음엔 흥미롭기보다는 이 무료한 일상에 눈에 띄는 것이라 읽는 것이 틀림없었지만, 카카오톡에서나, 현실에서나 녀석들의 대화를 엿보고 엿들으며 개개인의 성격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녀석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점차 일상이 됨과 동시에 녀석들의 대화를 흥미롭다고 느끼게 되었다. 에어컨 하나 없는 집 안에서.

 물론 선풍기는 있다. 그러나 잘 틀진 않는다. 에어컨이 없는 집, 시원함을 찾아 도서관에 가긴 귀찮고, 집 안에만 있자니 덥고. 이러한 일상 속에서 내 몸은 더위를 타지 않도록 변화돼왔다. 어차피 집엔 아무도 없으니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있으면 된다. 그마저도 자위할 때엔 걸리적거려 벗는다. 겨울엔 껴입으면 되고. 뜨뜻한 본체를 안고 있어도 된다. 누가 보면 "어이구, 등신이네!"할 법 하다. 신경쓰진 않는다.



 사실 이런 생활은 슬슬 지겹다. 아까 말했듯 이런 일상은 무료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나도 짝이 없고. 그러나 나는 일상에 큰 변화를 바라진 않는다. 작은 변화만이라도 날 조금은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변화하면 될 지 모르겠다. 이미 고착화된 '나'이기에. 또 안다고 하더라도, 오른손과 눈동자 외엔 움직이기 귀찮은, 의지 없는 내가 연기천재마냥 의지 있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변화를 바라는 듯 말하면서 부정적인 말을 뱉어내는 나는 사실 변화를 바라진 않는 게 아닐까. 사실 나도 날 잘 모르겠다. 행동하기 귀찮은 나에 대해 사고하기는 귀찮다. 결국 나는 이렇게 지루한 일상에 젖어들어 더욱 고루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심하지도 않은 채, 루한 일상을 집하여 리타분해져버린 나.

 앞으로도 스스로 스스로에게 씌울 이 폐인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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