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어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모습이다.
태열이 올라서 기괴한 피부와 양수 속에서 불어버린 살들의 향연.
좌절했다.
2. 며칠 지나니 태열이 좀 가라않고 그나마 좀 괜찮아 졌다.
아직까지는 못생겼다. 나는 나름대로 준수하다고 생각했는데...
애기 엄마를 원망하다가 등짝 스매씽을 맞았다.
3. 피부가 조금 뽀얘진 느낌이다. 다행이다.
나는 피부가 시커먼 편이고 애기 엄마는 하얗다.
애기 엄마를 칭찬하다가 다시 등짝 스매씽을 맞았다.
4. 맙소사. 애기가 눈을 떳다. 인상을 쓴다.
인상을 보아하니 험난한 아이의 미래가 그려졌다.
애기 엄마를 원망했다. 등짝 스매씽은 맞지않았다. 아이와 나를 비교중이었다.
5.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가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태어난지 열흘 남짓, 그동안의 걱정을 무산시키고 드디어 우리 아가도 귀여워지기 시작했다.
난 아무 이유없이 등짝 스매씽을 맞았다. (왜???)
6. 약 20여일이 지났다. 산후조리원을 탈출해서 집에 왔다.
아이는 아직 초점이 잘 안잡히는 모양이다. 표정도 엽기적이다.
천지분간도 못하고 맘마달라고 울어댄다.
7. 드디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사람도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참 킬미힐미가 방송할 때였다.
"이 얼굴을 하고 이 눈빛을 한 저는 김율입니다."
애기 엄마가 웃어줬다.
8. 태어난지 50여일.
지옥이 시작되었다.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애기엄마는 10킬로가 빠졌지만 전성기 때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했다가, 등짝 스매씽을 맞았다.
9. 55일 남짓.
애기가 브이를 했다. 꼭 담배피는 모습 같아서
담배를 끊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금연에 성공하진 못했다.
나는 한심한 아빠인가보다.
10. 태어난지 90여일이 되었다.
익살스런 표정도 지을 줄 알게 되었다.
놀아주면 웃기도 한다.
아빠라고 말했다. 아내가 콧방귀를 낀다.
11. 안아주다가 눕혔는데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애기가 버릇이 들면 어쩌지. 다시 내려줘야하나.
내려줬는데 또 이 표정을 짓는다.
몇번 반복하다가 아내에게 등짝 스매씽을 맞았다.
12. 105일째 되는 날, 사촌 동생이 놀러왔다.
명작을 한장 남겨주고 떠났다.
며느리를 얻게 될때, 손에 꼭 쥐어주고싶은 사진이다.
13. 115일째. 외출을 했다. 머리에 겉싸개를 씌워주었더니
아랍 왕자같은 느낌이다.
아랍 왕이 아니라서 미안했다.
14. 이제 제법 사람같은 모습이다.
아직까진 옆으로 누우면 볼살이 무거워 한쪽으로 쳐지긴 하지만
엄마를 닮아서 쌍꺼풀도 없고 피부가 뽀얗다.
다행인 것 같다.
15.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100일 사진을 찍었다.
세미누드다. 이쁘게 잘 나온 것 같아서 사진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자기만한 곰 두마리랑도 잘 어울린다.
16. 150여일. 이제는 의자에 앉아서 이유식도 먹는다.
아직까지 제 몸을 잘 가누진 못하지만 나름 애쓰고 있다.
볼살이 터질 것 같다.
이 사진도 길이길이 간직해서 며느리 손에 쥐어주고 싶다.
17. 155여일. 처가댁에 놀러갔다.
양모자를 해주었더니 신나보인다.
나도 아내에게 양모자를 해달라고 했다가 등짝 스매씽을 맞았다.
18. 162일째. 아들이랑 자는 모습을 아내가 찍어주었다.
피부색이 너무 다르다. 다문화 가정
광고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피부색이 달라도 우리는 가족입니다."
19. 치즈를 먹였더니 알레르기 처럼 눈과 입주위가 빨갛게 올라온다.
나는 새우 알레르기가 있다. 아들은 알레르기가 없어야할텐데. 걱정된다.
아내는 괜찮다고 말했다. 크면 괜찮아진다고.
20. 178일째. 이제는 조금씩 기어다닐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얼굴도 태가 잡혀가는 것 같다. 우리 아들이라 그런지 잘생긴것 같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를 20살에 엄마를 만나서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아들은 되도록 많은 연애를 해봤으면 좋겠다.
이 말을 했다가 등짝 스매씽을 맞았다.
아프지 않았지만 아픈 척 했다.
등짝 스매씽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지만 계속 아픈 척 했다.
사랑한다. 정미야. 사랑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