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에 사랑하던 남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 한 문장 써놓고 가슴이 미어져서 수십분 동안 모니터만 쳐다봤네요.
6년도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더 아파요...
진짜 세상에서 누구보다 이쁘게 웃고
누구보다 마음 착하고 성실하고
재능 넘치고 듬직했던 내 남자였는데...
갑작스런 사고라서 임종 순간에도 옆에 못 있었어요.
급하게 갔는데도 시신이 되어 실려나오는 모습만 봤어요.
그마저도 가려져 있고 바로 못 보게 해서
그냥 덮여있던 그 모습이 뇌리에 꽝꽝 박혔어요.
정말 돌아버릴 거 같았습니다.
실제로도 돌아버렸던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 가고 얼마 안 되어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내가 살아있다는 죄책감이 너무 커서
뉴스에 사건 사고 뉴스만 떠도
누가 죽었다는 소식만 들려도
내가 살아있어서 또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리고 장례식 치르고, 화장해서 좋아하던 바닷가에 뿌려준 뒤에도
그 사람이 죽고 없다는 걸 인정 못하고
맨날 그 사람에게 말 걸면서 살았거든요.
살아생전에 내 곁에 있어주던 것처럼
그 사람이 내 오른쪽에 서서 내 왼쪽 어깨 손 올리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주절거리는게 다 들리고 느껴지고 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반년 걸렸습니다.
옆에서 그 사람이 자꾸 내가 정신 차리고 안 살아주면 자기가 너무 슬프다고 해서
진짜 이 악물고 살았어요.
근데 그리고 한 반년 버텼나?
무너지게 되더라고요.
신경쇠약에 우울에...
직장 그만두고 한달 만에 십키로가 빠졌습니다.
술만 술만 퍼마시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면서
그 와중에도 그 사람은 옆에서 계속 날 안고 위로하는데
분명 그 사람이 옆에 있는 거 같은데 사실은 없는 거라니 믿을 수가 없고
너무....
고향으로 내려가서 가족들 도움 받으며 한 2년 요양하고 지냈어요.
그 와중에도 계속 그 사람이랑 이야기 하면서...
그 사람 가고 그렇게 총 3년을...
매일 혼자 중얼거리면서...
그 사람이랑 조금이라도 관련된 정보는 다 검색하면서
(그 사람이 좋아했던 뮤지션 소식 같은 것도 매일 검색해서 읽어주고 그랬어요...)
(그 사람 고향 소식 같은 것도 맨날 찾아보고...)
그 사람이랑 찍은 사진 백번 보고...
모니터에 사진 띄워놓고 키스해주고...
정말 영혼을 불러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생각해서 무당도 알아보고 하다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내 남자 죽었다고, 다시 불러와달라고 하기는 또 죽기보다 싫더라고요.
정말 죽을 때까지 죽어라 잊지 않겠다며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내가 안 잊는다며
그 사람이 원했던 것까지 죄다 내가 이뤄주겠다며
바득바득 이를 갈다가
미친년처럼 울다가
맨날 오른쪽에 그 사람이 서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서
나중에는 몸 균형까지 무너져서 오른쪽 반신이 굳기까지 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찢겨지듯 떠나버린다는 건 정말...
수만번이나 과거를 되새겼습니다.
그 사람과 있었던 그 많은 순간들 속에서
단 하나라도 뭔가 하나라도 다르게 했다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현실을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평행우주 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모든 경우의 수가 다 다른 우주로 존재한다는 건데요...
이게 진짜 맞는 과학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전 이거로 진짜 엄청 구원받았었어요.
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고
나랑 결혼해서 애도 낳고 투닥거리면서 사는 우주부터
나랑 만나지 못했더라도 건강하고 신나게 자기 꿈 이루면서 사는 우주까지...
가능한한 모든 경우를 다 상상하면서
전부 다 가능하고 전부 다 이미 있는 우주의 일이라면서
나는 그 우주로 갈 수 없지만
자기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있는 우주가
무한의 수만큼 있다고 위안 삼다가
또 왜 하필 나는 네가 죽고 없는 우주에 있니
죽으면 나도 다른 우주로 갈 수 있나
이런 생각 골백번 했어요.
2년간 요양한 후에 건강 좀 회복해서는 서울로 돌아와서 직장에도 복귀하고 커리어도 만들어가면서...
열심히 재미난 것도 보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것도 사고 하며 살았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해요.
그 어떤 수단을 써도 좋으니
내가 그 사람이랑 못 죽어주고
이 세상에 살아남은 이상
그 사람이 못 본 이 세상 다 즐겨주겠다는 마음으로......
남들이 좋다면 해보고 사보고 써보고...
억지로라도 물욕, 식욕 가져보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보고...
그러면서 조금씩 다시 세상에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혹시라도 속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지 않았으면 해요.
그 사람 가고 제 세상은 저랑 그 사람 단 둘의 세계로 좁아져 있었어요.
그걸 어거지로라도 밖으로 조금씩 열어갔는데...
세상에 마음을 열어간다고 그 사람을 향한 제 마음이 퇴색되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게 제일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안 그래요.
그럴 수가 없어요.
사랑하는 마음은 그렇게 없어지지 않아요.
물론 그 사람만 생각하면서 집착하는 시간의 물리적인 양은 줄어듭니다.
하지만 조금씩 줄여나가야 내가 살아갈 수 있어요.
그럴수록 제 옆에서 그 사람도 기뻐해주고...
가족이랑 친구들이 걱정하니까 점점 겉으로는 제 아픔을 표현하지 못하게 되는데
저 혼자 몰래 저만 아는 기념을 하고 그랬어요.
이를테면 제가 일 때문에 영어로 된 이름을 쓰는데요...
그 이름의 철자 안에 그 사람에 대한 의미가 있어요.
그 사람 간지 6년하고도 조금 더 지났는데
(아직도 단 하루의 오차도 없이 며칠 지났는지 계산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영혼이 찢기는 고통은 없이,
내가 살아서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아했던 세상을 아직 내가 살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그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이 내가 있어 조금이라도 살기 수월해지도록 노력하면서,
매일 한번이라도 스스로 즐겁다고 느낄 수 있는 점을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그 사람의 여자가 나라고, 우리가 서로 사랑했고 아직 우리 사랑은 안 죽었다고 떳떳할 수 있는
(물론 속으로만...주변에서 걱정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드디어 다른 남자에게도 마음을 열었어요.
이젠 죄책감에 시달리진 않아요.
물론 내 옆에 있는게 그 사람이 아니라는걸 떠올리면 힘들지만
지금 제 곁에 있어주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진심을 준다고 그 사람에게 줬던 마음이 사라지는 건 역시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죽어라 힘들고 차라리 죽었으면 할 정도로 슬프고 아프지만...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내 사람을 잃은 아픔이 용암처럼 마음 속을 흐르고 흘러 모든 걸 녹이고 불태우겠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내 사람에 대한 마음이
맑게 빛나는 내 마음의 보석이 되어 자랑스럽게 품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날이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그러니까 세월호 유가족 여러분 다들 버텨주세요.
지금의 슬픔에 지지 마세요...
당신이 버티고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당신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세월호 뉴스에 너무 안타까워서 제 경험을 나누어봅니다.
세월호 게시판은 익명이 안 되는 거 같아서 고민게시판에 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