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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늘도 악몽을 꾸었다. 나는 이미 한 시간이 넘도록 그녀의 작은 어깨를 감싸주었지만, 그녀의 떨림은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 나는 더욱더 깊게 그녀를 끌어안는다. 그녀는 내 품안에서, 겁에 질린 새처럼 한참을 끽끽거리며 울다가, 마침내 잠이 들었다. 그녀가 얼마나 울었던지, 그녀의 고운 머리카락과 내 팔의 언저리는 따뜻하게 젖어있었다.
심장이 칼에 베인 듯이 쓰라려왔다. 그녀의 눈물은 언제나 내 가슴속에서 선혈이 되어 뚝뚝 흘러내린다. 나는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주었다. 곧, 그녀의 곱고도 고른 숨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만 같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자, 안쓰러움과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꿈속에서 괴로워하는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은, 언제나 이렇게 초라한 자괴감으로 나를 괴롭혔다. 지난밤을 떨어내기라도 한 듯, 그녀는 맑은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자, 오늘의 메뉴는 못난이 토스트입니다~"
그녀는 뽀얀 우유와 바쁘게 만들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조금은 못생긴 토스트를 내 앞에 놓아주었다.
"일찍 일어났으면 좀 깨워주지 그랬어. 오늘은 정말 맛있는 아침밥을 해주려고 했었는데..."
그녀가 내 앞에 앉으며, 입가를 한쪽으로 쌜쭉거리며 말했다. 나는 손을 뻗어 우유를 마셨다. 우유를 마셔도 여전히 입안이 까칠했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그녀의 토스트를 한 입 베어 먹었다.
"맛있다."
"그러엄~ 누가 만든 건데~~"
여전히 맑은 얼굴로 살짝 장난 어린 미소를 짓는 그녀의 얼굴을 본다. 어젯밤에 신음소리를 내며, 악몽을 시달렸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슬픈 눈으로 웃고 있는 그녀... 분명히 저 미소는 나를 위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녀는 바보이다. 나를 위한다는 이유로, 힘겨움을 감춘 그 미소가 얼마나 내 가슴을 할퀴어 놓는지도 모르는, 그녀는 정말 바보이다.
눈물이 목구멍에서 빵 조각과 함께 엉키어있는가... 나는 힘겹게 그것들을 꾸욱 삼키어낸다. 내 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그녀가 미소를 지우고 물끄러미 나를 본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한다.
그녀의 눈동자가 나에게 '괜찮아...'하며 속삭이는 듯 했다.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그녀를 느끼자, 슬픔이 더욱 깊게 일렁거렸다. 마침내, 나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사랑해..."
힘겹게 말을 내어놓긴 했지만, 목은 벌써 잠겨있었다. 그녀가 다시 미소를 머금는다.
"알고 있답니다~ 얼른 그거나 드시옵소서, 이러다 정말 늦겠다."
조금 부끄러워진 나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며, 우유를 마셨다. 곧, 침울한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우리 자기, 어제 또 못 잤구나."
밤과 새벽을 까맣게 세운 탓인지, 눈자위가 충혈 되어 있었나보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미안해..."
그녀가 내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이잖아..."
갑자기 그녀가 울먹거렸고, 그녀가 내 윗입술 위에 묻어있는 우유를 닦아주는 동시에, 눈물이 그녀의 뺨 위로 흘려 내렸다.
그녀 앞에서 울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로, 나는 정말로 단 한번도 그녀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았었다. 밤과 새벽과 아침을 꿋꿋하게 참아낸 눈물이 드디어 터져 나왔다.
나는 오늘도 무리하게 양파를 썬다. 이런 일은 보조를 시켜도 되지만, 이렇게 울음이 터지는 날에는 직접 양파를 썰곤 했다. 매운 양파 때문인지, 아님 다른 무엇 때문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렇게라도 실컷 울고 나면,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시계바늘이 열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눈물자국을 없애기 위해, 나는 싱크대에서 얼굴을 여러 번 헹군다. 점심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겠다.
이곳은 내가 일하는 음식점의 주방이다. 중학교 때부터 필드하키를 시작한 나는 고등학교 때에도 선수로 활약을 했었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서의 쓰라린 몸부림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깊은 슬럼프에 빠져서, 학교를 중퇴했었다. 평범한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라도 해볼까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선수라는 감투로 수업조차 제대로 참여한 적이 없었던 나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운동뿐이었던 나에게, 공부에 자신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어쨌든, 달리 할게 없었던 나는, 그 당시에 한참 재미를 붙였던 바이크라도 실컷 타보려고 이곳으로 왔었다.
배달원으로 시작한 이곳에서, 손님들에게 음식을 만들어내는 이 자리에 오기까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여자이다. 남들이 볼 때, (거친 운동 탓이었는지?) 외모로는 남자라고 확신을 하겠지만, 굳이 성별을 따진다면 나는 분명히 여자이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나에게 성(性)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와 내가 동성(同性)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녀가 그녀인 것처럼, 나는 나였고, 우리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같은 사람일 뿐 인 것이다.
나는 내 삶에 감사한다. 아마도 그녀가 곁에 없었더라면, 지금의 행복하고 여유 있는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리라...
행복했던 사람들도 많겠지만, 불행했던 사람들 또한 많을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둡고 침울했다. 그녀는 유복녀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녀가 무럭무럭 자라나자, 애비 없는 자식으로 불려지길 두려워했던 그녀의 어머니는 재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그녀에게도 그녀의 어머니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두 모녀에게 커다란 멍만 남겨놓았다.
그녀에게 직접 손을 댄 적은 없었지만, 의붓아버지란 작자는 그녀의 어머니에겐 지옥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휘어 잡힌 채로, 질질 끌려나오며 구둣발에 밟히는 어머니를 자주 보아야했다. 다행히도 그 남자는 두 모녀와 얼마 살지 못하고, 고맙게도 자신의 죽음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그녀에게 여전히 끈적거릴 뿐이었다. 그 남자의 동생이라는 작자가 툭하면 두 모녀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조그마한 식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녀의 어머니에게 '남편을 둘이나 잡아먹은 년’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행패를 부리며, 손님들을 내쫓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의 어머니가 힘겹게 번 돈을 돌아가신 형님 대신이라며, 손쉽게 강탈해갔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게가 나가면 좋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겁에 질려 있는 그녀를 달래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이른 아침, 그녀의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새벽 장을 보러나갔고, 그녀는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십분 동안 정성스럽게 다린 교복 블라우스를 입으려는 찰나에, 방문이 덜컥 열렸다. 빌어먹을 그놈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그의 방문에 놀라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에게 그가 다가왔다.
그때, 그녀는 겨우 열 네 살이었다고 한다. 그 놈은 너무도 간단하고 허무하게, 추악한 욕정으로 그녀의 순수를 찰나에 타락시켰다.
소녀에서 추방되어진 그녀는, 몸도 추스르지 못한 채, 그녀의 어머니의 품에서 숨을 죽인체로 천장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를 대신해서 울어줄 수 있는 것과 서둘러 그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행은 쉼 없이 그녀를 붙잡았다. 그녀의 어머니마저 그녀를 홀로 남겨두고, 그녀가 갈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는 거대한 암세포에 끌려가며, 투병 한번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죽기 전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그녀의 어머니가 간절하게 부탁해둔 어느 교회에서 그녀는 지리멸렬한 삶을 이어나갔다. 마음 좋은 그 곳의 목사와 그의 가족으로 인하여 얼마동안은 그녀에게도 행복이 찾아왔었다고 한다. 아들만 둘을 둔 목사부부는 그녀를 딸처럼 예뻐했으며, 그녀에게 그녀만의 방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학교에 있을 때와 잠잘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다. 당연하게도 그녀는 깊은 신앙 가지게 되었으며, 사람들과 찬송을 불렀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회는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녀만의 천국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피아노도 마음껏 칠 수 있었으며, 한창 사춘기인 그녀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었다.
깊은 밤이 오면, 그녀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기도할 때만이, 그녀는 끔찍한 기억과 아픔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교회여서, 평일의 예배당은 한산했다. 평일 날의 교회 열쇠는 그녀가 관리한다는 사실은 그곳의 교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목사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언제나처럼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문을 열어두고, 불도 켜지 않은 채로, 언제나 앉는 자리로 가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를 마친 그녀가 눈을 뜨자, 창 밖으로 달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유난히 달을 좋아했다. 그녀는 달을 보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을 종종 속삭이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하고 눈을 마주치며 놀던 그녀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문이 닫히고 잠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달은 어느새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그들이 누군인지 그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한 명은 그녀보다 한 살 어린 목사의 아들이었다. 다른 두 명은, 목사의 집에서, 몇 번쯤은 마주쳤던 그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계획을 세우고 작전이라도 한 듯, 한 명은 망을 보고, 한 명은 그녀의 입과 팔을 누르고, 한 명은 그녀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지옥을 오가며, 세 명의 남자들에게 계속해서 유린당했다. 그들이 도망치듯 돌아간 후, 간신히 눈을 뜬 그녀의 동공으로 예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십자가에 매달린,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리스도를 노려보면서, 다시는 당신 따위를 믿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걸어서 지친 다리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지경까지 왔을 때, 마지막 힘을 다해 차도로 걸어 나왔다.
두 눈을 꼬옥 감은 채로...
그 길이 마지막 발걸음이길 바라면서...
그 날 그녀는 내 바이크 앞으로 달려들었고,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다.
오늘도 그녀는 악몽을 꾸었다. 나는 그녀를 안은 채로, 숨죽여 울었다. 이렇게 고운 너를, 이렇게 소중한 너를, 감히 이따위로 망가뜨려 놓다니...
나는 더 이상, 이렇게 그녀를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아픔을 치유해줄 것이다. 끔찍한 악몽으로부터 그녀를 떼어낼 것이다.
사실, 그들을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그녀 몰래 훔쳐본, 그녀의 은밀한 다이어리에 그들의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나는 흥신소와 인터넷을 최대한 이용해서, 그들을 찾아내었다. 일주일 전 주문했던 캠코더도 오늘에서야 도착했다.
나는 천천히, 차분하게 그들의 최종주소지를 머릿속에 외워두었다. 그들의 주소가 적힌 메모지와 캠코더를 번갈아보며, 나는 서늘한 흥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내가 비번인 날이다. 나는 그녀에게 어느 요리강습소에서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이곳으로 왔었다.
그는 그저 늙어버린 한 마리의 초라한 흑염소를 연상케 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목공소에서 그는 쓸쓸하게 목재 따위를 썰어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그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행으로 생각하며, 늦은 아침에 그곳에 도착한 나는 책장 하나를 주문했었다.
낮 동안 근처를 배회하며 그를 주시한 후, 깊은 밤이 되어서야 나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는 의자 위에서 머리를 사선방향으로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짙은 알콜 냄새가 그의 품을 맴돌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벨트를 풀어서, 빠르게 그의 두 팔을 의자에 붙인 후 결박시켰다. 그제야, 잠이 아직 달아가지 않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그는 내가 아침에 책장을 주문한 사람이라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에게 형사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수년 전에 그가 남겼던 그녀의 상처를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회상이라도 하듯 담담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더니, 마침내 개의치 않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을 텐데...”
나는 그에게 코웃음을 흘려주었다. 나는 한동안 그를 응시한 후, 그녀의 남편이라고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그제야, 그의 눈동자에 동요가 일어났다.
나는 그의 입에 더러운 걸레를 쑤셔 넣은 후에, 테이프로 그 위를 단단하게 둘렀다. 불을 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 속에 숨겨진 모든 윤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의자 위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나는 그의 바지를 벗긴 후에, 그의 두 다리를 모아서 그 바지로 두르고 매듭을 지었다. 노끈을 차마 준비하지 못했었고, 아무래도 테이프는 쉽게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가 발길질을 하는 통에 힘이 좀 들긴 했지만, 의자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의 두 팔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채로, 의자의 양옆에 둘러져 있었다. 이 자세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잠깐 생각했다.
나는 그의 톱을 집고, 그를 노려보았다. 어둠 속이었지만, 그의 눈동자에 그렁거리는 눈물이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톱날을 저쪽으로 던졌다. 그는 그에게 향하지 않은 톱을 바라보며, 두꺼운 뱃가죽이 깊게 출렁거릴 정도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장난스런 기분에 나는 그에게 씽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나는 그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는 긴장이 풀렸는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뒷주머니에서 칼집에 싸여진 타이거를 꺼냈다. 이 나이프는 손잡이에 엄지손가락이 들어가도록 고리가 달렸기 때문에 손에서 이탈우려가 없어서, 초보자도 웬만큼 다룰 수 있었다. 직업상 식칼밖에 사용해 보지 않았지만, 이 나이프를 만지는 순간, 왠지 익숙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칼집에서 그것을 꺼내고, 칼날을 세운다.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칼날이 잠깐 반짝거렸다. 그를 다시 내려다보자, 그의 동공에 두려움이 잔뜩 서려있었다. 그의 얼굴 위로 나이프를 들이대자, 의자와 함께 그의 몸이 요동을 쳤다.
나는 되도록 정확히 조준을 해서, 나이프를 그의 왼팔에 내리꽂았다.
"이 팔을 뻗어 그녀를 더듬었나?"
그리고, 그 나이프를 빼서, 다시 오른 팔에, 다시 왼쪽 다리에, 다시 오른 쪽 다리에 꽂고 빼기를 반복했다.
"이 다리로 그녀를 눌렀겠지?"
시간이 갈수록, 그의 호흡처럼 내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그의 마지막으로 남은 그곳으로 칼끝이 향하는 순간,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차마 그녀의 살을 파고든 그놈의 그것만은 내려칠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 방향을 바꿔서, 나이프의 끝을 그 놈의 심장을 향하게 한 후, 힘차게 내려쳤다.
나는 서둘러 나가서, 차안에 있는 골프채를 가지고 다시 들어왔다. 골프는 해본 적이 없지만, 하키에 대한 기술은 녹이 슬지 않았을 것이다. 하키의 스틱은 목재로 되어있기 때문에, 나는 스틱보다 훨씬 단단한 골프채를 하나 준비했었다. 드라이버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샤트프의 재질은 스틸로 되어있었고, 이것은 당연히 금속으로 쇠를 단련시켜서 제조한 것이다. 스틸이기 때문에 휘어지거나 부러질 걱정은 전혀 없을 것이다.
나는 손목기술을 사용하여, 그의 얼굴에 포인트를 맞춘 후, 정확하게 슈팅을 날렸다. 살점이든 피가 튀든,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놈의 얼굴이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골프채를 팽개친다.
불을 켜고 그를 내려보았다. 나는 캠코더의 앵글을 그의 얼굴에 고정시키고, 그에게 연출을 지시했다.
“더더, 고통스러워 하라구!”
하지만, 그는 몇 번인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두 눈을 부릅뜬채로 가만히 멈추었다. 피에 일그러진 그의 동공은 이미 풀려 있었다.
남은 세 놈들은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이 젊다는 이유로 내 힘이 딸릴 것 같은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한꺼번에 끝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얼마 전 나는, 흥신소에서 얻어낸 그들의 정보를 이용해서 학교사이트에서 그들의 메일 주소를 알아낸 후, 메일을 보냈었다. 물론, 메일의 내용은, 메일을 확인한 그들이 오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씌여졌다. 그들의 안전한 죽음을 위해, 은밀한 장소와 자연스러운 유인은 필수였다.
장소는 지방 소도시의 한적한 개척교회였다. 장소를 그 곳으로 택한 이유는, 기가 막히게도 목사의 아들이 그 교회의 전도사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머지 두 놈들 또한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제법 그럴듯하게 살고 있었다.
PEPPER SPRAY의 성능은 가스총의 세배라고 한다. 만약을 위해 호신용으로 구입하긴 했지만, 이렇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니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적한 곳의 교회인 만큼 밖에서 차가 세워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겁게 친 커튼을 살짝 들어서 밖을 보니, 그들이 분명했다. 나는 문 앞에서 그들을 맞이한 후,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으며, 곧이어 가스에 질식되어 갔다. 나는 방진마스크와 물안경과 흡사한 고글을 벗지 않은 채로, 문을 굳게 잠궜다. 그 후에 한쪽에 놓아둔 골프채를 집어서,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그들을 골프채로 사정없이 내려쳤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들의 얼굴 위로 한 번 더 스프레이를 흠뻑 뿌려주었다.
힘이 점점 빠지고, 땀이 온몸을 흠뻑 적셨지만, 이를 악물고 힘겹게 그들을 차례차례 끌어올렸다. 그들이 올려진 곳은 예배당의 단상 위였다.
나는 준비해 온 노끈으로 그들의 양손과 양발을 묶었다. 다시 여섯 개의 팔을 한꺼번에 묶고, 여섯 개의 다리 또한 한꺼번에 묶었다. 그들의 입 속에 더러운 헝겊 쪼가리를 넣은 후, 입 주위를 테이프로 덮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그들 주위를 돌며, 캠코더 안으로 그들을 담았다. 조금씩 의식을 차린 듯이, 캠코더에서 그들이 움직임이 보였다. 나는 캠코더를 내려놓았다. 그 다음은 목공소에서 한 것과 다르지 않게, 나는 바지의 뒤주머니에서 꺼낸 나이프의 날을 올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커텐을 활짝 쳤다. 달빛이 눈에 부셨다. 그 바람에 괜히 놀라서 시선을 밑으로 돌리자, 그들의 더러운 피가 단상아래까지 뚝뚝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몸뚱이를 끌어서, 위치를 조금 옮겨주었다. 벽에 걸린 그리스도가 편안하게 그들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어제로 계획했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늦은 오후였지만, 며칠 밤을 세다시피 잠을 이루지 못해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다. 가게가 문 닫을 시간은 두어 시간도 남지 않았다.
내일은 그녀의 생일이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한 이벤트를 계획해본다. 흔하긴 하지만, 꽃과 케잌은 필수일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환하게 웃어줄 것이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상상하자, 갑자기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선물을 어떻게 전해 주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갑자기 망설여진다. 내 입으로 말해주는 게 나을 것 같았지만, 원래 계획했던 데로 캠코더를 보여주기로 한다.
약한 그녀가 많이 놀라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긴 하지만, 그녀가 그들의 끔찍한 모습이 담긴 내 선물로 인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랄 뿐이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토악질을 하며 꾸역꾸역 그들의 심장을 챙겨왔었다. 그래야만 그들의 완전한 죽음을 단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이제는 그것들을 처리해야겠다.
나는 그들의 심장 네 개를 냉동실 구석에서 꺼냈다. 검은 봉지에 싸여진 그것들은 누구라도 건든 흔적은 없는 듯했다. 나는 물을 끓여서 뜨겁게 만든 후에, 봉지 채로 그것들을 담근 후,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자, 나는 문을 굳게 잠그고, 가게 사람들의 퇴근을 확인했다. 막상 그들의 심장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잠시 그것들을 노려보았다.
처음엔 믹서기에 갈아버릴까 생각했지만,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나는 살짝 익혀진 심장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다지기 시작했다. 손이 꽤 저릴 정도로 다지기를 끝내고나니, 양이 꽤 많았다. 나는 그것들을 다시 비닐봉지에 담았다. 나는 허름한 건물들의 지하와 하수구를 찾아서, 조금씩, 여러 곳의 구석과 구멍 속에 그것들을 버렸다. 집으로 오면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쥐들이 과연 먹어줄까?’
그녀의 흐느낌 소리와 무언가가 둔탁하게 부수어지는 소리가 엉키어 들렸다. 며칠동안 쌓인 피로로 인해, 떠지지 않으려는 눈꺼풀을 힘겹게 올렸다.
그녀가 쪼그리고 앉아서 어깨를 흔들거리며, 망치로 무언가를 내려치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가 동작을 멈추고, 나를 노려보았다. 어제와 확연히 다르게 그녀의 초췌해진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가 부수어 버린 캠코더와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가 무서운 표정으로 벌떡 일어섰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인 듯 싶었다.
“이게 선물이야? 이게 너가 주려던 선물이야?”
그녀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울음을 참으며, 떨리는 목으로 소리를 질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던지, 그녀의 아랫입술은 금세 피로 물들고 있었다. 그녀가 주먹 쥔 손으로 나를 쳤다.
“왜 그랬어... 왜왜왜왜왜!”
나는 가만히 그녀에게 맞는다.
“이런다고 달라진 게 뭔데... 없잖아, 없잖아!”
절규하듯 소리를 꽥 지르고서, 그녀가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이젠 그녀가 울지 않길 바랬는데... 나는 그녀에게 악몽보다 더 끔찍한 선물을 주었나보다. 한참을 울던 그녀는 기진맥진한 듯 바닥위로 스러진다.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침대 위에 눕힌다.
양치질을 하며 울었다. 가게에서처럼 양파를 썰 수 없었기 때문에, 치약을 듬뿍 묻혀서 칫솔질을 계속 했다. 치약의 매운 향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슴이 뜨겁게 쓰라렸다. 눈물이 겨우 멈추자, 나는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하지만, 물의 냉기도 내 쓰라림을 가라앉히진 못했다.
욕실을 나오자, 그녀가 언제 깨어났는지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시공이 정지라도 한 것처럼,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긴 침묵을 깨뜨리며,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내가 아직까지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한 지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 갈 수 없다는 말을 건네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내려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그러자,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있던 그녀가 전화기로 가더니, 기계 같은 동작으로 전화 코드를 빼내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잖아.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녀가 나를 보며, 엷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눈웃음... 슬픔이 짙게 베인 그녀의 그 웃음이다.
그녀가 다시 또 정적을 깼다.
“축하 안 해줄 거야?”
당황한 나는 그저 그녀를 멍하니 보았다.
“거기가 무슨 호텔이었더라? 작년 생일 때, 사왔던 그 쉬폰케잌 말야, 그걸 사다주지 않겠어?”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아... 어디인지 기억나. 지금 당장 다녀올게.”
나는 괜히 서둘러서 차키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간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지만,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녀가 말한 케이크를 산 후, 오늘 길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해바라기 서른 송이를 샀다.
집으로 들어오자, 식탁엔 와인이 가득 담긴 두 개의 잔이 기다리고 있었다. 케잌에 정성스럽게 초를 꽂았다. 그녀의 나이, 정확히 서른 개를...
흔들거리는 촛불사이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닫혀있던 입을 연다.
“생일 축하해.”
그녀가 따뜻하게 나를 응시한다.
“사랑해...”
말을 마친 그녀는 갑자기 서두르듯, 두 번 만에 서른 개의 촛불을 껐다.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든다.
“우리, 건배 하자.”
나도 잔을 들었다. 두 잔이 부딪히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나는 단숨에 와인 잔을 비워낸다.
그녀가 낮게 속삭인다.
“괜찮아...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나는 떨리는 몸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려고, 눈에 힘을 잔뜩 주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녀의 잔은 비워지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나는 나 홀로 마신 저 와인과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나 혼자 떠나려고 했었어. 하지만, 그게 너한테 더 상처가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이렇게 같이 떠나기로 한 거야.”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날... 용서하지마...”
그녀는 내 두 손을 부여잡고, 얼굴을 파묻었다.
“미안해, 미안해... 널 이렇게 만들어서...”
그녀의 따뜻한 눈물이, 떨고 있는 내 손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그래, 선물 잘 받을게... 고맙게 받을게...”
마침내, 한계를 느낀 내 몸이 꺽꺽거리며, 의자를 벗어나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다행스럽게도 청각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뜰 때, 네가 보이면 좋았어. 아무리 악몽에 시달려도, 깨어나 눈을 뜨면 네가 보여서... 그래서 살 수 있었는데... 그래서 살 수 있었던 건데...”
그녀가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
“우리...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그때는 만나지 말자...”
그녀의 눈물이 내 얼굴위로 후두둑 떨어진다. 그녀가 일어선다. 식탁을 향해 그녀가 손을 뻗는다. 그녀는 잔을 들은 채로, 잠시 나를 내려다 본다.
나는 여전히 떨고 있는 몸으로,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모아 힘겹게 입을 연다.
“미... 미... 미아... 아... 아... 아... 안... 해...”
그녀의 슬픈 미소가 내 눈속에서 잔잔하게 번진다. 나는 그녀가 잔을 들어 마시는 것을 본다. 그녀의 잔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이 깨어진다. 그녀도 바닥으로 고꾸라진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보려는 내 의지와 욕심과는 상관없이, 자꾸 감기는 눈 때문에 그녀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p.s. 이 글의 소재와 아픔을 나누어주신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__)
예쁜 미소를 지닌 그녀가 이 글로 인해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길 바란다면... 제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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