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하기 위해 막차를 타고 그의 집 앞으로 간 날, 나는 8시간을 그의 집 앞에서 기다렸으나 결국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얼른 사과를 해야겠다는 다급한 마음에 섣불리 행동한 결과였다. 그 행동을 실천으로 옮기기까지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혹여나 기분 상한데 더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스토커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지...
아무튼 나는 사과를 하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기다렸다. 봄의 새벽은 꽤 쌀쌀했다. 손톱이 점점 파래졌고, 몸도 구석구석이 저려왔다. 동이 터올 때 쯔음에는 생리도 터져 밑까지 축축해졌다. 몸을 옴싹달싹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자리를 비운 사이, 그가 집으로 쏙 들어가버리면 만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4시가 되어도, 5시가 되어도, 8시가 되어도.. 그는 끝내 오지 않았다. 무슨 술을 그렇게 오래도 마시는 건지... 8시가 되니 날이 완전 밝았다. 그러나 내 마음은 몹시 어둡게 침전되었다. 그 때 든 기분은 체념이었다. 너무 오래 기다렸고, 반복된 기대의 좌절에 지쳐있었다.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집에 돌아왔다. 그제서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생리통도 함께 시작되었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누웠다. 복통과 두통이 몸을 괴롭혔다. 그러나 그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더 크게 다가왔다. 너무도 비참하고 고통스러웠다. 사과를 하는 것 조차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니. 좌절스러웠다. 그리고 지독하게 외로웠다. 소리를 지르며, 나뒹굴며, 울었다.
그러다 약 기운에 잠들었고, 일어났을 때는 출근 시간이었다. 미적미적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지하철 안에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과의 내용이었다. 자존감이 아침에 흘린 눈물에 녹아 씻겨내려간 것 같았다.
도착하고 보니, 그도 출근해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어제의 바보짓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더 밝은 척 했고, 더 자주 웃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부서져 내렸고, 공허했다. 나 자신이 빈 껍데기로 느껴졌다.
이후로도, 그와의 관계가 다시 진전되는 일은 없었고, 계속해서 상처받을 일만 늘어났다. 가슴이 이미 뻥 뚫려 있어서 더 이상 생채기 날 구석도 없었지만. 그 이후로 한참을,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울고, 폐인처럼 생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