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헌법재판소에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식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의 첫 공개변론(24일)을 앞두고 정부 부처가 처음으로 폐지 의견을 낸 것이다. 여가부는 2012년 헌재 결정 때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건정 여가부 여성정책국장은 22일 “현행 형법이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낙태 시술이 불법적ㆍ음성적으로 시행되고 있어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임신ㆍ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이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며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문제의 조항은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다.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70조는 ‘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 등이 부녀의 촉탁을 받아 낙태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이 국장은 “낙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여성들은 생명을 걸고 불법 시술을 받거나 해외로 나가야 한다. 시술 받다 숨지기도 하고, 잘못돼도 이의제기조차 할 수 없다”며 “이미 사문화된 법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 여성이 불법 행위자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낙태는 음성적으로 이뤄진다. 2010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한 해 16만 8738건의 낙태가 이뤄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월~올 1월 만 16~44세 성관계 경험이 있는 여성 2006명을 조사했더니 낙태 경험자가 21%(422명)였다. 다만 모자보건법은 ^유전적 장애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 ^혈족ㆍ인척간 임신 ^모체 건강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의 낙태를 예외적으로 인정한다. 2010년 정부 조사에서 이런 낙태는 1만829건(전체 낙태의 6.4%)이었다.
불법이긴 하지만 정부가 거의 단속하지 않는다. 이 국장은 “최근에는 여성이 이별ㆍ이혼을 요구하는 경우 남성이 여성의 과거 낙태를 고발해 복수한다”고 말했다. 2016년 25명이 낙태죄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고, 이 중 15명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연 평균 10여건이 기소된다. 형법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현행 유지를 지지한다. 법무부는 “태아의 생명 보호는 매우 중요한 공익으로, 낙태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낙태죄는 합헌이다. 폐지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헌재는 2012년 8월 낙태죄 헌법소원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재판관들은 합헌 4명 대 위헌 4명으로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지만,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합헌으로 결론이 났다. 이번 헌법소원의 청구인은 산부인과 의사인 A씨다. 그는 2013년 11월~ 2015년 7월 69회에 걸쳐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되자 지난해 2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지난해 10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23만5372명의 동의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여가부는 당장 폐지는 어려워도 ‘사회ㆍ경제적인 사유’에 의한 낙태가 허용되길 기대한다. 조민경 여가부 여성정책과장은 “헌법 불합치 또는 일부 위헌 판결이 나오면 모자보건법을 개정할 것이고, 그리되면 지금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불법 시술을 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