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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청장 예비후보 정순균 인터뷰 -노무현 문재인 언론특보/단장
게시물ID : sisa_10588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필버중단반대
추천 : 2
조회수 : 566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8/05/15 10:17:21
[긴급인터뷰] 정순균 민주당 강남구청장 예비후보
2018-05-15 09:35 입력

노무현과 문재인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지켰던 남자

정순균 예비후보는 중앙일보 사회부와 정치부 차장, 그리고 편집국 부국장을 역임한 후 2001년11월 새정치국민회의 한화갑 경선후보 언론특보로 정치계에 발을 디뎠다. 경선을 마친 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를 맡았고 후단협 사태를 거쳐 대선에서 승리한 후, 인수위 대변인, 국정홍보처 차장, 국정홍보처장,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2012년에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단장를 맡았고, 2016년부터 문재인 후보의 언론고문으로 당시 호남에 팽배해있던 반문재인 정서를 녹이는 데 주력했다.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를 돌려세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김정숙 여사의 호남 잠행도 막후에서 지원했다.




"후단협 사태, 가장 비참했던 순간"

고일석(이하 ‘고’) 강남구청장 후보를 전략공천을 한다, 안 한다 말이 많았습니다. 처음부터 전략공천 후보로 거론되셨는데 그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정순균(이하 ‘정’) 마음고생이라기보다 애초부터 선출직에 대한 생각이 많지 않아 전략공천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경선을 자청하기도 어렵고 해서 입장이 좀 곤란하기는 했었습니다. 

고) 전략공천을 원하셨나요?

정) 아닙니다. 전략공천 뿐만 아니라 출마 자체도 많이 망설였죠. 올해 1월 정도였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전현희 의원이 출마를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국회 사무총장으로 계신 김성곤 전 의원과 전원근 지역위원장 등 강남 3개 지역위원장이 모두 전략공천을 전제로 출마를 권했습니다. 

고) 그런데 안 받아들이셨나요?

정) 아까 말씀 드린 대로 강남 구청장 출마에 대한 입장정리를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다른 훌륭한 분들이 뛰고 계신데 아무리 지역위원장님들 모두가 권한다고 해도 전략공천을 선뜻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지난 4월초 전략공천을 전제로 출마 수락을 했는데도 전략공천이 이유도 모르게 당내에서 차일피일 미뤄지고 급기야는 당에서 경선을 권유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선거일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해서 더 이상 결심을 늦출 수 없어 경선수락이라는 결단을 어제 오후(13일) 내린 것입니다. 

고) 강남구에 오래 사셨나요?

정) 1987년부터 개포동에서부터 전세살이를 시작했으니까 잠깐 일산으로 옮겼던 것을 빼도 강남구와 30년 넘게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고) 정치 시작은 어떻게 하셨나요?

정) 중앙일보에서 부국장을 끝으로 퇴사하고 당시 경선에 출마했던 한화갑 전 대표의 언론특보를 맡게 됐습니다. 경선에서 노무현후보가 대통령후보가 되고, 한 대표가 당 대표가 됐는데 당시 명색이 야당 대통령후보 캠프인데 언론특보들이 차장급 기자 출신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대표와 노후보께서 합의 하셔셔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출신인 저를 노후보 캠프로 시집(?)을 보내 언론특보를 맡게 됐죠. 그때는 분위기가 좋았으니까 그렇게 서로 사람 보내고 받아서 쓰고 그랬었죠.

고) 그런데 분위기가 안 좋아졌군요. 

정) 네. 후단협 사태가 일어났죠. 그때는 정말 처참했습니다. 후보 캠프에 원래 당과 의원실 인력들이 참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후단협 사태가 생기니까 한두 명씩 차례로 빠져나가버린 거예요. 

고) 아, 의원들만 이리저리 쓸려 다닌 게 아니라 캠프 인원들도 빠져나가고 그랬었군요. 

정) 빠져나간 정도가 아닙니다. 선대위 사무실이 당사에 있으니까 건물 안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캠프에 있던 직원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노무현 후보를 봐도 인사도 안 하는 겁니다.

고) 말 그대로 정말 비참했었네요.

정) 제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인데 후보께서는 오죽 화가 나셨겠습니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후보사무실로 들어오셔서 제가 들어가면 “담배 한 대 달라”고 하시고 연신 노무현 후보님 특유의 뻐끔담배를 피워대면서 “내가 (캠프에 남아있는) 당신들 때문에 계속 하는 거지, 당신들만 아니었으면 벌써 몇 번 때려 쳤을 겁니다”라며 분통을 터뜨리다가는 “마, 그래도 함 해보입시다” 이러면서 기운을 북돋우곤 했었죠. 그렇게 그 어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 그리고 대선 승리 뒤에는 인수위 대변인과 국정홍보처 차장...

정) 네. 그리고 국정홍보처장을 맡아서 하다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을 맡았는데 임기 1년 넘게 남았는데 정권이 교체돼서 참여정부 출신 공기업 CEO중 1호로 사표를 쓰고 나왔습니다. 

고) 불사이군(不事二君) 이런 건가요?

정) 그렇습니다. 저는 사장 임명되는 순간부터 만약 정권이 바뀌면 노무현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생각으로 사표 쓸 결심을 미리 하고 있었습니다. 



고) 참여정부 초반에 국정홍보처장을 맡으신 건데 그때 언론환경이 엄청나게 험하지 않았나요?


정) 제가 처장으로 있을 때는 그렇게 험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렇게 우호적이지도 않았지만요. 그런데 나중에 문제가 된 취재선진화 방안이라는 것 있지 않습니까? 그게 사실은 제가 차장으로 있을 때부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통합브리핑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자실도 개방형으로 개편하고 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2005년 중반 제가 떠나고 난 뒤에 어떻게 일이 진행됐는지 참여정부가 마치 기자실에 대못질을 한 것처럼 나쁜 이미지가 국민들에게 심어지고 언론과도 전쟁 같은 형태로 변해버렸어요
광주에서 상주하며 호남 반문재인 정서 무마 총력"

고) 그 뒤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정) 그냥 야인으로 지냈죠. 그러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 출마하실 때 당연히 경선후보 언론특보단장으로 들어가 정권재창출을 위해 뛰었지만 아쉽게 패배했죠. 

고) 그리고 나서 또 야인으로 지내셨겠군요.

정) 대선패배 직후 보름간을 잠만 잤습니다. 그 후 1년 가까이 집에 칩거하다시피 했죠. 너무 패배의 충격이 큰데다 허탈감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가끔 양정철 비서관 등 후배들을 만나 후일을 도모했죠. 2016년 여름 광흥창 캠프가 꾸려질 무렵, 대선에 대비해 호남언론대책반 구상을 구체화시켰습니다. 



고) 호남만 전담하는 언론대책반이 정말 필요했었죠. 

정) 그랬죠. 2016년 총선 전후해서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가 휩쓸다시피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거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싶어서 중앙과 지역언론인 출신으로 전북에 두 명, 광주·전남에 세 명 이렇게 팀을 짜서 현지 언론 포함해서 온갖 곳을 다니면서 반문재인 정서를 무마하는 작업에 들어갔죠. 그리고 김정숙 여사가 총선 후 2016년 9월부터 매주 화요일인가 날을 정해서 호남을 방문해서 1박을 하고 돌아가시는 일정을 시작하셨어요. 그 일도 돕고.

고) 아, 그럼 김정숙 여사를 수행하셨나요?

정) 아뇨. 수행한 것은 아니고 저는 광주를 베이스로 하고 전남북을 오가며 언론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김정숙 여사팀과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만나야할 인사나 방문지 추천과 조정 등 역할을 했죠. 그런데 제가 “김정숙 여사가 방문하시려고 한다”는 얘기만 하면 다들 너무 좋아해서 언젠가는 호남 정서도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고) 그래도 굉장히 조심스러웠겠습니다. 

정) 그럼요. 반응 좋다고 마구 들이댈 일은 아니었지요. 당시 문후보께서도 혹시 역효과 생기지 않게 잘 지역여론을 살펴달라고 제게 신신당부하셨어요. 그리고 저는 저대로 광주 상무지구 2만5천 원짜리 허름한 모텔을 빌려 상주하면서 광주 전남북 안 가본 데 없이 다 다니고, 대학교수에 벌교에서 꼬막 캐는 아저씨에 하남공단 근로자들, 버스 기사분들 안 만나는 분들 없이 다 만나고 다녔습니다. 

고) 사적인 말씀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지난 번 광주 경선 때 뵀었지 않습니까. 그때 모습이 꼭 장군 출신이 계급장 떼고 야전을 누비고 다니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정) 나름 그래도 품위 있게 차리고 다니는 편인데 ㅎㅎㅎ 광주경선 때만 해도 호남 여론이 완전히 돌아서지 않았었죠. 경선 뒤에 바로 크게 위기가 오기도 했었고. 워낙 바짝 긴장하고 있던 때여서 그렇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더 안전하고, 더 깨끗하고, 더 품격있는, 젊은이가 꿈꾸는 도시"

고) 그럼 대선 끝나고 다시 야인으로?

정) 그렇죠 뭐. 고국장도 아시지만 제가 원조 친노는 아니지만 친문으로 따지면 ‘원조 친문’인데, 친문의 분위기가 있지 않습니까. 자리를 탐하지 않는 것. 

고) 자리를 탐하지는 않으셨지만 강남구청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셨던 것 아닌가요?

정) 원래는 광주나 전남 중 광역단체장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지역을 다니다보니까 지방정치가 정말 바뀌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순천에서 11살 때 서울로 온 사람이라 소위 말하는 출향민 중에서도 명함도 못 꺼내는 출향민이어서 그냥 관심만 두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대선 끝나고 평소 아우처럼 친하게 지내는 이병완 청와대비서실장이 느닷없이 강남구청장 출마를 권유하는 거예요. 이 실장의 권유가 문재인대통령 말씀처럼 ‘운명’이 되어 오늘의 강남구청장 출마에 이르게 됐습니다.

고) 강남구청장 출마 권유는 어떤 의미였던가요?

정) 강남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1번지입니다. 만약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구청장이 탄생한다면 문재인정부 성공을 위해서나 우리나라 정치사적인 면에서 의미가 남다르죠.

민선 6기까지 보수쪽에서 구청장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고인물이 썩듯이 변화라는 것도 찾아볼 수 없고, 지역주민들은 전국에서 가장 잘 사는 곳이라는 자부심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지역과 분리된 것 같은 그런 고립감도 있는 곳이지요. 그게 그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자발적인 폐쇄성과 거기에 기생하는 구체제 정치세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게다가 강남구가 모두 잘 사는 곳인 줄 알지만 기초생활수급자와 임대아파트가 서울의 25개구중 8번째로 많은 곳입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축소판 같은 곳이예요. 그런데 그런 개념 없이 그저 부자 동네 코스프레만 하고 있으니 구 전체는 정체되고 어려운 곳은 대책 없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죠. 

고) 그럼 이 대목에서 강남구청장으로서의 포부를 말씀해주시면 딱 좋겠군요. 


정) 강남구는 정쟁하는 곳이 아닙니다. 진보니 보수니 이념을 떠나서 모든 분들이 함을 합쳐 우리 동네를 살기 편한 곳, 잘 사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20여년의 언론인 생활, 정무직 공무원 경험, 또 연간 2조4천억 매출의 공기업 CEO 출신으로서의 전문성과 경험을 살려 강남을 ‘젊은이가 꿈꾸는 도시’로 만들고 싶습니다.

프랑스 젊은이들은 성공해서 ‘파리 16구’에 살고 싶어 합니다. 우리의 강남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하고, 우아하고 품격 있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구민들과 힘을 합쳐 우리 강남을 파리 16구처럼 대한민국 최고로 더 안전하고, 더 깨끗하고, 더 품격있는 도시로 만들어 내겠습니다.
출처 http://news.newbc.kr/m/page/view.php?no=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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