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의 작성에 앞서 이 글의 내용은 매우 편파적일 수 있음을 미리 경고합니다 *
안녕하세요 과게 여러분들. 이번 기회엔 아주 오랫동안 진흙탕 싸움을 반복해왔던 해묵은 논쟁을 꺼내보려 합니다. 네, 바로 한의학이냐 양의학이냐 이죠. 글 내용이 조금 길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주제에 흥미를 가진 분 한 명 이라도 읽고 유익하다 느꼈스면 하는 마음에 글을 써봅니다.
이 글에선 양의학과 한의학의 임상적인 부분(실제 진료 상황)보다는 각 학문의 근본적인 면을 중점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먼저 양의학의 경우, 히포크라테스를 시초로 여러 시대를 거쳐 시행 착오를 거듭하며 지금의 현대 의학에 이르게 됐습니다. 불과 약 400년 전만 하더라도 몸의 안 좋은 피를 뽑아서 질병을 치료한다는 개념인 '사혈 요법'이 유럽에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형편 없었던 수준이었습니다만, 현재엔 감염 질환, 순환기, 호흡기, 소화기 등의 각종 계통별 질환에 대한 어느 정도 정립된 치료를 확립했고 최근엔 다들 아시다시피 악성 신생물, 즉 암의 치료에 관해서 활발한 토의가 이루어 지는 중이죠. 개중엔 거의 정복된 암도 있고, 수술과 술후 항암요법을 시행하더라도 5년 생존율이 40%가 채 되지 않는 암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서양의학의 근간, 즉 바탕이 되는 학문이 무엇이냐?라고 하신다면 결론은 '과학'입니다. 그리고 과학은 항상 Evidence-based, 즉'근거 중심'이지요. 따라서 양의학은 기본적으로 'Evidence-based medicine', 근거 중심 의학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만약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다고 칩시다. 이런 경우엔 배란, 수정, 착상과 같은 세부적인 기전은 알 수 없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아 남자와 여자가 한 방에서 붕가하니 열 달 후 새생명이 탄생하더라~'라는 식으로 누구나 알고 있죠. 하지만 좀 더 심화해서, 폐경 후 여성에서 Hormone therapy (여성 호르몬 치료)가 Cardiovascular disease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률을 높이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는 직관적으로도 도저히 그 답이 짐작이 가지가 않습니다. 하느님이라도 내려와 호르몬 치료는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이지 하지 말거라~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 알기 힘들어 보이네요.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 양의학이 접근하는 방법(가장 중요하고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믿음직스런 방법)은 바로 '통계'입니다. 실제로 치료를 시행해보고, 시행한 사람에게서 심혈관 질환의 발생 증가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하는지를 통해 알아내는 겁니다. 통계는 위와 같은 문제에서 발생 기전을 알려줄 순 없지만, 적어도 통계적 유의성을 통해 그것이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정도로' 위험을 증가시키는지, 아닌지에 대한 해답은 제시해줄 수 있습니다. 그럼 적어도 이 치료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를 선택할 순 있겠죠. 바로 이것이 근거 중심의 의학이고, 양의학이 발전을 거듭하는 방법입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아무런 병도 없는데 유방과 양쪽 난소-나팔관을 절제한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통계적으로 BRCA1 & 2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70세 까지 유방암 또는 난소암에 걸릴 확률이 80% 이상이니까요.
따라서 양의학의 교과서는 항상 개정에 개정을 거듭합니다. 항상 교과서는 Up-to-date의 상태로 있어야 하며, 각종 통계치들을 통해 입증된 이론과 치료만이 교과서에 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의학에서 교과서의 권위는 정말 엄청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의 교과서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성서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매번 개정을 거듭하는' 교과서요. 만약 어떤 수술 후에 합병증이 발생해서 환자가 그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그 합병증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환자는 소송에서 100% 집니다. 교과서는 그 정도의 권위를 가집니다. 그런 권위를 가진 만큼, 매년 여러 통계를 기반으로 한 많은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 실리는 내용도 있고 기존의 것이 폐기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반면 한의학의 경우는 그 근본이 '동양 철학'입니다. 과학이 근본이 아닌 철학이 근본인 학문이지요. 거기다 한의학에서 사용되는 여러 교과서들(본초강목, 경악전서, 황제내경 등)은 심하게는 한나라 시절의 책 부터 비교적 최근의 교과서도 19세기 적의 것입니다. '옛 것이 최고여'라는 말이 있지만 사람이 우주선을 타고 달을 갔다 온 것도 벌서 수십년 전이 되버린 세상에서 몇 세기전의 책 내용을 바탕으로 사람을 치료한다는 것은 비난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저는 한의학이 어떠한 질병의 기전을 설명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양의학 또한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 질병의 기전도 많고, 모든 기전이 옳게 설명되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적어도 질병에 대해 어떤 치료를 선택함의 있어, 최소한의 '근거'는 바탕으로 선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통계라는 근거 말이지요. 만병통치약은 동네 약장수도 팔 수 있습니다만, 근거를 가진 치료는 의사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의학과 양의학이 학문적 토론을 함께 나누고 서로간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학문을 전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