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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동이열전 한(韓)
게시물ID : history_105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3/7
조회수 : 942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7/12 13:55:18
[후한서] 권85 동이전  / 삼한
 
韓有三種: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大者萬餘戶, 小者數千家, 各在山海閒, 地合方四千餘里, 東西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한(韓)에는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진(弁辰)의 3 종(種)이 있다.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는데 54개 국이 있다. 북쪽으로 낙랑, 남쪽으로 왜(倭)와 접한다. 진한(辰韓)은 동쪽에 있는데 12개 국이 있다. 북쪽으로 예맥(濊貊)과 접한다. 변진(弁辰)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또한 12개 국이 있고 남쪽으로 왜와 접한다. 모두 합해 74개 국인데 백제(伯濟)가 그 중 한 나라이다. 
 
큰 나라는 만여 호(戶), 작은 나라는 수천 가(家)인데 각각 산과 바다 사이에 존재한다. 그 땅은 모두 합해서 사방 4천여 리이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막혀 있다. 모두 옛날의 진국(辰國)이다. 마한이 가장 크고 그 중에서 진왕을 함께 세워 목지국(目支國)에 도읍하여 삼한의 땅을 모두 다스린다. 여러 나라들의 왕은 원래 마한 혈통이다.
 
馬韓人知田蠶, 作綿布. 出大栗如梨. 有長尾雞, 尾長五尺. 邑落雜居, 亦無城郭. 作土室, 形如冢, 開戶在上. 不知跪拜. 無長幼男女之別. 不貴金寶錦罽, 不知騎乘牛馬, 唯重瓔珠, 以綴衣爲飾, 及縣頸垂耳. 大率皆魁頭露紒[1], 布袍草履. 其人壯勇, 少年有築室作力者, 輒以繩貫脊皮, 縋以大木, 嚾呼爲健. 常以五月田竟祭鬼神, 晝夜酒會, 群聚歌舞, 舞輒數十人相隨蹋地爲節.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諸國邑各以一人主祭天神, 號爲「天君」. 又立蘇塗[2], 建大木以縣鈴鼓, 事鬼神. 其南界近倭, 亦有文身者. 
[1]魁頭猶科頭也, 謂以髮縈繞成科結也. 紒音計. 
[2]魏志曰:「諸國各有別邑, 爲蘇塗,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蘇塗之義, 有似浮屠.」 
 
마한(馬韓) 사람은 전잠(田蠶)을 알고 면포(綿布)를 만든다. 배 크기만한 큰 밤이 산출된다. 꼬리가 긴 닭이 있는데 꼬리길이가 5척에 이른다. 읍락에 섞여 사는데 성곽은 없다. 토실(土室)을 만드는데 마치 무덤 모양과 같고 출입문을 위 쪽으로 만든다. 궤배(跪拜)의 예법은 모른다. 
 
장유(長幼), 남녀의 구별이 없다. 금은보화와 비단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소와 말을 탈 줄 모른다. 오직 영주(瓔珠)를 귀하게 여겨 옷에 꿰매 장식하고 목과 귀에 건다. 대부분 괴두(魁頭)에 상투를 틀고 (1)괴두(魁頭)는 과두(科頭)와 비슷한데, 머리카락을 얽어 둘러 상투를 만들었으므로 이와 같이 불렀다. 紒의 발음은 計 베로 만든 두루마기에 짚신을 신는다. 
 
사람들은 씩씩하고 용맹한데 젊은이들이 건물을 지을 때 등가죽을 뚫어 줄을 꿰고 큰 나무를 매달고 힘있게 외치며 일하는 것을 강건함으로 여긴다. 매 5월에 밭일을 끝내고 귀신에 제사하는데 밤낮으로 모여 술을 마시고 떼지어 가무를 즐기는데, 춤출 때는 수십 명이 함께 땅을 밟아 음률을 맞춘다. 10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여러 국읍(國邑)에 각기 한 명을 두어 천신(天神)에 제사하는 일을 주관하는데 그를 천군(天君)이라 한다. 또 소도(蘇塗)를 두는데 (2)[위지]에 이르기를, ‘여러 나라들은 각기 별읍을 두어 소도라 하였는데 여러 도망자들이 여기에 이르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았다.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와 유사하다’고 하였다. (※참고: [위지]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일컫는데 이 주석부분이 삼국지 원문 그대로 직접 인용은 아니고 간접인용의 형식이나 편의상 직접 인용인 것처럼 해석했습니다)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고 귀신을 섬긴다. 그 남쪽 경계는 왜(倭)와 가까워 또한 문신을 한 자가 있다.
 
辰韓, 耆老自言秦之亡人, 避苦役, 適韓國, 馬韓割東界地與之. 其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爲徒,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城柵屋室. 諸小別邑, 各有渠帥, 大者名臣智, 次有儉側, 次有樊秖, 次有殺奚, 次有邑借[3]. 土地肥美, 宜五穀. 知蠶桑, 作縑布. 乘駕牛馬. 嫁娶以禮. 行者讓路. 國出鐵, 濊、倭、馬韓並從巿之.凡諸(貨)[貿]易, 皆以鐵爲貨. 俗憙歌舞飲酒鼓瑟. 兒生欲令其頭扁, 皆押之以石[4]. 
[3]皆其官名. 
[4]扁音補典反. 
 
진한(辰韓)은 늙은 노인이 스스로 말하기로 진(秦)나라 망명인인데, 힘든 노역을 피해 한국(韓國)으로 왔을 때 마한이 그 동쪽 경계를 나누어 주었다 한다. 국(國)을 방(邦), 궁(弓)을 호(弧), 적(賊)을 구(寇), 행주(行酒-술을 권하는 것)를 행상(行觴)이라 하고 서로를 부를 때 도(徒)라 하여 진나라 말과 유사했는데 이 때문에 때로는 진한(秦韓)이라 불리기도 한다. 
 
성책(城柵)과 옥실(屋室)이 있다. 여러 작은 별읍들은 각각 거수(渠帥-우두머리,군장)를 두는데, 큰 것은 신지(臣智), 그 다음은 검측(儉側), 그 다음은 번지(樊秖), 그 다음은 살해(殺奚), 그 다음을 읍차(邑借)라 한다. (3)모두 그 나라의 관직 명이다 (※참고:[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험측(險側), 번예(樊濊)로 기재)
 
토지가 비옥하고 오곡에 적당하다. 잠상(蠶桑)을 알고 겸포(縑布-비단의 일종)를 짓는다. 우마(牛馬)를 타고 혼인하는 예법이 있다. 보행하는 자들은 길을 양보하는 풍속이 있다. 나라에 철(鐵)이 산출되고 예(濊), 왜(倭), 마한(馬韓)에서 모두 와서 사 간다. 무릇 재화를 교환할 때 모두 철을 화폐로 삼는다. 그 풍속으로 가무(歌舞), 음주(飲酒), 고금(鼓瑟)을 좋아한다.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모두 돌로 누른다. (4)扁의 발음은 補典(반절 표기)
 
弁辰與辰韓雜居, 城郭衣服皆同, 言語風俗有異. 其人形皆長大, 美髮, 衣服絜清. 而刑法嚴峻. 其國近倭, 故頗有文身者. 
 
변진(弁辰)은 진한과 잡거하는데 성곽(城郭)(이 있는 점과) 의복(衣服)이 모두 같고 언어와 풍속에 다른 점이 있다. 그 사람들의 형체가 모두 장대(長大)하며 머릿결이 곱고 의복이 청결한데 형법은 엄준(嚴峻)하다. 그 나라가 왜(倭)와 가까워서 문신한 자가 상당히 많다.
 
初, 朝鮮王準爲衛滿所破, 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 攻馬韓, 破之, 自立爲韓王. 準後滅絕, 馬韓人復自立爲辰王. 建武二十年, 韓人廉斯人蘇馬諟等詣樂浪貢獻[5]. 光武封蘇馬諟為漢廉斯邑君, 使屬樂浪郡, 四時朝謁. 靈帝末, 韓、濊並盛, 郡縣不能制, 百姓苦亂, 多流亡入韓者. 
[5]廉斯, 邑名也. 諟音是. 
 
당초 조선왕 준(準)이 위만에게 패했을 때 남은 무리 수천 명을 이끌고 바다로 달아나 마한을 공격하여 깨뜨리고 한왕(韓王)이 되었다. 그 후 준은 절멸(滅絕)되고 마한인들이 다시 스스로 진왕(辰王)을 세웠다. 
 
건무 20년(서기 44년), 한인(韓人) 염사(廉斯)인 소마시(蘇馬諟) 등이 낙랑으로 와서 조공했다.(5)염사(廉斯)는 읍의 이름이다. 諟의 발음은 是 광무제는 소마시를 한나라 염사 읍군(邑君)으로 삼아 낙랑군에 속하게 하여 사시로 조공케 했다. 
 
영제 말, 한(韓), 예(濊)가 모두 강성하여 군현(郡縣)이 능히 제어치 못해 백성들이 난리를 겪자 유망(流亡)하여 한(韓)으로 들어간 자가 여럿 되었다.
 
馬韓之西, 海島上有州胡國. 其人短小, 髡頭, 衣韋衣, 有上無下. 好養牛豕. 乘船往來, 貨市韓中.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섬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 사람들은 몸집이 작고 머리를 깎고 가죽옷을 입는데 상의만 있고 하의는 없다. 소와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배를 타고 왕래하고 한(韓)과 교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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