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휴대폰 요금이 외국과 비교해 비싸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동통신사들이 감추고 싶은 사실이 하나 있다. 고가요금제를 쓰도록 유도해 통신비 부담을 과중시키고 저가요금제 가입자를 차별한다는 점이다. 11일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정부의 보편요금제 법안이 통과되면 저가요금제 이용자를 차별하는 요금 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핀란드의 국제 경영컨설팅 업체인 ‘리휠’이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이 세계에서 2번째로 비싸다는 보고서를 내놓자 이통사들은 가계통신비정책협의회 보고서를 인용해 반박했다. 협의회가 미국·일본·캐나다·독일 등 11개국의 요금제 현황을 비교·분석한 결과 한국은 6~7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통사들이 이 협의회 보고서에서 외면한 부분이 있다. “저가요금제와 고가요금제 간 데이터 제공량 차이 등 이용자 차별이 11개국 중 미국과 한국이 가장 심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6만6000원대 요금제 기본 데이터 제공량이 최대 74GB인 데 반해 3만3000원대 요금제는 300MB로 가격 차이는 2배뿐이지만 제공량 차이는 252배나 난다. 이통사들이 계속 고가요금제 구간을 개편하고 무제한 멤버십 등 혜택을 늘리면서 고가요금제 가입자를 늘리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요금제별 데이터 제공량 차이가 커져 이용자 차별은 심화되고 저가요금제 가입자가 고가요금제 가입자를 보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며 “한국은 차별 정도가 지나치게 크고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저요금제 데이터 기준이 300MB라는 것은 이용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이통사들은 LTE 데이터 요금제로 개편된 후 2015년부터 최저요금제(3만2890원)에서 월 300MB를 제공했다. 데이터 평균 사용량은 2015년 1월 3.23GB에서 올해 1월 6.81GB로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이통사들은 300MB 제공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고령층 등에서도 1~2GB를 제공하는 4만~5만원대 요금제를 쓰게 되면서 통신비 부담이 커졌다. 세계적으로 통신비가 저렴하다고 해도 저가요금제를 써야 할 이용자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요금제를 써야 한다면 결과적으로 통신비가 저렴하다는 주장은 맞지 않게 된다. 실제 각국 이동통신 1위 사업자 음성무제한 최저요금제를 비교해보면 300MB를 제공하는 것은 한국뿐이다. 독일·스웨덴·미국은 1GB, 프랑스·일본·네덜란드는 2GB, 영국은 3GB를 제공한다.
매년 요금제별 가입자 비율 추이를 비교해보면 저가요금제 가입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을 것으로 분석되지만 예상일 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 자료는 영업비밀이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1GB를 제공하는 2만원대의 보편요금제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이통사들이 자율적으로 저가요금제 개편안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으로라도 요금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들은 보편요금제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달 27일 유보한 규제개혁위의 보편요금제 심사가 11일 속개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참여연대 등은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자들에게 고가요금제를 유도하고 그로 인해 발생한 마케팅 비용과 지원금 부담을 다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오지 않았는지, 이통사들이 합리적으로 통신요금 인하 경쟁을 위해 노력했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임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