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말 민족문제연구소의 프레이저 보고서 동영상을 보고 이건 좀 아니다 싶어 박정희 연구 시리즈를 올린 적(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2002581)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프레이저 보고서 원본을 보고 싶었으나 구하지 못하고 외국학자들의 비교연구글만 읽고 글을 썼는데 어제 밤에 마침 전문을 보게되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떡밥이기는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보던 이야기여서 글을 마저 써 봅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아래 두 소스를 직접 확인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프레이저 보고서 원문 80메가 입니다.(https://docs.google.com/file/d/0B-1WEEwSviP8bDBVXzZucHRFak0/edit), 프레이저보고서 동영상은 여기에 있습니다.(http://www.youtube.com/watch?v=z-up2VNU8eo&feature=youtu.be ) 보고서 중 한미 경제관계 (158-258 페이지) 일부 요약
도입부(158 페이지)
프레이저 소위는 한국 정부에게 제공된 미국내 잉여농산물 원조프로그램(PL 480)의 의문스런 사용과 관련하여 기존 한미간 경제관계를 조사하게 되었음을 모두에 밝힙니다. 이는 잉여농산물 원조가 실제 과도하게 이루어졌으며 소위의 주요 관심사였던 박동선이 이 사업을 독점적으로 담당하면서 성장하였기에 더더욱 소위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부정사용 의혹에도 불구하고 소위는 한미간 경제관계는 이런 의혹을 뛰어넘는 중요성이 있다고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소위 경제관계 조사의 주된 대상은 한국 원조의 주요 창구였던 AID(예전에 이들 돈으로 만들어진 AID 아파트도 있었죠)와 미농무부, 국무부, 국방부임을 밝힙니다.
소위는 도입부에서 AID의 역할과 원조가 1960년대초에는 한국경제 운영에 핵심적이었으나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70년대 들어서는 자문역할이 주된 기능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소위는 잉여농산물 원조가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는 분명 부적절하게 집행되었다고 결론을 맺습니다. 한국 경제가 발전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원조가 필요하지 않았는데 닉슨정부의 섬유수입 제한조치(자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로 인한 한국 정부 무마수단, 미국방부의 한국 방위 분담에 따른 이해관계(원조가 다시 미국방부로 흘러가는 먹이사슬), 미의회 의원의 이권, 한국정부의 지속의지(저임금을 위한 농산물 가격 정책) 등의 요인으로 불필요(또는 필요이상 과도)하게 지속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소위는 미국의 군사원조가 사변후 60년대 초까지 한국 국방비의 2/3를 담당하였는데 이는 그후 한국의 경제개발로 인해 과도한 비율이었음에도 한국정부와 미국방부의 요구로 비율을 줄이지 못하고 원조프로그램을 왜곡시켰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 납세자의 돈이 불필요하게 원조로 사용되었음을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1945-1961 한국경제(159 페이지)
분단후 남한은 10% 정도의 산업화된 자산과 농업만으로 한반도 3/5 인구를 먹여살려야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비료공장은 북한에 있었고 일본과의 외교단절로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경제였다고 보고서는 기술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45-48년 사이에 5억달러를 원조했는데 90%가 의복, 연료, 비료, 식품에 사용되고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단지 10%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53-62년 사이에 미국은 매년 최소 2억달러 이상을 원조했으며, 57년이 피크였는데 3억7천만달러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 원조의 목표는 하루속히 한국경제가 자생력을 갖도록 해서 원조를 줄여나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한국전쟁 이후로 기본목표를 경제개발이 아닌 통일로 설정하면서 전후복구 이외의 경제개발에는 관심이 없고 광범위한 부패속에 오로지 더 많은 원조만 요구하여 AID의 rat hole(쥐구멍)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1961년 군사쿠데타 직전 시점을 보면 60년 수출액이 3천3백만달러로 1인당 GNP는 90달러에 불과했다고 보고서는 적고 있습니다.
1961-1963 한미경제관계(161 페이지)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이승만의 통일 목표 보다 장기적 경제성장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소위는 박정희의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장면정부의 계획을 가져다 썼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AID의 동의하에 수입대체전략이 아닌 노동집약적인 수출주도형 경제를 추구해야 경제적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결론을 냈다고 합니다.
읽기는 다 읽었는데 야심한 시간에 정리하기가 만만치 않네요.
그래서 과감히 건너뛰고 결론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프레이저 소위는 70년대 들어 수립된 3차/4차 경제개발계획(중화학공업 육성이 핵심)은 미국의 자문이 없었으며, AID의 공헌도 미약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181페이지)
결론적으로 소위의 한미경제관계 분석은 동영상에서 나온 킬렌 AID 책임자가 63년 세제개혁에 압력을 넣은 것과 환율변동 건 등 집권 초기의 일부 정책을 제외하고 한국의 경제개발계획(특히 60년대말 이후)에 미국이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언급은 찾아 보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수출주도형 경제를 미국이 입안하고 박정희가 이를 따르도록 했다는 내용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오히려 161페이지에서 AID의 동의하에 박정희 정부가 이런 수출주도전략으로 결론을 냈다는 언급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경제의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는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한 재벌체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개입은 적어도 프레이저 보고서에서는 없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레이저 소위의 한국경제 분석은 사실 미국 납세자의 돈을 이미 고속성장을 하고 있던 한국에 불필요하게 낭비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미국민의 세금을 탈탈 털어먹으려는 박정희 정권의 몰염치(?)와 미국 국방부의 방조가 한 몫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의 증거와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 원조의 과도한 도입이 모두 박정희와 몇몇 측근의 개인 주머니로 다 간 것이 아니라면 이는 엔하위키의 한국 무기수입 전략에 비견(사실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예고한대로 동영상의 2부(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가 이들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준다면 고맙겠지만, 제가 읽어본 바로는 1부와 같은 미국 만능론을 뒤받침 할 수 있는 단서를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찾기는 어렵습니다. 동영상에서 근거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문서는 사실 프레이저 보고서가 아닌 단편적인 외교문서로 보입니다.
솔직히 동영상을 다시 보니 프레이저 보고서를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의외로 별로 없다고(3군데 정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박정희를 좋아해서 이런 수고를 한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 언급했지만 아직 우리는 박정희가 설정한 프레임(재벌중심경제)에 갇혀 있기에 정확히 그 내용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동영상은 최소한도로 프레이저 보고서라고 제목을 단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레이저 보고서에서 본 한국경제의 성공은 한마디로 단호한 결의를 갖은 중앙정부의 리더쉽과 잘 교육받고 근면한 국민 때문이며 그래서 더 이상 원조할 필요가 없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205페이지)
엠팍의 SantaCroce님의 글입니다.
저도 다큐 보고서 개인적으로 황당해서 프레이저 보고서를 다시 읽어본 기억이 나네요.
이런 전형적인 짜집기 다큐멘터리를 볼만한 다큐라고 추천하는거 자체가 저는 좀 이해가 안가는군요.
최상천 교수나 현대사산책같은 강준만 교수의 글을 읽어보라고 하면 이해가 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