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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조님의 글에 대한 간략한 댓글 복원 및 기타
게시물ID : history_1054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traisol
추천 : 4/8
조회수 : 38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7/10 22:46:52

지진(支津)의 위치를 비정하심에 있어 청사고를 인용하시어 근세 조선이 중국에 있었다고 하셨고, 교차검증을 마치셨다는 어느 청나라 사서의 기록을 따서 울란바토르에서 흥안령의 방향이 잘못되었고 역시 근세 조선은 중국에 있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선적으로 인용하신 청사고의 조선 열전을 본다면 여러 기록에서 중국에 위치한 근세 조선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됩니다. 



가령 몇가지 기록만 간단히 찾아 본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상략> 


오랍(烏拉)의 패륵(貝勒)인 포점태(布占泰)가 조선을 침공하였을 때, 황제와 포점태(布占泰)와는 친척간이어서 그들의 진군을 중지하도록 늑유(勒諭)하였건만 조선에서는 역시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았다. 또한 황제가 붕어(崩御)하였는데도 사신을 파견하여 조문(弔問)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명(明)의 총병(總兵)인 모문룡(毛文龍)이 요동(遼東)의 백성 수만을 끌어 모아 피도(皮島)를 지키면서 조선과 합동으로 자주 군대를 내어 연해(沿海)의 성채(城寨)를 습격하였다. 


○ 이 무렵 조선의 배반자인 한윤(韓潤)· 정매(鄭梅)가 귀순하여 와서 침입의 길잡이 노릇을 하겠다고 청하면서 전쟁을 일으킬 것을 부추겼다.[註035] 이 때가 태종(太宗) 천총(天聰) 원년(朝鮮 仁祖 5)으로서 조선 국왕인 이종(李倧)이 즉위한 지 3년째 되는 해이다. 정월에 패륵(貝勒) 아민(阿敏)[註039] 등에게 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정벌하도록 하였다.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모문룡(毛文龍)의 군대를 철산(鐵山)에서 쳐부수니 피도(皮島)로 돌아가 숨었다. 마침내 의주(義州)]· 정주(定州) 및 한산성(漢山城)을 점령하여 그 곳의 군민(軍民) 수만명을 도륙하고 양곡 백여만을 불태웠다. 멀리서 [적을] 쫓으며 진격하여 청천강(淸泉江)을 건너 안주(安州)를 점령한 뒤 군대를 평양(平壤)에까지 보내니 성(城) 안의 군민(官民)들은 모두 도망하여 숨어버렸다. 이어 대동강(大同江)을 건너 중화(中和)에 이르렀다. 


<하략> 


명나라 만력의 이 기사만 보더라도 여지껏 비정한 요동의 위치와 평양의 위치가 일그러지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여지껏 해오신 방식대로라면 압록강도 중국으로 옮기셔야 하고 명나라도 새로 비정하셔야 할 판국이지요.


아 이건 이미 하셨나 모르겠습니다. 


다른 것을 보면 ○ [강희(康熙)] 50년(A.D.1711; 朝鮮 肅宗 37) 5월, 황제(皇帝)가 대학사(大學士)에게 유시하기를, “장백산(長白山)의 서쪽은 중국(中國)과 조선(朝鮮)이 이미 압록강(鴨綠江)을 경계로 삼고 있는데 토문강(土門江)[註283]은 장백산(長白山) 동쪽 변방에서부터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니 토문강(土門江)의 서남쪽은 조선(朝鮮)에 속하고, 동북쪽은 중국(中國)에 속하여 역시 이 강(江)으로 경계를 삼도록 하였다. 장백산 서쪽에서 흐르는 압록강을 두고 경계로 삼고 있다고 하는군요? 


또 다른 것을 볼까요? ○ 이 해에 이홍장(李鴻章)이 조선통상장정(朝鮮通商章程) 8조(條)를 정하여 상주하였다. 

(1) 북양대신(北洋大臣)이 파견한 상무위원(商務委員)이 조선(朝鮮)에 상주하며, 조선(朝鮮) 역시 대관(大官)을 파견하여 천진(天津)에 머물면서 상무(商務)를 처리한다.


(2) 중국(中國)의 각 통상(通商) 항구(港口)에서 조선(朝鮮) 상민(商民)의 재산(財産)· 범죄(犯罪) 등 사건은 모두 지방관(地方官)이 심사 판단하되 회전(會典)의 구례(舊例)를 존중한다. 


(3) 조선(朝鮮)의 평안도(平安道)· 황해도(黃海道)와 산동성(山東省)· 봉천성(奉天省) 등의 연해지방(沿海地方)에서는 양국(兩國)의 어선(漁船)이 왕래(往來)하며 어로작업(漁撈作業)을 할 수 있으나 사사로이 화물(貨物)을 교역하지 못한다. 위반한 자의 선박과 화물은 관(官)에서 빼앗기로 한다. 


(4) 양국(兩國) 상민(商民)이 내지(內地)에 들어가 토화(土貨)를 채집하는 것을 허락하되 연도(沿途)의 이세(釐稅)는 납부하여야 한다. 


(5) 압록강(鴨綠江) 대안(對岸)의 책문(柵門)과 의주(義州) 두 곳, 또한 도문강(圖們江) 대안(對岸)의 혼춘(琿春)· 회령(會寧) 두 곳에 변경민(邊境民)들이 왕래(往來)하여 무역하도록 하며, 변(卞)을 설치하여 세금(稅金)을 징수하고 관우(館宇)· 희름(餼廪)· 추량(芻糧)등의 비용(費用)은 제하여 준다. 


(6) 금지(禁止)된 물건에 대해서는 조사하여 밝히되 홍삼(紅葠) 한 항목은 전례(前例)에 따라 판매를 허락하고 세칙(稅則)을 참작하여 정한다. 


(7) 초상국(招商局)의 수송선(輸送船)을 파견하여 매월(每月) 정기적(定期的)으로 한 차례씩 왕래하되 조선(朝鮮) 정부(政府)와 선비(船費) 약간을 협상(協商)한다. 


(8) 보완하여야 할 문제는 수시로 서로 의논하여 처리한다.[註512] 


예부(禮部)에서는 회령(會寧)· 경원지방(慶源地方)의 교역(交易)에 대한 감시를 정지하되, 단지 금년에 돌아오는 회령(會寧)의 교역기간(交易期間)에는 그 곳의 상민(商民)이 관(官)의 규제를 받지 아니하여 의외의 사단(事端)이 일어날까 두려우니 마땅히 성경 장군(盛京 將軍)과 봉천 부윤(奉天 府尹)· 길림 장군(吉林 將軍)이 파견한 위원(委員)과 조선관원(朝鮮官員)이 회동(會同)하여 관리하도록 승락하여 주기를 상주하였다.[註513] 이희(李熙)가 표(表)를 올려 효정현황후(孝貞顯皇后)의 태묘(太庙)합사를 축하하고, 자희황태후(慈禧皇太后)에게 공물(貢物)을 바쳤다.[註514] 



이제는 어디서 부터 손을 대셔야 하는지 보고있는 저로서는 참 막막하기만 합니다, 기록상으로는 평안도도 분명 서해를 끼고 위치하여 있음을 기반으로 하는 기록인데, 


비정하신 서해는 어디였죠? 네 서쪽 끝 무렵의 강이었지요 평양은 어디였죠? 네 중국 대륙의 동쪽 끝 무렵이었지요, 


산동성 봉천성등은 또 어디로 하실지 이건 또 궁금해집니다. 


다음으로 세종실록지리지가 조작되었다 라고하셨는데, 그거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입니까? 비슷한 분들만 검색되서 조잡한 그림판 끄적임만으로는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네요. 학계에서 받아들이든 아니든 검색은 되어야 하는데 논문이나 학술지 하나 검색도 안되고 말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지리지 조작이 사실이라 한들 다른 실록의 기록들은 어쩌실겁니까? 


태조 1권 총서 37번째기사 태조가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온 홍건적의 무리를 격퇴시키다 


겨울에 홍건적(紅巾賊) 위평장(僞平章) 20) 반성(潘誠)·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파두번(破頭潘) 등 20만 군사가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서북 변방에 함부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글을 보내[移文]기를, “군사 1백 10만 명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니 속히 맞아 항복하라.” 하였다. 태조는 적의 왕 원수(王元帥) 이하 백여 명의 목을 베고 한 명을 사로잡아서 왕에게 바쳤다. 


중국에서 압록강은 어디랍니까? 


아니 그걸 떠나 아래에서 보이듯 중국 서쪽에 바다는 또 어디지요? 


그 대단한 위치 비정으로 보자면 반드시 중국에 있을 압록강 서쪽에 바다가 있어야 하는데, 대륙 횡단이라도 해야 하나요? 


태조 1권 총서 47번째기사 태조가 군대를 거느리고 동북면의 영토를 확장하다 


<상략> 

이에 동쪽으로는 황성(皇城)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동녕부(東寧府)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텅 비게 되었다. 황성(皇城)은 옛날 여진(女眞) 황제(皇帝)의 성(城)이다. 

<하략> 


그리고 자꾸 프레임 역지마요, 이건 강단사학 대 현조님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 하는 현조님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그리고 일베 운운하시는데 일베<필터링>충들도 유사성과 동일성을 볼줄 아는것 같습니다. 문제는 현조님은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하시고 계시지요, 


그것 뿐이면 다행이게요? 


일베<필터링>충들이 좋아하는 취사선택 역시 극렬하게 하고 계시지요, 


후한서 동이열전은 인용하시면서 동옥저편 말고 다른 편은 보지도 않는 것은 물론이고 반론의 ㅂ자도 안하시고 청사고는 인용하시면서 조선 열전은 반론도 못하시면서 우습다 뭐다 하시지요, 


그러면서 하는게 친목질 조장이니 누가 누구보고 일베<필터링>충이 이러니 저러니 운운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이런 글을 써봐야 그냥 입맛에 맞는 거나 찾아서 끼리끼리 비웃기나 하거나 들은 척도 안할거 압니다만 어떻게 보면 7년 동안 제가 알기로는 7년은 족히 되셨는데, 그 동안 대체 뭘 말씀대로 연구하신건지 전혀 이해가 안되네요, 


제가 현조님 보다 부족한 부분도 있는 것도 사실이고 제 자신의 깜냥이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말씀 하시는 것 만큼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한테도 이렇게 난립한 헛점과 문제가 짚이는걸 보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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