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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게시물ID : panic_815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수동호흡
추천 : 13
조회수 : 4330회
댓글수 : 21개
등록시간 : 2015/07/13 01: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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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빚까지 내어 벌인 사업이 실패한 뒤로는 매일 술을 마셨다. 무능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책망 섞인 눈빛과 한심한 아버지와는 말도 섞기 싫다는듯한 아들의 냉랭한 태도에 맨 정신으로는 부끄러워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들의 대학 등록금 통장까지 깨서 무리하게 벌인 사업이었다. 아내는 애초에 거세게 반대했었다. 아들은 원하던 학교에 붙었지만 갈 수 없게 되었다. 온 집안에 빨간 딱지가 붙는가 싶더니 열 평도 되지 않는 반 지하 방으로 쫓겨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는 상심에 빠져 아내가 식당에 나가 벌어온 돈으로 매일 술을 사 마셨다. 그럴수록 가족들은 더욱 나를 경멸했다. 나 스스로도 쓰레기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몇 개월이나 답이 보이지 않는 생활에 아내가 눈물로 호소하는 통에 어느 날은 오랜만에 맨 정신으로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얼마 전까지 사장이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어이, 최씨, 거기 등의 호칭과 지성과는 거리가 먼 육체노동뿐인 일에 하루하루 지쳐갔다. 나는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자존심이 죽지도 않고 꿈틀댔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몸살로 앓아 눕고, 그 이후로는 다시 술을 푸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 절벽을 찾게 된 것은 쓰레기 인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가버렸고 빚쟁이들은 지겹도록 찾아와 협박을 해댔다. 남은 건 스트레스와 알코올로 망가진 몸과 빚뿐이었다.

 자살 명소로 불리는 그 절벽은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다. 멀리서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습한 바다 냄새에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여러 의미로 명소는 명소였다.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본 바다는 어찌나 깊은지 푸르다기보다 검었다. 급류도 워낙 세서 웬만한 수영 선수라고 해도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자력으로 빠져 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애초에 나는 수영이라고는 할 줄도 모르지만

 별로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나는 뛰어내리기 위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누군가 내 팔을 붙잡지만 않았다면 앞으로 한 걸음 만에 절벽에서 떨어졌을 터였다.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내 팔을 붙잡은 것은 어린 소녀였다. 기껏해야 내 아들만한 나이일까, 아무리 많게 봐도 스무 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이 한 몫 거들었다.

 

 봐요.”

 

 소녀의 손가락 끝에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팻말이 있었다.

 

 [쓰러ㄱ 투ㅣ 그시]

 

 아마 쓰레기 투기 금지였을 글자가 낡디 낡아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소녀는 조금 화난 표정을 하고 이번엔 바다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하도 쓰레기를 버리고 가서 바다가 더러워지고 있다고요. 해안을 봐요.”

 

 확실히 해안가에는 파도에 밀려온 쓰레기들이 몰려 있었다. 과자 봉지나 비닐, 페트병 등이 주류였다.

 

 제가 매일 청소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고…”

 아가씨. 난 쓰레기를 버리러 온 게 아니야. , 아무것도 없잖아.”

 

 양 팔을 벌려 내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핸드폰은 진작에 해지한 지 오래였고 지갑은 오는 길에 쓰레기통에 버렸다. 내 낙오자로서의 증거는 전부 버렸다.

 

 뛰어내리러 온 게 아닌가요?”

 

 내가 뛰어내리는 것과 쓰레기를 버리는 것과의 상관관계는, 불과 몇 초 만에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인정하는 바였으므로 별로 화를 낼 마음도 들지 않았다.

 

 한둘이 아니에요. 온갖 사람들이 와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사람, 죄를 짓고 도망친 사람쓰레기들이……. 그것들은 너무 무거워서 나 혼자 처리할 수도 없다고요. 아세요? 물에 불어난 사람이 얼마나 무거운지…”

 

 소녀는 혼자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파도에 부서지는 빛처럼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예쁘지 않나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예쁜 바다를 더럽히다니…”

 “…….”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아저씨.”

 

 소녀의 눈에서 본 바다는 내 앞의 바다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결국 죽지 못하고 돌아가 홀린 듯 일을 시작했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파스 몇 장으로 버텼다. 간혹 일이 없는 날에도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신이 노력을 알아준 건지, 일을 쉬는 날에 틈틈이 손보던 사업이 갑자기 팔리기 시작했다. 투자를 하겠다는 곳이 생기고 점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후 일은 막혔던 만큼 수월히 풀리며 빚을 다 갚고도 돈이 남아돌았다. 십원 하나 속이지 않고 통장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들고 가 아내와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돌아와 달라고 빌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아니 이전보다 나아졌다.

 

 사업이 안정권에 접어들고 아들이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을 무렵 나는 다시 절벽을, 그 바다를 찾았다. 여전히 글자가 지워진 팻말이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었다.

 

 또 왔네요?”

 

 여전히 갑작스럽게 나타난 소녀가 이번에는 내 팔을 잡지 않았다. 쓰레기를 줍다 온 모양인지 손에 든 비닐봉투 안에 물에 젖은 쓰레기들이 가득 이었다. 나는 여전히 반짝이는 그녀의 바다 같은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빚도 전부 갚았고, 가족들한테 용서도 받았어. 번 돈은 조금씩 기부도 하고 있고이제 술은 입에도 안 대. 그러니까, 이제…”

 

 소녀가 웃자 그 눈 안의 바다가 울렁이며 파도 치는 것 같았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비로소 마음 놓고 깨끗한 몸으로 바다에 뛰어들 수 있었다.

 

 

-

 

 

 하얀 거품이 잔뜩 일던 바다가 잠잠해지자 소녀는 내려놓았던 비닐봉투를 집어 들었다. 뒤돌아 걷던 소녀가 문득 절벽 쪽을 돌아보았다.

 

 슬슬 다시 써야겠네…”

 

 소녀는 주머니에서 매직을 꺼내어 지워진 글씨 위에 글자를 휘갈겨 썼다.

 

[쓰레기 투신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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