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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와 고등어
게시물ID : lovestory_7473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홍재희
추천 : 0
조회수 : 5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10 21:03:25

어린시절 나는 바다에 살았다.

숨을 쉬면 공기바람에 소금내가 함께 담겨 내 코를 반겼다.

거리를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다 줄줄이 서서 천 오백원부터 시작하는 생선을 팔았다.

사천원짜리 생고등어를 사는 건 늘 내 몫이었다.

바닷가 부두 옆 선착장엔 꽃무늬 색색깔 남방을 입은 아저씨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창수였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그 아저씨와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나의 규법이 부모의 말이라는 건 알았다.

그 날 역시도 삼천원에 고등어를 샀다.

사람이 없어 천 원이나 절약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투명한 하늘색 봉투 안에 달랑 거리는 비린내나는 고등어를 들고 집으로 뛰어갔다.

금목걸이에 꽃무늬 남방을 입은 그 아저씨는 영락없는 건달이었다.

그랬기에 우리 부모님의 미움을 샀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집 안의 규법을 지켜야했다.

그 아저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이는 우리 아빠보다 딱 열 살정도만 더 젊은 것 같았다.

군대에 말뚝을 박은 우리 삼촌과 동년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저씨는 늘 험악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가끔 생선 바닥을 발로 지져밟으며 생선팔이 할머니들의 돈을 빼앗기도 했던 무자비한 사람이었다.

주말 열두 시, 점심시간을 맞아서 고등어를 구워달라고 엄마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 시간동안 아주 잠시나마 쉬면 될 뿐이었다.

옆 집 사는 아주머니가 전화가 왔다.

엄마를 찾았지만 난 엄마가 바쁘다고 했고, 아주머니는 엄마 대신 양동이를 받아가라고 했다.

냉큼 일어나 선착장으로 갔지만 그 양동이는 내가 들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갖가지 조개들과 생선이 한데 섞여있는 양동이는 꽤나 무거웠다.

이마에 이고 가라며 굳이 얹어주는 아주머니의 손길에 따랐다.

모두 다 아줌마 다됐다며 낄낄 댔지만 난 천사의 헤일로라고 속을 자위했다.

겉모습이 요란하지만 나름 뒤뚱거리며 잘 걸어갔다.

선착장을 따라 걷다가 갑자기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 나와 갈매기 떼가 함께 놀랐다.

조용히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먹다 고성에 놀라 내 앞에 달려드는 갈매기 떼와, 기우뚱거리는 내 몸은 부두 옆으로 쏟아졌다.

생선과 조개들이 와르르 원래 있어야 할 그 물 속으로 회귀했다.

나는 들어가면 안 될 곳으로 빠지고야 말았다.

생각보다 물은 깊었다. 아니, 깊진 않았다.

근데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은 나를 이 얕은 물 속에서도 빠져죽게 만들었다.

아빠 엄마의 이름을 불렀는데도 바다 안에선 그저 통용어라곤 꼬로록이 전부였다.

내가 죽어가던 그 순간에 내밀어진 건 금색 시계를 찬 어떤 남자의 손이었다.

이렇게 값나가는 시계를 우리 아버지는 찰 일이 없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마지막으로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땐 집이었다.

혀를 끌끌 차는 이웃집 할머니가 옆에서 내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었다.

생선 마냥 펄떡 일어나니 엄마가 달려들어왔다.

옆에선 고성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묻지 않았다.

나도 상처였지만 부모님 모두 다 상처가 된 것 같았다.

낯빛이 검어진 아주머니도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였다.

나는 누가 나를 구해준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꼭 그 아저씨를 만나면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다음 날부터는 고등어를 사러가는 길, 발걸음이 가벼웠다.

더 이상 그 아저씨를 만났다고 해서 겁 내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랬다.

괜히 무서워서 들어가지 않는 대형 냉장고 안에도 기웃거려봤다.

골목길도 겁 없이 기웃거렸다.

저 먼 곳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피사체가 보인다.

길고 얇은 담배 개비에서 짧고 굵은 연기가 뿜어져나왔다.

마술같은 회색 구름을 보면서 나는 아저씨를 조용히 불러보았다.

-가 아니라, 사실은 못 불렀다.

같이 엮이지 말라는 부모님의 으름장은 아직도 유효했다.

차마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고등어가 든 봉투를 털렁이며 다시 집으로 갔다.

집에 가는 길에 우리 반 반장을 만났다.

우데 가노, 하는 물음에 집 간다고 퉁명스레 대답했다.

까시나 가칠하네. 가다 자빠지삐라. 늘 놀리는 반장이지만 오늘따라 더 재수가 없다.

빠져 죽을 뻔 했던 선착장 앞에 서보았다.

그 아저씨는 얼굴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나를 무슨 마음으로 구했을까 생각했다.

나쁜 아저씨라고 유명하지만 사실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착장에서 조심조심 부두로 암벽등반하듯 내려왔다.

물도 그리 깊지도 않은데 왜 나는 겁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맑은 바다를 보면서 한참 멍하니 앉아있었다.

때 탄 갈매기 한 마리가 파닥파닥 다가왔다. 과자를 더 달라는 것 같지만 공교롭게도 난 그런 과자 부스락지가 없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갈매기가 별안간 날아가는 것이다.

깨애액 소리도 내면서 말이다.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고개를 올려다보니까 건달 아저씨가 갈매기를 발차기 시늉으로 걷어내고 앉으려 하고 있다.

-갈매기 점마들 저거 멸종이나 확 돼삐야 할긴데.

나는 타이밍도 맞지 않았건만 선수치듯 소리를 쳤다.

-아저씨가 나 구해준 거 압니다. 고맙심니더.

-고마해라. 속알맹이 오그라든다.

바라던 인사를 했다는 기분에 괜히 마음이 뜨겁다.

성취감에 쌕쌕 웃는데 아저씨가 별안간 내 머리를 토닥였다.

-아버지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라.

-잘 하고 있심더.

-어른 말에 후렴구 달지 마라.

아저씨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한 건데 기분이 막 좋다.

종종걸음으로 집까지 뛰어가다가 고등어를 놓고 왔다는 사실도 잊어먹었다.

신나게 집을 향해 달려가다가 보니 신발까지 벗겨졌다.

뭐 그리 큰 일 했다고.

활짝 웃으며 노을 진 바닷가를 가로 질러 뛰었다.

파란 대문을 열어 젖히고 엄마와 아빠를 불렀건만, 부모님의 표정은 다른 날과 달리 요상한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니 놀라지 마라.

-뭔데?

-니 창수 알제.

알제! 방금 전에 내가 구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왔구마. 그 아재 나쁜 사람 안 같든데? 그 말을 하려다 삼켰다.

그런 시시콜콜한 장난을 부릴 수가 없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금마가 어디 가자카면 절대로 따라가지 말라고 전해라. 학교 아들한테 다.

-왜?

그 말의 답을 얻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옆 집에서 오열을 하며 나오는 아주머니와, 바닥을 치는 할머니.

-창수가 옆 집 땅문서랑 통장 훔쳐가꼬 도망쳤다드라.

금마 이 마을 다 족치고 도망 쳐삤다.

엄마의 말을 듣고 난 잠시 머릿 속이 뎅 하고 울렸다.

사고 언제 치나 언제치나 감시하고 있었는데 어예 이렇게 뒤통수를 후려 갈기고 가노.

저 노인네 이제 어떻게 살라고. 평생을 꼬박꼬박 모아놓은 돈을 말이다.

엄마는 혀를 끌끌 찼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경찰이 와도 눈물을 멈추지 않는 할머니의 곡소리.

살기 싫다. 살기 싫다를 읊조리던 할머니는 이틀도 안 되어서 바닷물에 빠진 고깃덩이로 건져냈다.

모든 마을이 초상집이었다.

정말 악몽과도 같았다.

어김없이 밥상을 차리곤 나를 부르는 엄마와 아빠의 부름에도 한동안은 가지 못 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창수 아저씨.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창수 아저씨 목소리.

한참 후에 다시 밥상에 앉았지만

난 아직도 고등어를 먹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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